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방송 복귀 “그들은 실패했고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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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은 2006년 KBS 연예대상 수상을 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방송인이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소셜테이너 혹은 블랙리스트 피해자의 대표격으로 설명된다.

방송인 김제동은 “예전에도 라디오 DJ 제의를 많이 받았었다”면서 “아침방송을 하게 된 건 일상성의 건강함에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MBC 제공

방송인 김제동은 “예전에도 라디오 DJ 제의를 많이 받았었다”면서 “아침방송을 하게 된 건 일상성의 건강함에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MBC 제공

방송인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 하지만 그의 방송 복귀 소식은 적잖은 화제가 됐다. 데뷔 후 처음으로 라디오 DJ를 맡게 된 김제동(44) 이야기다. 지난 9일부터 그는 MBC 라디오 <굿모닝 FM 김제동입니다>(FM4U)를 오전 7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한다. 방송 이틀째인 10일 서울 상암동 MBC를 찾았을 때 스튜디오 밖 대기실에는 그의 ‘새출발’을 축하하며 팬들이 보낸 꽃다발과 케이크, 과일, 음료수 따위의 먹거리가 쌓여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고정방송을 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밤에 내 목소리를 들으면 청취자들이 더 우울해하지 않을까(웃음). 지하철이나 만원버스 안에서 매일 부대끼며 출근하는 평범한 분들의 하루가 얼마나 빡빡한가. 매일 일찍 일어나 그 고달픈 일상을 이어가는 것 자체로 대단하다. 그런 평범한, 이웃에 계신 분들의 삶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일상성의 건강함에 동참하고 싶었다.”

-무대에서 대중을 만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지 않나.

“아침에 나와서 방송하고 스태프들과 함께 밥먹고. TV방송과는 또 다른, 사람 사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형님이 여자친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더라. 배철수 형님도 여긴 진짜 가족 같은 곳이고, 라디오를 하면 내게 진짜 가족이 생길 거라고 했다. 첫날 방송하는데 청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묘한 감동이 있더라. ‘같이 갑시다’ 하는 말이 애드립으로 나왔다.”

-복귀 뉴스에 댓글이 엄청 붙었다. 불편할 법한 이야기도 있던데.

“내가 라디오 진행 하나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왜 불편함이 없겠나. 방송을 하자니 정권 바뀌고 수혜 받았다고 할테고, 안 하자니 ‘거봐라, 능력 없는 것 아니냐’ 이럴테고. 또 가만히 있으면 ‘저 새끼 거룩한 척한다’고 할테고, 어디 나가서 몇 마디 하면 ‘이제 네 세상 왔다고 활개를 치는구나’ 하고. 그걸 어떻게 다 일일이 신경 쓰겠나. 내 일상에 집중하고 내 타이밍을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김제동은 2006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방송인이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소셜테이너 혹은 블랙리스트 피해자의 대표격으로 설명된다. 변곡점은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 노제에서 사회를 봤던 일이다. 그해 그는 진행하던 <스타골든벨>(KBS)에서 갑작스럽게 하차하게 됐고 방송 출연이 뜸해졌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토크콘서트’라는 신영역을 개척하며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매년 겨울 전국을 돌며 열리는 그의 토크콘서트는 티켓 오픈 하기가 무섭게 매진되는 공연계의 히트상품이다.

-토크콘서트는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살려고 발버둥쳤다면 아마 토크콘서트를 못했을 거다. 난 마이크를 잡는 것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편했다. 마이크 들고 방송에 나갈 수 없다면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자고, 그들과 마이크를 나누자고 생각했다.”

-사실 블랙리스트라는 게 ‘밥줄’을 빼앗자는 심산 아닌가. 허를 찔린 셈이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은 실패했고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물론 피해를 입은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에겐 승리의 경험이 있다. 토크콘서트 하면서 만난 수많은 분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방송에 전혀 출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다. ‘힐링캠프’도 5년간 진행했고 지난해까지 ‘톡투유’도 2년간 했다.”

-토크콘서트로 전국을 다녔다. 고향인 대구는 반응이 남다르지 않나.

“한 번은 경북대에서 공연을 했다. ‘김제동 불러서 강의를 하다니 경북대 총장은 자존심도 없냐’, ‘니 모교에서 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더라. 내가 대구에서 전문대를 11년간 다녔으니 이해는 하지만 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틀간 4000명이 와서 성황을 이뤘다. 공연을 다니다보면 대구가 가장 반응이 뜨겁다. 양 극단에서 가장 뜨거운 분들이 모여 계신 곳 같기도 하고. 공연장에 오신 어른들 중에선 부모 말 안 듣는 골칫덩이 자식 보는 듯하는 분들도 계신다. 식당 가면 등짝을 두드려 패면서 밥은 고봉으로 수북이 담아주는 할머니들도 많다. 성주 갔을 때도 꼴 보기 싫다며 오지 말라시던 할머니들이 ‘그래도 오는 건 니뿐이다’라며 밥을 챙겨주시더라.”

