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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노동, ‘저녁이 있는 삶’ 가져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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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길 수 없게 된다. 우선 300인 이상의 사업장부터 적용된다. 주당 68시간까지 ‘합법적으로’ 보장받는 것을 넘어 노동자 대표와의 합의만 있으면 사실상 무제한 연장노동이 가능했던 시대도 종지부를 찍는다. 법으로 못박은 노동시간 단축은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업종별 기업별로 각기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법 적용으로 시행착오를 겪을 소지도 있지만, 무엇보다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법이 정한 노동시간은 지금이나 7월 이후나 같다. 주 40시간이다. 주5일 근무제 기준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시간이다. 바뀌는 것은 연장노동을 한 주에 12시간 이상 시킬 수 없게 한 점이다. 올해 7월부터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을 비롯해 내년 7월에는 기존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업종에, 2020년 1월부터는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다. 특례업종을 제외한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는 것은 2021년 7월 1일부터다. 당장 7월부터 일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길어도 3년 뒤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체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법은 멀고 상사는 가깝다’는 말로 나타나는 현실에선 이런 정시 출·퇴근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준다는 것은 맡은 업무를 처리할 시간도 줄어든다는 의미다. 같은 일을 처리하려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에 순응해 고용을 늘리는 기업도 있지만 고용수준은 유지하면서 법망을 빠져나갈 편법을 찾는 기업도 현실적으로 적잖게 나타날 전망이다. 이 경우 여전히 같은 양의 일을 하면서도 빠른 퇴근을 요구받는 직장인들은 회사 바깥에서도 계속해서 일을 놓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 편법을 써서 기존의 장시간 연장노동 관행을 유지하려는 행태도 나타나겠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그만큼 임금도 줄어들지만 그 대신 고용을 늘리는 문제로 확대된다. 장시간 노동과 이를 뒷받침하는 저임금·저생산성 구조를 바탕으로 한 한국 사회의 시대상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문제이므로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연장근로시간 제한의 임금 및 고용에 대한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연장노동시간이 제한되면 적용 대상 노동자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평균 48분, 연간으로 보면 41.6시간 줄어든다. 이에 따라 월급은 평균 37만7000원(11.5%)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시간당 임금은 1.3% 오른다. 그리고 1인당 노동시간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기업이 새로 사람을 뽑는다면 약 16만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계산됐다. 비정규직 5만개, 정규직 11만4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된다.

퇴근 후의 시간이 보장되면 휴식과 여가시간이 늘고 가정이나 공동체에 관심을 가질 여건도 만들어진다. 반면 짧아진 노동시간에 맞춰 기존의 담당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압력 또한 커진다. 노동시간을 늘려 낮은 생산성을 벌충해 왔던 문제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길게 보면 업무효율과 실적을 우선하는 직장문화가 자리잡고 대신 감정노동이 필요한 대인관계의 영향은 줄어들 여지도 커진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높은 해외의 사업장에서는 근무시간 안에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강제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며 “한국은 단순히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뿐 아니라 조직과 일상생활에서 강한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복잡한 권력관계 때문에 조직 구성원의 피로도가 더 높아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이 짧아지면 사회 곳곳에서 변화가 나타나지만 분야별 시간차는 존재한다. 일관된 생산라인을 갖춰 근무환경이 비슷한 제조업 분야의 대규모 공장에서는 노동시간을 한 번에 일사불란하게 바꾸기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반면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수행하는 방송·광고 등의 콘텐츠업계나 IT업계 등은 평상시 노동시간의 변동이 큰 데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역할이 큰 산업이기도 해 노동시간 조정이 쉽지 않다.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는 극대화하려면 더 복잡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 업종에서의 현재 노동실태와 주 52시간 노동 적용 이후의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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