누가 그녀를 죄인이라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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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의식 없는 남편 홀로 간병하다 유기치사 혐의로 유죄 받은 안타까운 사연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12년간 그를 간병해 온 아내는 남편의 야윈 두 발을 잡고 죽음을 기다렸다. 라디오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편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나고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두 발을 꼭 잡고, 방 밖에 있던 딸을 불렀다. 아내는 “○○야, 엄마가 지금 무서워”라고 딸에게 말했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아내는 딸에게 말했다. “OO야, 이제 아빠 가신다. 아빠에게 인사해.”

일러스트|김상민기자

일러스트|김상민기자

아내 정모씨가 남편 김모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당시 남편은 이혼 후 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정씨와 딸, 김씨는 함께 살기 시작했다. 남편에게서 이상증세가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05년이었다.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난치병이었다. 양측 뇌혈관의 일정한 부위가 내벽이 두꺼워지면서 막히는 병이었다. 발병 이후에는 기대여명이라는 것조차 의미가 없었다. 뇌출혈이 반복되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이미 남편의 집안에는 이 병으로 숨진 사람이 있었다. 유전병이었다. 정씨는 그러나 2008년 친정식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혼인신고를 했다. 이듬해 남편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남편은 2010년 7월 뇌병변으로 세 번째 쓰러진 이후 식물인간이 됐다.

남편의 병원 담당의사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며 치료를 포기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죽지 않았다. 병원이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한 시점으로부터 7년을 더 살다 세상을 떠났다. 아내 정씨는 기초수급대상자(100만원)와 장애인(30만원)에게 지급되는 돈 130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남편을 간호했다. 대학병원을 2개월에 한 번씩 옮겨다니면서도 정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남편이 지금은 아기의 모습이지만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조금은 더 자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상태가 호전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 환자에게 병원은 가혹했다. 2개월이 지나면 퇴원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한 대학병원에서는 입원한 지 5시간 만에 퇴원조치됐다. 가망 없는 환자에게까지 줄 입원실이 없다고 했다.

난치병 알고도 친정 반대 불구하고 결혼

아내 정씨가 남편을 집으로 데려오게 된 것은 건강심사평가원의 처분 때문이었다. 심평원은 2016년 11월 남편 김씨에 대한 재활치료 비용을 보험 적용대상에서 빼겠다고 통보했다.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사람에게 재활치료는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재평가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대학병원을 2개월마다 전전하면서도 버텼던 이유는 병원에서는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재활치료를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 이상 남편이 곧 죽을 예정인 환자들과 6인 병실 천장을 쳐다보며 지낼 이유가 없다고 아내는 생각했다.

그때부터 아내 혼자 남편을 간병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2017년 1월부터 정부에서 지원하는 활동도우미가 왔지만 연세가 많고 경험이 적은 활동도우미에게 간병을 맡길 수 없었다. 간혹 남편의 상태가 좋을 때면 위루관을 통해 죽을 넣어주는 일을 부탁했다. 흡입기로 가래를 뽑아내거나, 위루관을 통해 들어간 음식이 역류해 석션을 해야 할 때는 전적으로 아내 혼자 해냈다. 남편의 배설물 역시 오직 아내만 처리할 수 있었다. 간병인은 “전신마비로 하루종일 누워 있는 사람이 욕창 하나 없이 참 깨끗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러나 지난 5월 29일 수원지방법원 제110호 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유기치사 혐의였다. 검찰은 남편의 배에 삽입돼 있던 위루관이 빠진 것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치해 남편이 숨지게 했다며 정씨를 기소했다. 수원지법 제12형사부(김병찬 부장판사)는 이날 아내 정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열었다. 검찰은 “설사 내일 죽을 사람이라도 의료기관이 아닌 개인이 타인의 생명을 결정할 수는 없다”며 “고통을 보기 힘들어 남편의 몸에서 빠진 위루관을 보고도 방치한 것은 본인의 선택일 뿐 고인의 선택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실형 대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구형했다.

“다시는 고통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건은 남편이 숨지기 닷새 전인 2017년 7월 23일로 돌아간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느지막이 남편과 늦잠을 자고 일어난 정씨는 남편의 배에 삽입돼 있던 위루관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위루관은 입으로 음식물 섭취를 할 수 없는 중증환자에게 음식물을 투여할 수 있는 관으로, 배에 구멍을 내 위에 연결하는 시술이 필요했다. 당장 주치의에게 전화를 하거나 구급차를 불러야 했지만 정씨는 하지 않았다. 대신 빠진 위루관을 비닐에 싸서 보관하고, 구멍난 배 부위를 소독했다. 또 물을 거즈에 묻혀 입 주변에 대주며 탈수를 막았다. 요플레를 사다 두 숟가락 정도씩 입 안으로 흘려보냈다. 남편은 영양결핍으로 인한 탈수로 숨졌다. 위루관이 빠진 지 5일 만이었다.

