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착용자 해외도주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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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자 출국 허가 여부 보호관찰소와 출입국관리소 사이 정보 공유 안돼

3월 25일, 전자발찌 착용자인 50대 ㄱ씨는 보호관찰소에 알리지 않은 채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며칠 뒤인 4월 4일에는 30대 ㄴ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ㄴ씨는 베트남 호찌민시의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다가 현장에서 체포됐으나, 50대 ㄱ씨는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한 이후 소재가 불명확하다. 법무부는 전자감독 대상자의 해외 무단출국은 ㄱ씨와 ㄴ씨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자감독 대상자의 무단출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또한 보호관찰소의 허가를 받고 출국했으나 정해진 기간 내에 귀국하지 않은 경우까지 더하면 해외에 도주 중인 전자감독 대상자의 수는 더 늘어난다.

2013년 3월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에서 관계자가 전자발찌 착용을 직접 시연해보이고 있다./박민규 기자

2013년 3월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에서 관계자가 전자발찌 착용을 직접 시연해보이고 있다./박민규 기자

해외 도주 4명 중 3명은 아직 못잡아

법무부에 따르면 전자감독 대상자가 해외로 출국한 뒤 정해진 기간 내에 돌아오지 않아 지명수배된 이는 총 4명이다. 이들은 모두 담당 보호관찰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출국했으나 지정된 일자에 귀국하지 않았다. 한 대상자는 2012년 2월 구직활동을 이유로 중국에 출국했다가 아직 입국하지 않았다. 또 다른 대상자는 2013년 8월 필리핀으로 출국했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법무부는 4명 중 1명만이 입국해 다시 전자감독을 집행 중이라고 밝혔다.

ㄱ씨와 ㄴ씨 이전에도 전자감독 대상자가 보호관찰소의 허가 없이 해외로 출국한 일이 있었다. 2014년 8월 제주보호관찰소 관할인 30대 ㄷ씨는 보호관찰소 측에 국내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ㄷ씨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 여행을 떠났다. 법무부는 ㄷ씨의 출국 이후 이 사실을 알고 지명수배를 내렸으나, 다행히 ㄷ씨가 6일 뒤 자진 귀국함에 따라 사건이 종료됐다.

법적으로는 전자감시 대상자가 ㄱ, ㄴ, ㄷ씨처럼 무단으로 해외에 나갈 수 없다.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대한 법률’(이하 전자장치법) 14조에 따라 전자감독 대상자가 해외로 출국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할 보호관찰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법무부 내부지침에 의하면 전자감독 대상자는 출국이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다만 여권, 항공권 및 출국 후 체류지와 연락처, 출국 후 담당 보호관찰관과 연락 가능한 방법 등을 제출한 이에 한해서 보호관찰소장이 출국을 허가할 수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보호관찰소의 허락을 받고 출국한 전자감독 대상자가 총 490명이라고 밝혔다.

전자감시 대상자가 보호관찰소의 허가도 없이 출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전자감시 대상자라고 해도 범죄혐의가 없으면 출국금지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출입국관리소에서 무단 출국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게 법무부의 해명이다. 하지만 같은 법무부 산하기관인 보호관찰소와 출입국관리소 사이에도 원활한 정보 교환이 이뤄지지 못했다. ㄱ씨의 관할 관청인 서울보호관찰소 관계자는 “감독 대상자의 신원정보를 출입국관리소에 함부로 제공할 수 없다. 당연히 출입국관리소에서 출국하려는 이가 전자감독 대상자인지, 보호관찰소의 허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길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자장치법 14조가 무력화된 이유는 같은 법의 16조 2항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자장치법 16조 2항은 대상자의 신상명세를 수사기관에만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일선에서도 출입국관리소에 전자감독 대상자를 일단 등록해놓고, 대상자가 출국할 때마다 출입국관리소와 소통을 하면 무단출국에 간단히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법무부에도 건의했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잠정적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자감독 대상자를 지나치게 신뢰한 서울보호관찰소의 대응도 문제였다. ㄱ씨는 특수강도강간 등의 범죄를 저질러 총 22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2014년 출소했다. 2016년에는 여성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다가 붙잡혀 700만원의 벌금형을 추가로 받았다. ㄱ씨는 벌금마저도 제대로 내지 않아 올해 1월에는 B급 수배자로 등록된 상태였다.

