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왜 금감원장에 매달렸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국회 안 거쳐도 시행세칙 바꿀 수 있어… 파격인사 통해 금융개혁 돌파 의지

‘3월 12일 최흥식 원장 사의 표명, 4월 16일 김기식 원장 사의 표명.’

불과 한 달 사이에 ‘금융검찰’이라고 불리는 금융감독원의 수장이 두 명이나 사표를 썼다. 문재인 정부는 출발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세 번째 금감원장을 임명해야 할 처지가 됐다. 특히 지난해 금감원에서도 채용비리를 비롯해 방만경영을 지적 받았다는 점에서 금감원의 위상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사퇴 전인 지난 16일 서울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저축은행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사퇴 전인 지난 16일 서울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저축은행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그러나 금융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그 해결책으로 ‘특정인’만을 내세워 돌파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한다면 사람 한두 명을 바꾸는 일로 끝낼 게 아니라 현 감독기구 체계의 문제점부터 들여다보고, 향후 금융행정 조직과 감독 조직을 어떻게 가져갈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두 명이나 사표

“여러분 중에는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로부터 정책적인 명령을 받아 이를 단순히 집행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금감위는 중요한 감독정책에 대해 판단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이며,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바로 금감원이 해야 할 일이다.”

이는 1999년 1월 4일 출발한 금융감독원의 이헌재 초대 원장의 창립 기념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1999년 이전 금융감독체계는 은행, 증권, 보험 등이 각기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등으로 분산되어 있었다. 상호저축은행 등은 감독권한이 당시 재정경제부에 있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월 다원적인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하자며 대통령 직속으로 금융개혁위원회가 설치됐다. 당시 5개월간의 논의 끝에 ‘금융개혁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이 보고서는 금융감독기구를 통합해 일원화하고, 거시경제정책 및 통화신용정책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금융감독기구를 설립하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나온 기구가 무자본 특수법인인 금감원이다. 금감원은 정부기관이 아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독립해 특정한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특수법인이다. 이는 정치적 압력 또는 정부의 영향력에 의해 자율성을 잃지 않고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금융감독기능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금감원의 20년 역사는 외풍에 휘둘린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정권이 바뀌면 금감원장도 나가야 했다. 임기 3년을 다 채운 금감원장은 역대 12명 중 2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들어 사퇴했으며, 김용덕 당시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도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사퇴했다. 진웅섭 금감원장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 사퇴했다. 정부기관이 아닌데도 정권과 운명을 같이한 셈이다.

이헌재 초대 원장은 금감원이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는 기구라고 했지만 금감원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위와 금감원을 ‘혼연일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금감원이 금융위의 정책적 ‘명령’을 받아 집행하는 곳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금감원 내부도 정치권과 금융권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렸다. 그 대표적 사례가 채용비리 사건이다. 2014년 전 국회의원 아들 변호사를 특혜 채용했다는 점이 드러났고, 지난해 금감원이 2015년 신입사원 채용에서 당초 채용계획을 바꿔가며 기준 미달자가 부당선발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외부 청탁 의혹도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출범하면서 금융위원장에 관료 출신인 최종구 위원장을 임명했다. 금감원장에는 최흥식 전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임명했다. 그는 금감원 역사상 최초로 민간인 출신이었다. 역대 금감원장은 관료들이 가는 자리였다. 이때도 ‘파격’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독립적인 금감원은 온데간데 없어

채용비리 의혹으로 사퇴한 최 전 원장 자리에 곧바로 임명된 사람이 김기식 전 의원이었다. 그는 참여연대 출신으로 시민운동에 앞장서 왔고 19대 국회의원 시절에도 워낙 깐깐해 국회 정무위의 ‘저승사자’로 통했다. 김기식 전 원장에게 각종 의혹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임종석 비서실장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법성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보내고, 문재인 대통령은 메시지까지 내놓으면서 김 전 원장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금융위라는 정부 조직은 관료를 고수하면서 금감원장만 유독 ‘파격’ 인사를 했다. 무슨 이유일까.

현재 금융감독체계는 금융위에서 정책 결정을 하고, 금감원은 직접 감독과 실행을 한다. 법 개정사항이라면 정부부처인 금융위를 거쳐야만 한다. 현 정권 인사들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관료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특히 모피아(재정경제부 관료들을 일컫는 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이 때문에 금융위를 통해서 개혁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금융위라는 관료조직을 ‘통과’하더라도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에 부딪히면 법안 하나 수정하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감원장은 국회를 거치지 않더라도 시행세칙을 바꿀 권한이 있다. 금융회사들은 법안보다 구체적인 시행세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더 민감하다. 또한 금감원은 직접 금융회사에 검사를 나가기 때문에 법 개정을 하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가장 빠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장과 가장 맞닿아 있는 조직이라는 점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금융위라는 관료조직은 그대로 두고 금감원장만 파격 인사를 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가 ‘인물’에만 기대어 ‘빠른 변화’를 추구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관료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금감원에서 금융개혁을 시작하는 게 빠르기는 하다”면서도 “그렇지만 금융위원장은 그대로 두고 금감원장만 바꿔서 얼마나 큰 변화가 올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감원을 비롯한 금융권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금융개혁의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정하고, 금감원의 위상과 역할도 제대로 정립한 뒤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는 “금융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금융감독기구 개편이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감독기구 개편 논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어느 정부든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면서 “금융개혁의 초점을 감독기구 개편에 둘 것인지, 소비자 보호 이슈인지, 산업적 측면인지 방향성을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