그가 법정에서 한 말이다. “남편이 처음 쓰러진 이후 입으로 음식물 섭취를 할 수 없어 콧줄을 연결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콧줄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그때 처음으로 위루관 삽입술을 제안했습니다. 의사들은 남편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지만 저는 생살을 찢고 관을 삽입하던 그때 남편이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봤습니다. 목과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습니다. 피도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그 관을 삽입해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쯤 위루관이 빠졌습니다. 저는 그냥 빠진 자리에 다시 관을 넣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관 주변의 살이 흐물흐물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배에 새로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날 새로 배에 구멍을 뚫어 관을 삽입한 이후 다시는 남편에게 이런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장애인 간병

위루관이 또 빠진 것을 발견한 정씨는 남편의 배에 세 번째 구멍을 뚫는 대신 죽음을 준비했다. 그는 ‘위루관을 연결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죽음을 항상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남편이 죽는 순간 고통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는 고통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고통의 기준이 어떤 걸 이야기하는 건가. 아픔이 지속돼 왔기 때문에 남편이 더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끝까지 못지킨 것은 미안하지만 나는 그냥 남편이 (위루관 재삽입술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고 답했다.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유죄로 판단, 정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평결했다. 유기치사죄로 처벌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형량이었다. 재판부 역시 배심원단의 편결에 따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의 판단에 따르면 그는 유죄다. 그러나 누가 그에게 살인자라고 할 수 있을까. 김유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가족정책연구팀장 등 3명의 연구위원이 지난 2016년 1월 작성한 ‘가족·아동·장애인 복지현황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32.2%가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일상생활 도움 제공자는 가족구성원(81.5%)이었다. 장애인이 어릴 경우는 엄마가, 부부 중 한 쪽이 장애인일 경우 나머지 배우자가 케어의 대부분을 도맡는다. 여기에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각종 바우처 지원사업, 국민기초생활대상자 지정 및 장애인 등급에 따른 보조금 지급이 전부다. 한 개인이 가족을 전적으로 맡아 돌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고통과 어려움을 국가는 지금까지 책임져준 적이 없다. 개인의 값싼 노동력에 기대 왔을 뿐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지난 1월 발간한 <2017 장애인 백서>에 따르면 2011년 OECD 국가의 장애인 복지 지출규모는 GDP 대비 2.19%로 한국(0.49%)에 비해 4.5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의 장애인 복지 지출은 유럽 주요국은 물론 일본의 장애인 복지 지출(1.0%)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2017년이 된 시점에서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정씨가 장애인 남편을 돌보면서 국가로부터 받은 지원은 월 30만원의 치료비와 활동도우미를 쓸 수 있는 바우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이 굳이 기소할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누가 그녀를 죄인이라 할 수 있나

아내 정모씨 측 변호사

박성원 변호사(39·변호사시험 6회)는 변론 도중 여러 차례 울음을 삼켰다. <주간경향>은 재판이 끝난 지 이틀 뒤인 5월 30일 그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이유가 있었나

“사건을 수임한 이후 선배 법조인들과 의견을 나눴다. 그들은 피고인이 겪은 12년의 고통이 아닌 그 사건이 벌어진 1년의 일만 보고 사건을 평가했다. 유죄를 전제로 집행유예를 받아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일반 재판으로 가면 어차피 뻔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받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피고인이 행한 일련의 행동이 정말 사회상규에 어긋나는지를 일반인의 시각에서 판단받고 싶었다.”

-변론 도중 여러 차례 울컥했다.

“처음 이 분을 자원봉사 현장에서 만났을 때 내가 이 사건을 맡게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 분도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으러 온 것 같았다. 그냥 나는 들어드리고 ‘포기하지 마시라. 기소되면 잘 대응하시라’고만 했다. 그런데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며 변론을 맡아줄 수 있냐고 했다. 그런데 막상 의뢰인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임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변론에 필요한 자신의 이야기조차 털어놓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이 분과 인간 대 인간으로 많은 대화를 했다. 그래서 울컥했던 것이다.”

-검찰의 재판 진행방식에 불만이 있어 보였다.

“피고인에 대한 수사가 너무 잔혹했다. 경찰은 남편이 죽은 날 밤에 피고인에 대해 압박질문을 했다. ‘위루관을 빼고 놔두면 죽을 줄 몰랐느냐’고 반복해서 질문했다. 늘 죽음을 준비해온 사람에게 ‘그렇다’는 답을 끝끝내 받아내고 그걸 자백이라며 검찰에 넘겼다. 검찰도 딱 한 차례 조사했다. 울고 있는 피고인에게 ‘당신의 행동은 유기치사죄에 해당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반복했다. 지친 피고인이 ‘다 내 잘못이다’라는 말을 하자 조사가 마무리됐다. 이 사건이 굳이 기소할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항소할 계획이 있나

“없다. 우리는 처음 재판 준비를 할 때부터 법정을 벗어나려는 마음밖에 없었다. 원하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피고인은 더 이상 법정에 서고 싶어하지 않는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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