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상비 0원, 패키지 여행의 ‘요지경’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동남아 29만9000원짜리 상품 실제 비용은 50만원 넘어 어떡하든 본전 이상 뽑아야

종합편성채널 JTBC의 <뭉쳐야 뜬다>는 연예인이 일반인들과 함께 직접 패키지여행 상품을 체험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여기에는 각종 패키지 상품에 대한 소개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예능을 통한 패키지 여행상품 홍보인 셈이다. ‘뭉뜬’에서 소개된 여행지는 방영 직후 큰 인기를 끈다. 패키지 여행보다 자유여행 비중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여행사로서는 효자 프로그램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태국 수도 방콕의 야시장 풍경. 저가 패키지 상품으로 가면 야시장도 선택관광에 포함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 Unsplash @Adam Dore 제공

태국 수도 방콕의 야시장 풍경. 저가 패키지 상품으로 가면 야시장도 선택관광에 포함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 Unsplash @Adam Dore 제공

그런데 정작 패키지를 다녀온 사람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에도 그 수치가 나온다. 최근 1년 내 해외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4514명을 대상으로 벌인 고객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한 여행사의 만족도는 1000점 만점에 629점에 불과했다. 100점 만점에 62.9점인 셈이다. 지역별로도 대양주(652점), 미주(648점), 유럽(629점)에 비해 동남아는 627점으로 가장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동남아+패키지 여행’ 조합이 유독 박한 점수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가족과 함께 태국 파타야를 다녀온 취업준비생 최모씨(27)는 “가이드의 불성실함과 불친절, 3박4일 동안 5개의 상점을 들른 점, 선택관광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보이는 가이드들의 불쾌한 표정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쁜 가이드’만의 문제인가

동남아 패키지 현지 가이드들의 선택관광 강요과 불친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불만이 제기되고, 여행사와 협회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한다. 게다가 이 같은 문제를 ‘나쁜 가이드’ 한 사람의 문제로 몰아갈 수도 없다. 여기에는 국내 여행사도, 현지 여행사(랜드사)도, 가이드들도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행사지침서(24페이지 왼쪽)와 정산서(오른쪽)를 보면 소위 ‘지상비’와 가이드들의 ‘메우기’가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로 등장한다. 해당 행사지침서는 한 대형 여행사에서 지난 3월 5일 발행한 것이다. 해당 행사지침서를 보면 ‘팁/지상비’ 항목이 ‘50불/0원’으로 기재돼 있다. 팁은 고객이 여행상품 가입을 할 당시 미리 고지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고객들은 이 팁이 여행 가이드의 수입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이 돈은 현지 여행사(이하 ‘랜드사’)에 고스란히 들어간다. 여행사 홈페이지 등에는 ‘현장에서 가이드에게 지급하면 된다’고 돼 있지만 가이드들은 이 돈을 만져볼 수 없다. 태국 현지에 있는 한 가이드는 “단 1불이라도 가져가면 도둑으로 몰려 강제추방을 당하거나 경찰에 체포된다”고 말했다.

지상비는 쉽게 말해 한 패키지 상품에 묶인 여행객들이 여행지 체류기간 내내 지출하는 돈이다. 여기에는 호텔숙박비, 식사비, 입장료, 간식비, 차량운행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런데 국내 여행사에서 랜드사에 지급한 금액은 0원이다. 여행객은 보내되 여행에 들어가는 경비는 일체 현지에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의미다. 여기에서 가이드들의 ‘메우기’가 시작된다. 메우기는 ▲쇼핑 ▲옵션에서 이뤄진다. 가이드들이 고압적인 태도로 쇼핑과 선택관광을 강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행객에게 들어가는 체류비 일체를 뽑아내고 남는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이들을 ‘뜯어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산서를 보면 가이드는 쇼핑으로 ‘라텍스’, ‘보석’, ‘잡화’ 등 세 군데를 들러 물건을 사도록 하고, 휴게소도 두 군데를 들러 총 다섯 곳으로부터 일정 수익을 얻었다. 현지 가이드 ㄱ씨는 “휴게소도 여행객들이 쉴 겸 자기네들 가게를 들르는 것이기 때문에 큰 액수는 아니지만 일종의 ‘성의표시’를 가이드에게 한다”고 말했다. 여행객이 들르는 모든 곳이 돈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옵션(선택관광)도 ‘시티투어’, ‘한방스파’, ‘방콕 야시장’ 등 세 곳을 들렀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패키지는 가이드에게 ‘망한 행사’가 됐다. 여행객들에게 들어간 지상비, 소위 ‘원가’가 쇼핑과 옵션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보다 많기 때문이다. 정산서를 제공한 가이드는 “선택관광을 많이 하지 못했고, 참여인원도 적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 여행이 됐다”고 설명했다.

애초부터 진행이 불가능한 상품가격

그렇다면 태국 현지에서 여행객 1인당 들어가는 최저 체류비(지상비)는 얼마일까. 인천에서 태국 현지 공항으로 가는 왕복 비행기 값은 2018년 5월 17일 기준으로 제주항공 21만2900원이 최저가다. 여기에 태국 중심지 4성급 호텔(통상 패키지에서 소개되는 호텔급)의 성인 1인당 1박 가격 최저가는 5만2000원대로 형성돼 있다. 숙박비로만 3박4일 기준 15만6000원이 들어간다. 자유여행으로 3박4일 체류하는 데 들어간 항공료와 숙박비만 36만8900원이다. 여기에 식비와 각종 입장료로만 최저 10여만원이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한 명당 3박4일 여행에 소비하는 비용은 최저 50만원이다. 각종 홈쇼핑이나 인터넷을 통해 소개하는 29만9000원, 39만9000원짜리 여행은 애당초 진행이 불가능한 상품인 셈이다.

