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나라 연구’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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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 ‘설탕 음모론과 포화지방 그리고 콜레스테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키즈 박사는 포화지방을 많이 먹으면 혈중 콜레스테롤이 올라가고, 심장병 사망도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고안을 했는데, 콜레스테롤이 아주 낮은 나라에서도 콜레스테롤이 높을수록 심장병이 잘 생기는지(일본), 지방은 아주 많이 먹는데 포화지방은 적게 먹는 나라에서는 심장병이 어떤지(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콜레스테롤이 높은 나라(핀란드)에서도 그런지 등등 당시로서는 가장 도전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설탕. / 연합뉴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설탕. / 연합뉴스

일본,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핀란드, 미국 등 7개국 연구자들이 참여했는데 총 16개 마을(cohort)이 선정되었습니다. 비교적 고립되고 안정된 시골마을의 당시 40~59세 남성 1만2763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1958년부터 1970년까지 기간별로 기초 데이터를 모으고 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그 통계를 바탕으로 지금까지도 분석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곱 나라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총지방의 섭취가 아니라 포화지방의 섭취가 많을수록’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아지고,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을수록 심장병 사망이 많아집니다. 또한 콜레스테롤 섭취량은 혈중 콜레스테롤과는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혈중 콜레스테롤과 심장병 발병의 상관관계는 일본처럼 당시 총콜레스테롤이 160㎎/㎗에 불과한 나라에서나, 총콜레스테롤이 260㎎/㎗ 정도 되는 핀란드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최근 포화지방-콜레스테롤-심장병의 고리를 부정하려는 목적으로 일곱 나라 연구의 결과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비판이라고 하지 않고 비난이라고 하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고 억측과 무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22개 나라에 대한 연구였다?

첫째, 가장 많이 회자되는 비난은 키즈 박사가 원래는 22개국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었는데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의도적으로 자신의 주장에 부합되는 7개 나라만 골라서 결과를 발표했다는 설입니다. 거의 소설에 가까운 내용인데, 일화를 완전히 잘못 이해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입니다.

22개국에 대한 연구는 키즈의 연구가 아니라 버클리대학 통계학 교실의 예루샬미(Yerushalmy) 박사의 1957년 7월 논문 <Fat in the diet and mortality from the heart disease>에서 언급된 사항입니다. 이때는 아직 키즈 박사가 일곱 나라 연구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때이고, 그 전에 제시한 여섯 나라의 지방 섭취와 심장병의 연관성에 대한 반론이었습니다. 이 논문에서 예루샬미 박사는 키즈 박사가 보여준 6개국의 관련성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22개국의 통계를 내면 지방섭취와 심장병의 관련성은 많이 ‘약해진다’고 언급했습니다. 외국의 어떤 작가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 부분에서 지방 섭취와 심장병의 관련성은 ‘없어진다(vanished)’고 잘못 썼는데,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다른 작가나 블로거들이 다 베껴 써서 마치 그런 것처럼 퍼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한 번이라도 예루샬미 박사의 논문 원문을 보았더라면 이런 글은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22개국 연구는 키즈 박사의 연구도 아니었고, 키즈 박사가 나중에 의도적으로 7개 나라만 고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22개국의 분석에서조차 지방 섭취량과 심장병의 관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해질’ 따름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결함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를 초월한 통일된 진단명과 기준을 정하고 음식도 중앙연구실로 가져가 일일이 성분 분석을 하고 훈련된 연구원들이 연구 참여자들을 평생에 걸쳐 면담하고 중앙에서 사망 통계를 모으고 분석하는, 당시로서는 너무나 큰 연구인 일곱 나라 연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연구를 코호트 연구라고 합니다.