ㄱ씨가 일본으로 무단출국한 3월 25일 일요일 상황을 다시 살펴봤다. 오전 10시26분, ㄱ씨의 전자발찌가 감응범위를 이탈해 경보가 울렸다. ㄱ씨의 전자발찌와 휴대용 위치추적 장치의 거리가 5m 이상 떨어졌다는 뜻이다. 보호관찰소에서 바로 ㄱ씨에게 전화를 걸어 감응범위 이탈의 이유를 묻자 ㄱ씨는 “대리운전 고객 차량에 휴대장치를 놓고 내렸으며, 고객이 대구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ㄱ씨의 위치추적 장치가 대구로 가지 않고 서울 고속터미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서울보호관찰소 신속대응팀이 11시15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신속대응팀은 1시간여의 수색 끝에 12시38분에 고속터미널 인근 쓰레기통에 버려진 휴대장치를 발견했다.

같은 시간 ㄱ씨는 김포공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후 1시쯤 김포공항에 도착한 ㄱ씨는 1시18분에 출국심사를 통과했다. 2시에는 한 국내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떠났다. 서울보호관찰소 측에서 버려진 휴대장치를 발견한 즉시 출입국관리소에 이 사실을 알렸다면 ㄱ씨는 출국을 하지 못했거나, 최소한 ㄴ씨처럼 외국의 공항에서 붙잡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보호관찰소는 휴대장치 발견 이후 ㄱ씨에게 “보호관찰소로 돌아와 휴대장치를 다시 가져가라”고 연락한 이후 5시30분까지 특별한 추가 대응을 하지 않았다.

범죄 혐의 없으면 착용자도 출국 가능

서울보호관찰소는 ㄱ씨의 출국이 확인된 순간까지 ㄱ씨가 고의로 휴대장치를 버린 건 아니라고 믿었다. ㄱ씨의 추적장치를 찾은 과정에서도 ㄱ씨의 도움을 받았다. 서울보호관찰소는 ㄱ씨가 보호관찰관과의 통화에서 “대리운전 차 주인이 추적장치가 담긴 봉투가 더러워서 고속터미널 근처 휴지통에 버렸다고 한다”고 알려줬고, 이 덕분에 버려진 추적장치를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ㄱ씨는 대리운전을 하지도 않았고, 무단출국을 위해 고의로 추적장치를 버린 것이었다.

서울보호관찰소가 ㄱ씨의 출국을 인지한 것도 ㄱ씨 덕분이었다. 버려진 추적장치를 발견한 지 5시간 가까이 지난 오후 5시30분쯤, ㄱ씨가 담당 보호관찰관에게 ‘일본에 와 있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그제서야 서울보호관찰소는 서초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하고, 김포공항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ㄱ씨의 출국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서울보호관찰소는 3월 28일까지는 전화를 통해 ㄱ씨와 의사소통을 했지만, 이후에는 연락이 두절됐다. 서울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제3자가 보기엔 ‘왜 대응이 늦었냐’고 할 수도 있지만 현장에 직접 뛰어든 사람이 보기에는 이게 고의인지 실수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고의로 휴대장치를 버렸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는 전직원을 비상소집하고 경찰과 출입국관리소에 관련 사실을 알리는 등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ㄱ씨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진 상태이며 자세한 행적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무부 “출국 허가 확인 시스템 구축 계획”

