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에 싸인 삼성바이오로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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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특별감리 끝에 회계위반 결론… 분식회계 논란 일파만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 의혹을 받아온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특별감리한 끝에 ‘회계위반’이 인정된다고 결론짓고, 오는 17일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은 상장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투자자 혼란, 금융당국 및 시장의 신뢰성 문제, 최종적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추진 당시 국민연금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삼성 측의 해명과 부인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 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 연합뉴스

이재용 경영권 승계 문제까지 정조준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종속회사에서 2015년 말 관계회사로 지위가 변경되면서, 4년간 적자였던 회사가 2015년 말 당기순이익 1조9049억원의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한 과정이 적절했는지 여부다. 이 같은 회계처리가 정상적 기준에 따른 것이냐, 분식회계인가 하는 점이 판단의 핵심이다.

2014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율은 90.3%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종속회사의 지위였다. 사실상 바이오로직스가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다 2015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돌연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위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종속회사일 경우 회사의 가치가 취득가액으로 평가되지만 관계회사가 되면 시가로 평가기준이 바뀐다. 종속된 회사라면 회사 가치를 취득가격으로 평가하고 종속회사의 자산이나 부채, 이익 등을 모기업의 재무제표에 반영하지만, 지배력이 없는 단순 관계회사라면 시장가격으로 가치를 평가하되 자산과 부채, 이익 등은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회사 가치 판단기준이 취득가 기준에서 시가 기준으로 변경되면서 2011~2014년까지 적자를 기록했던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5년 말 1조9000억원대의 흑자 기업이 됐다.

급작스런 회계기준 변경에 대해 시민단체 및 금감원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고의적으로 회계 처리기준을 위반했다고 보는 것이다.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실제 지배력을 상실한 것도 아니고, 지배력을 상실할 만한 큰 사건도 없다고 해석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보통 합작회사는 회계기준을 정할 때 한 번 정하게 되면 권리관계에 변동이 없는 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처리해야 한다”며 “국제회계기준에 기초해 보더라도 회계처리를 변경할 근거도, 그런 사례도 없다”고 밝혔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법인과 협의해 회계기준을 변경한 것이지, 회계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궁극적으로 행정소송까지 불사할 계획”이라고 맞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에피스를 세울 때 미국 신약회사인 바이오젠과 공동투자하면서 바이오젠이 바이오에피스 지분을 49.9%까지 늘릴 수 있는 콜옵션 계약을 맺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와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배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반영해 관계회사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혼돈에 싸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이 문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도 연관돼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핵심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2015년 당시 국민연금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6.3%를 소유한 대주주였다. 심상정 의원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핵심 근거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 가능성이었다”며 “성장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특혜상장과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당시 적자 기업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실제로는 11조원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 당시 국제자문기구는 국민연금 판단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조원가량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를 평가했다.

8조원 시가총액 증발 투자자 손실

‘안종범 수첩’에는 삼성과 관련해 ‘엘리엇 방어대책’, ‘동계스포츠 선수 양성, 메달리스트’, ‘금융지주, 삼성 바이오로직스, 재단, 승마, 빙상’ 등이 적혀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가 회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관리됐음을 시사하는 증거로 해석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1심 선고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없었다는 판단을 얻은 삼성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삼성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5월이고, 바이오 회계 처리 변경은 2015년 말에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무관한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을 심의하기 위해 오는 17일 열리는 감리위원회를 대심제로 열 계획이다. 대심제는 분식회계 같은 회계부정이나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제재과정에서 검사부서와 제재 대상자가 동시에 출석해 일반 재판처럼 진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감리위 심의 때는 금융감독원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양측 관계자가 동시에 입장해 상호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금감원 회계조사국이 감리위에 분식회계 증거를 제시하고 의견을 제시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 측 관계자와 변호사가 반대 주장을 펴게 된다. 감리위원회에서 사전 심의를 거친 뒤 증선위가 최종 판단을 내린다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당시 해외시장에 상장하려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에 상장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상장규정까지 바꿔가며 국내 시장에 상장시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금융당국이 회계위반이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직접 규정까지 고쳐가며 상장시킨 회사에 대해 제 손으로 상장 폐지 여부까지도 가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또 애초 참여연대 등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직후에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했음에도 “문제가 없다”며 미적대던 금융당국이 이제 와 특별감리 결과를 내놓은 점도 비판 받을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들이 회사와 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소송에 나설 전망이다. 금감원이 분식회계 결론 사실을 사전통지한 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가 하락해 8조원 넘는 시가총액이 증발하며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윤주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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