둘째로, 연구 결과에 대한 비난도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핀란드와 그리스가 조금 독특합니다. 핀란드는 이 연구에서 제일 포화지방도 많이 먹고 따라서 혈중 콜레스테롤도 가장 높습니다. 그래서 심장병 사망률도 가장 높습니다. 그런데 동부 핀란드(E)의 사망률이 서부 핀란드(W)보다 훨씬 높습니다. 반대로 지방은 많이 먹는데 포화지방은 아주 적게 먹는 그리스는 역시 혈중 콜레스테롤이 낮고 심장병 사망률도 낮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의 크레타(K)는 그리스의 코루푸(C)보다 훨씬 사망률이 낮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뜬금없는 비난을 합니다. 이렇게 포화지방의 섭취량과 혈중 콜레스테롤이 같아도 사망률이 차이가 나는데도 키즈는 이 사실을 무시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비난합니다. 연구를 조금만 해본 사람이 들으면 실소를 금치 못할 비난입니다.

이런 연관성 연구에서는 위에 언급한 발견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생산적입니다. 위의 비난의 내용은 연구의 결점이나 허위의 증거가 아니라 이 연구가 주는 다음 연구에 대한 중요한 단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심장병 발병에는 포화지방-혈중 콜레스테롤 말고도 다른 어떤 중요한 요인이 작용한다고 추정할 수 있는 강력한 발견인 것입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인종적 배경(스웨덴 출신의 서핀란드인-우크라이나 출신의 동핀란드인), 항산화·항염증 작용이 있는 음식의 섭취 여부, 운동습관, 흡연, 생활습관의 차이 등도 심장병 발병에 중요하다는 것이 이 연구와 다른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습니다.

설탕회사의 로비가 작용했다?

프렌치 파라독스로 유명한 프랑스는 일부러 제외했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프렌치 파라독스는 지방을 많이 먹는 프랑스인들이 오히려 적게 먹는 나라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내용입니다. 그 이유로 와인을 꼽았는데 마케팅의 영향이 큽니다. 그런데 ‘프렌치 파라독스’라는 말은 1981년에야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일곱 나라 연구가 시작된 1950년대 중반에는 이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처음에는 프랑스도 연구에 참여하려고 예비 모임에 나왔습니다. 중간에 재정지원의 문제와 관심이 별로 없었던 프랑스 연구자들이 불참한 것입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나마 ‘프렌치 파라독스’는 잘못된 통계 분석의 결과임이 밝혀졌습니다.

일곱 나라 연구에서 설탕 섭취가 심장병 발생의 중요한 원인임이 밝혀졌는데 설탕회사의 로비로 의도적으로 묵살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역시 근거가 없습니다. 단일인자분석(univariated analysis)에서 설탕 섭취량은 심장병 발병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원인이 가장 중요한가를 평가하는 다중인자분석에서 설탕은 늘 탈락하고 포화지방만이 유의미했습니다. 그 뜻은 포화지방이 설탕보다 훨씬 중요한 심장병의 위험인자라는 뜻입니다. 2016년 <가디언>에 게재된 ‘‘설탕음모론(Sugar conspiracy)’에서 일곱 나라 연구의 중요한 연구책임자가 “사실은 설탕이 심장병의 중요한 위험인자였다”고 고백했다는 내용과 논문 인용이 있는데, 논문 인용도 잘못되었고 그 연구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론했습니다.

이렇게 일곱 나라 연구에 대해 가장 많이 회자되는 비난은 근거도 없고 사실도 아닙니다. 설상가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허무하게도 일곱 나라 연구는 포화지방-심장병 이론을 공격할 단 하나의 결정적 타깃이 아닙니다. 수많은 후속 연구에 의해서 일곱 나라 연구에서 밝혀진 ‘평면적 연관관계’가 포화지방 섭취 증가→혈중 콜레스테롤 증가→심장병 발병의 ‘인과적 고리’로 상향 평가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일곱 나라 연구에 대해 아무리 비난을 해봐야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촘촘한 다른 연구들의 진실성과 강고함에 전혀 흠집도 주지 못합니다. 과학적 이론은 어느 하나의 연구와 가설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홍근 연세조홍근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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