법무부에 전자감독 대상자의 해외 출국 시 보호관찰소의 허가가 있었는지 출입국관리소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 없는지 물었다. 서울보호관찰소 관계자도 “일선에서도 허가 받지 않은 대상자가 출국할 때 출입국관리소에서 통제가 되는 걸로 아는 사람이 많다. 국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이번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데, 기본권 침해 소지가 없는 범위 내에서 제도가 바뀌면 일선직원들의 짐도 조금은 덜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측은 “전자발찌를 찬 채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출국 허가 여부를 위치추적관제센터에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며, 인천공항과는 이미 협의가 완료됐고, 기타 국제공항과도 순차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법무부는 “소재불명이라고 판단되는 대상자에 대해서는 수사의뢰와 동시에 긴급 출국금지 요청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행 분리형 전자발찌와 올해 10월 도입될 일체형 전자발찌 | 법무부

현행 분리형 전자발찌와 올해 10월 도입될 일체형 전자발찌 | 법무부

위치추적 기능 통합된 일체형 발찌 도입

전자발찌제도는 2006년 2월 서울 용산초등생 성폭행 살인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이듬해 4월 전자감독법이 제정되고, 2008년 9월부터 시행됐다. 법무부 자체 평가에 의하면, 전자감독제도 이전(2004~2008년) 성폭력 재범률은 14.1%였으나 이후에는 1.7%로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성폭력범에게만 적용되던 전자발찌는 이후 전자감독법 개정에 따라 미성년자 유괴범, 살인범, 강도범 등도 대상자에 추가된다. 착용기간도 애초엔 최대 5년이었으나 2010년 개정된 3차 개정으로 최대 30년까지 늘어났다. 성폭력 전과자에 대해서도 소급적용(전자발찌제도 도입 이전 성범죄자들을 형이 끝난 이후 전자감시 대상자로 지정하는 제도)으로 전자발찌를 채우는 제도도 이때 도입됐다.

전자감독을 통해 대상자들의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감과 달리. 전자감시제도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현재 전자감독 대상자들이 차고 있는 전자발찌는 분리형 전자발찌다. 발목에 부착하는 발찌와 위치추적장치가 분리된 형태다. ㄱ씨 사건처럼 대상자가 위치추적장치를 버리고 달아난 경우에는 대상자의 위치를 보호관찰소에서 찾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법무부는 2008년 제도가 도입될 당시만 해도 전세계 각국이 분리형 전자발찌를 채택하는 추세였으며, 당시 기술수준으로는 발목에 부착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일체형 전자발찌를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간 전자발찌 훼손 사례가 10여건씩 꾸준히 발생하면서 올해 10월부터는 일체형 전자발찌를 사용하겠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민의 기대감과 기술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 올해 10월부터 전자발찌에 위치추적 기능이 통합된 일체형 발찌를 도입할 예정이며, 전자장치의 훼손도 더 어렵게 바뀐다”고 밝혔다.

전자감독 전담인력의 문제도 전자감독제도의 허점으로 지적된다. 올해 2월 기준으로 전자감독 대상자의 수는 3008명인 데 비해 전자감독 전담직원 수는 162명이다. 1인당 관리인력이 18명을 넘는 것이다. 2008년만 해도 직원 1인당 담당하는 대상자가 3.1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6배 가까이 일거리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기준 44만1689건의 감응이탈 경보가 울린 상황에서 감응범위 이탈만으로는 담당직원이 현장에 출동하기 어렵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특히 소급적용을 통해 전자발찌를 차게 된 경우에는 관리가 더욱 어렵다. 3008명의 대상자 중 소급적용 대상자는 33%인 993명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소급적용 대상자들은 전자감독을 이중처벌로 여기고 보호관찰관에게 불만을 표출하거나 지도·감독에 저항하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무부가 파악하기로는 전자장치 훼손사례 중 58%가 소급적용 대상자들이 일으킨 것이다. 일본으로 도주한 ㄱ씨도 수감 당시엔 전자감독 대상자가 아니었으나, 출소 직전인 2014년 초에 소급적용 대상자가 됐다.

또한 전자감독 대상자 중 18%가량인 539명은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을 앓는 대상자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맞춤형 심리치료 인력이 100명 이상 필요하다. 현재 정부로부터 인정 받은 심리치료 인력은 없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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