-뭘 해도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보며 재단한다는 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닐텐데.

“왜 정우성 형이 KBS 정상화를 외치면 개념 있다고 하고 내가 같은 얘기를 하면 빨갱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짜증도 나고 속도 상한다. 어쩌겠나.”

스튜디오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김제동은 “첫날 방송은 많이 긴장이 됐다”고 말했다./박경은기자

스튜디오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김제동은 “첫날 방송은 많이 긴장이 됐다”고 말했다./박경은기자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버텼다.

“주변에서 힘이 되어준 동료들이 많다. 특히 국진이 형(김국진)은 지금도 자주 만난다. 형이 나에게 제일 많이 해준 말은 ‘니 잘못 아니다’는 것이었다.”

-연애는 안 하나. ‘김제동 열애’ 기사 써보고 싶다.

“정말 노력 열심히 한다. 그런데 안 믿는다. 토크콘서트 할 때도 ‘여자친구 생각하면서 부르겠다’면 반응이 영 그렇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종교시설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면 존경 받는데, 왜 속세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면 하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부터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억울한 표정을 짓던 그는 틈나는 대로 쓸고 닦는다며 이제는 살림솜씨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생활용품이나 가전제품을 종류별로 꼼꼼히 비교해 구입하고 꼬박꼬박 쌀뜨물에 김치를 볶은 뒤 김치찌개를 끓인다. 얼마 전 세탁기에 돌렸다가 줄어든 옷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그는 재활용 쓰레기 문제는 어떻게 됐냐고 걱정스럽게 묻기도 했다.

-그동안 무료 강연이나 기부도 많이 했던데 호구지책은 뭘로 했나.

“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다. 돈 받고 강연도 많이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해야 한다. 왼손이 모른다면 당장 멈출 거다(웃음).”

-미얀마에 학교도 짓던데.

“돈만 보낸 거다. 앞으로 학교에 수영장도 지을 계획이다. 혹자는 수영장까지 짓냐고 묻던데 그 아이들도 수영장에서 재미있게 놀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학생들에게 교복을 보내면서 입고 싶은 브랜드로 고르라고 했다. 왜 가난한 아이들은 매번 물려입거나 새것이라도 제일 싼 걸 입어야 하나.”

-그동안 예능프로그램은 뜸했다. 초·중·고생 등 어린 친구들은 ‘연예인 김제동’을 알아보나.

“얼마 전에 경복궁을 혼자 걷고 있는데 체험학습 나온 듯한 초등학생들을 만났다. 몇 명이 나더러 ‘김제동이다’ 하고 아는 척을 하니 다른 친구들이 ‘누군데?’ 하고 묻더라. 중·고등학생들은 뉴스에서 봤다면서 알아본다. 특히 중학생들은 유튜브에서 강연 동영상 봤다는 반응이 많더라. 중학생들 덕분인지 유튜브에 내 강연 동영상 조회수가 2500만 뷰가 넘었다.”

-유튜브에 김제동 치면 헌법을 강의한 동영상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안 그래도 다음달쯤 헌법에 관한 책이 나온다. 각 나라의 헌법에 대해 공부한 것을 정리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은 감동적이다. 전문이 11개 부족의 언어로 쓰여 있는데 그 자체가 헌법정신이다. 이 나라 초대 헌법재판관 알비 삭스와 통화해 나눈 이야기들도 넣었다. 딱딱한 책은 아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대들기 좋은 헌법 구절, 부부싸움할 때 아내와 남편에게 각각 유리한 구절, 영화 속에 숨어 있는 헌법 등으로 나눠 재미있고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헌법 강연 하는 것을 두고 ‘헌법 조무사’ 운운하며 비하하는 이야기도 많았다.

“‘조무사’는 어떤 업무를 보조하는, 어디서나 필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비하하고 왜곡해 사용하는 것은 속상하다. 난 개헌할 때 모든 사람들이 ‘헌법 조무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헌법은 나 같은 사람이 봐도 굉장히 쉽게 설명돼 있다. 그래서 누구나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개인 누구에게나 헌법을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네가 헌법에 대해 뭘 아느냐’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질문이다. 하지만 난 그런 비아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헌법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필요하다.”

-김제동씨가 생각하는 헌법은 뭔가.

“혹시 드라마 <비밀의 숲> 봤나. 마지막에 나왔던 대사 중 ‘헌법이 있는 한 우리는 싸울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헌법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힘없는 사람들을 받쳐주는 마지막 버팀목 같은 것, 영화 <베테랑>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아트박스 사장’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이러다 헌법 예능도 하겠다.

“재미있지 않을까. 하긴 내가 요가를 하겠나, 민박을 하겠나(웃음).”

“물론 피해를 입은 게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나에겐 승리의 경험이 있다. 토크콘서트 하면서 만난 수많은 분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모른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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