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예자살과 불명예자살 그리고 명예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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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스스로 명예 때문에 죽는다고 하는 죽음들을 보면 명예로운 죽음과는 거리가 있다. 대부분 개인의 행위에 대한 무고함을 밝히려는 작은 행위에 불과하다. 충분히 살아서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었을 것이다.

미투 운동이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에 가해자로 폭로된 한 사람이 자살했다. 유명 중견배우 조민기씨는 2010년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임용된 이후 자신이 가르치던 여학생들을 노래방과 오피스텔 등에서 상습적으로 성추행 및 성폭행한 의혹을 받았다. 오랜 시간 소문으로만 떠돌던 그의 죄상은 지난달 미투 운동 속에서 몇몇 피해자들로부터 가해자로 지목돼 드러났다. 그러나 조씨가 부인하자 피해 당사자들과 목격자들의 폭로성 글들이 학교 게시판과 포털 게시판에 봇물처럼 쏟아졌다. 결국 그는 사과문을 내며 경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자신의 거주지 아파트 지하창고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하고 아울러 그가 받아온 다양한 범죄의혹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죽음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배우 조민기 씨가 9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오피스텔 지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가 발견된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우 조민기 씨가 9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오피스텔 지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가 발견된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조민기의 자살로 그에 대한 논란은 사라지는 듯했지만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자 일부 누리꾼들은 미투 피해자들이 일종의 마녀사냥으로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주장은 성추행을 한 조민기의 ‘죄의 값’은 ‘죽음’보다는 크지 않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서는 조민기의 죽음에 대해 피해자들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으며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조민기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 자체가 2차 가해이며, 조민기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지금의 상황은 피해자의 탓이 아니며, 이러한 주장들은 “누군가 피해자를 원망한다면 그것은 가해자를 향해야 하는 분노를 잘못된 방향으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적극 옹호했다. 그들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아픔과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피해자 스스로 고백한 용기로 인해, 그동안 학교 내에서 조민기와 같은 가해자들에 의한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된 힘없는 수많은 학생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조민기의 죽음이 피해자들의 마녀사냥식 폭로와 무관하지 않다는 일부 누리꾼들의 댓글은 현재진행형이다.

조민기 자살을 둘러싼 논란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를 ‘명예자살’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다른 문화권에 비해 자살을 통해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려는 동기가 강하다(한국자살예방협회, <자살의 이해와 예방>, 2010). 이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문화 속에 억울한 누명을 쓰면 자살로써 더럽혀진 명예가 회복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사람이 실질적으로 범죄를 저질렀거나 그 사람이 누명을 쓸 만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일단 자살을 하면 그 누명이 벗겨지고 결백이 보증된다고 보는 것이다(이규태, <한국인의 의식구조>, 1999). 여기에는 공동체 중심의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에 약한 정서가 결합한다. 즉 “오죽했으면 죽었을까”라는 동정의 정서가 자살자에게 적용되어, 그가 분명하고도 명백히 (법적·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많은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죽인다는 더 큰 도덕적 행위가 무기가 돼 오히려 자살자가 그를 정당하게 비난했던 상대방(법적 권위이든 피해자든)보다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도록 만들어 기묘한 인지구조를 만들어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논리를 단순화시키면, 명예자살이 가능하게 되는 논리 안에는 개인의 ‘목숨 값’은 다른 많은 불명예스런 행위의 ‘죄의 값’보다 적어도 같거나 크다는 점이 전제된다. 그래서 죽음으로써 그가 한 이전의 모든 불명예 행위가 상쇄된다는 점이다. 이 점은 현재 일부 누리꾼들이 제기하는 일종의 동정론과도 궤를 같이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러한가? 우리 문화가 언제부터 그러했을까. 조선시대 계유정란의 주역 한명회는 죽음 이후 ‘부관참시’를 당했다. 그 말고도 우리 역사 속에서 부관참시는 여럿 있었다. 우리 문화 속에서도 죽음이 그가 한 불명예 행위를 모두 상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 문화에 명예자살이 받아들여졌을까?

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기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겨우 민주주의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누리는 것은 가혹한 역사 속에서 지난한 민주화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런 시대, 특히 1980년대 즈음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젊은 혁명가들에 의해 항의나 저항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결행된 이른바 ‘분신자살’을 자주 목도했다. 그 죽음은 분류하자면 ‘공격형 자살’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격형 자살을 일본의 ‘할복자살’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지만 할복자살은 전근대적인 주군에 대한 책임과 의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 성격이 다를 것이다. 오히려 헤이그 밀사 ‘이준’ 열사나 ‘민영환’의 순국과 맥을 같이한다. 이런 죽음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의를 위한, 말 그대로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해도 그 누구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 명예자살이 받아들여졌나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죽음들, 스스로 명예 때문에 죽는다고 하는 죽음들, 예를 들어 국가정보원 임모 과장이 국정원이라는 조직의 명예를 위해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한 사건, 국가안전기획부 부장을 지낸 권영해가 총풍사건 조사 도중 할복해 자살미수에 그친 사건 등을 보면 이런 죽음은 명예로운 죽음과는 거리가 있다. 열사들의 의로운 죽음이 대의에 따른 진실과 정의를 현재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기에 항거를 한 거룩한 행위라고 한다면, 후자는 대부분 개인의 행위에 대한 무고함을 밝히려는 작은 행위에 불과하다. 충분히 살아서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얘기하는 명예자살은 실은 내용적으로는 불명예자살이다. 자신의 목숨같이 귀한 것을 버린다는 행위를 통해 자신에게 드리워진 혐의를 상쇄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왜곡된 명예자살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명예살인과 궤를 같이한다. 명예살인(名譽殺人·honor killing)은 가족, 혈연집단, 공동체 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조직 내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혹은 대표로 살인하는 행위를 말하며, 명예를 지킨다는 것이 살인의 정당한 명분이라고 한다. 문어적 의미로 볼 때, 공동체의 원수에 대한 복수 같은, 명예를 위한 살인을 모두 명예살인이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간통을 저지른 여성이나 혼전 성관계를 가진 여성에 대한 살인’이 그 주를 이루고, 가장 큰 문제는 조직 내 혹은 외부의 다른 남성에 의해 강간을 당한 경우 피해자를 죽임으로써 조직의 명예를 지켰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원칙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시시비비를 가려 가해자를 처벌하면 되는 것을 시시비비 없이 (힘없는 소수자인) 피해자의 입을 원천적으로 막음으로써 논란을 없애는 방식, 사회적 타살의 방식인 것이다.

조선후기 왕으로부터 그 알량한 열녀문 하나를 얻기 위해 과부를 죽이는 행위, 여자 친족이 다른 남자 친족에 의해 강간을 당했지만 그것이 밝혀지면 가문이 콩가루가 될까 두려워 자살을 가장한 타살이 이루어진 행위 등은 조선후기 사료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정당한 자들의 입을 막는 행위는 결국 ‘정의’의 문제이다. 명예살인에 익숙한 문화에서 볼 때 명예자살은 가까운 사촌이다.

우리 사회가 죽음의 문제를 일부이지만 정서의 문제로 곡해하는 것은 바로 명예살인의 문화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제는 정서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명예자살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죽음 앞에서 정서와 정의 간의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장(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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