국내 여행사에서 랜드사로 보낸 행사 지침서(왼쪽)와 가이드가 받은 패키지 여행 정산서(오른쪽).

국내 여행사에서 랜드사로 보낸 행사 지침서(왼쪽)와 가이드가 받은 패키지 여행 정산서(오른쪽).

태국 현지에서 15년째 가이드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이다. “랜드사에서 손님을 받으면 가이드에게 일인당 30만원 정도를 줘요. 그런데 호텔, 관광지 입장료, 식사비, 버스료를 지불하고 나면 30만원이 금방 날아가요. 그러면 이제 그 돈을 메워야 해요. 그 돈 벌려면 선택관광을 시키는 거죠. 재료비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안마를 받는다면 안마비(재료비에 해당)를 줘야 하는데 일반인이 그냥 가면 28달러 정도 나와요. 그런데 안마방 주인은 가이드들에게는 훨씬 적은 돈을 받죠. 한 18달러 정도. 그러면 패키지 고객들은 많이 지불해도 28달러에 안마를 받아야 하는데 가이드들은 마진을 더 남겨야 하니까 40달러를 불러요. 처음부터 홈페이지에는 선택관광 항목에 ‘$40’로 적혀 있을 거예요. 그러면 재료비 제하고 22불이 남는 거죠. 더 적게 부르는 사람도 있고. 그 마진으로 여행객들이 체류하면서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대고, 수익도 남기는 거예요. 선택관광을 많이 할수록 수익도 커지죠. 29만9000원, 39만9000원짜리 싼 상품들은 여행사가 지급하는 지상비가 없기 때문에 적어도 선택관광을 3~4가지는 팔아줘야 겨우 랜드사와 가이드가 지출한 여행비를 뽑아내요. 여기에 쇼핑숍을 4~5군데 가죠. 그렇게 해서 마이너스를 메우고, 남은 돈을 가이드와 랜드사가 갖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손님이 선택관광을 거부한다? 가이드들은 바로 ‘무슨 소리예요. 여행 와서 겨우 100달러 쓰는 게 뭐예요. 더 하세요. 아시면서 그래요’라고 하죠. 그게 여행객들이 받아들이는 ‘강압’입니다.” 적자에서 시작하는 여행객들의 지상비를 메우고, 수익까지 남겨야 한다는 가이드들의 압박감이 결국 여행객들에 대한 강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나마 가격이 높은 상품은 가이드들에게 지상비 일부가 지급되기 때문에 부담이 줄어든다. 또 ‘NO쇼핑’이 명시된 고가의 상품 역시 모든 지상비가 지급되기 때문에 가이드들은 상품 강매에 대한 부담을 없앨 수 있다. 베트남 현지 가이드 ㄴ씨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싼 상품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지상비 부담을 조금만 줄여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여행사 난립으로 과당경쟁

반면 국내 여행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동남아 관광시장 자체가 수요보다 공급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문제가 있는 데다, 일부 저가상품의 경우 현지 랜드사들의 요구로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ㄱ여행사 관계자는 “저가상품을 랜드사나 가이드들이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태국의 경우 과거 쿠데타 등으로 고객이 끊길 때가 있었는데 그때 랜드사들이 지상비 0원짜리 상품이라도 일단 고객만 태국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또 베트남, 중국, 태국 등 동남아·아시아 쪽 현지 여행사의 난립도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ㄴ여행사 관계자는 “사드 여파로 국내 중국인 관광객이 끊기자 우리나라에 있던 화교, 조선족 가이드들이 동남아로 진출해 더 싼 가이드 비용으로 일을 하며 여행시장을 흐려놨다”고 말했다. 이어 “베트남은 다낭이 핫하게 뜨면서 여기저기서 많은 여행사와 가이드들이 몰렸다”며 “현지에서의 공급이 많아지니 시장 자체가 무너진 것도 현지 한국인 가이드들의 상황이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또 패키지 여행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면서 시장 자체가 어려워진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국내 여행사들도 과거처럼 이윤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것이 이들 여행사의 설명이다.

한국여행업협회 관계자는 “국내 여행사들의 지상비 0원 문제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문제 중 하나지만 동남아 현지 랜드사 간의 출혈경쟁도 문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여행사가 랜드사들에게 지상비를 단돈 5만원이라도 주겠다고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몇 군데에서 뒤로 ‘우리는 지상비 안 받을테니 손님만 많이 주세요’라고 접근을 한다”면서 “결국 이 모든 문제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가이드들과 패키지 여행객들”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와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한국여행업협회 등은 지난 3월부터 국내 여행사들이 랜드사와 응찰서를 작성할 시 최소한의 가이드 활동비를 명시하고, 가이드들이 부담하는 지상비 액수를 조정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또 매달 현지 가이드들의 근로현황을 취합,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