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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불비례성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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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 불일치 커 국민의 뜻 반영 못해

국가정치에서 국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듯 지방정치에서는 지방의회(광역의회, 기초의회)가 집행부를 감시·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방의회의 집행부 견제·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등 지방의회 무용론이 퍼져 왔다.

지방정치가 잘 바뀌지 않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대통령 선거보다 20%가량 투표율이 낮고 정치신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방선거제도 자체가 잘못돼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이 저조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행 지방선거제도가 투표 민심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정치신인이 지방선거에 참여하려 해도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오랫동안 한국의 정치제도가 국민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지적해 왔다. 정당의 득표율과 실제 의석 비율의 불일치(불비례성)가 크다는 것이다. 독일, 네덜란드 등 투표 민심이 제대로 전달되는 정치제도를 가진 나라 국회의원의 불비례성은 1~2%에 그친다. 반면 한국의 불비례성은 20%를 넘고 있다.

지방의회는 국회보다 더욱 심각한 불비례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문재인 정부 출범을 맞이해 불공정한 정치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선언했다. 정치개혁공동행동은 현행 지방선거제도를 불비례성이 심각한 “세계 최악의 선거제도”라고 비판했다.

[표지이야기]지방선거 불비례성 심각하다

소수정당 살아남기 힘든 구조

광역의회 선거의 경우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형태다. 기초의회 선거는 중대선거구제(2~4인 선거구)와 비례대표의 혼합형이다. 하지만 선거법에 의해 지방의회의 비례대표 비율은 정원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소수정당 후보가 살아남기에 구조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2014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거대 정당이 자신이 받은 득표율보다 높은 비율의 의석을 가져간 현상이 관찰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의회 선거 결과를 보면, 지방선거제도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과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수정당의 득표가 무의미한 수준이었던 것도 아니다. 전라남도의 경우 당시 통합진보당 12.31%, 정의당 5.27% 등 기타 정당들의 득표율을 합산하면 22.5%에 이른다. 하지만 전체 58석 중 제3정당은 고작 비례대표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울산광역시에서도 제3정당의 득표율 총합은 20.78%에 달했으나, 제3정당은 단 1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전남과 울산 시민의 5분의 1가량은 광역의회에서 자신의 뜻을 반영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강세인 영남에서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새누리당이 50%대의 득표율로 90%의 의석을 차지하는 현상이 이어졌다. 부산시의회에서는 새누리당이 58.14%의 득표로 95.74%의 의석(전체 47석 중 45석)을 가져갔고, 경상남도의회에서도 새누리당은 59.19%의 득표율로 92.59%의 의석(전체 54석 중 50석)을 차지했다. 울산에서도 55.46%의 득표율을 거둔 새누리당에 95.45%(22석 중 21석)의 의석이 돌아갔다. 민주당이 강세인 호남에서도 정도는 덜했지만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전라북도의회에서 민주당은 63.23%의 득표율로 89.47%의 의석(전체 38석 중 34석)을 가져갔다.

영호남 지역은 소선거구제로 인한 승자 독식이 강하게 드러났다. 반면 서울과 경기에서는 민주당이 정당득표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새누리당은 서울시의회, 경기도의회 선거 정당득표에서 모두 민주당을 앞질렀다. 서울에서 새누리당은 45.39%의 득표율을 기록해 민주당을 0.01% 앞섰고, 경기에서는 47.59%를 득표해 민주당을 3.8%가량 앞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에 힘입어 민주당이 서울·경기의 대다수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뒀고, 결국 서울시의회 의석의 72.64%(106석 중 77석), 경기도의회 의석의 60.94%(128석 중 78석)가 민주당에 돌아갔다.

시민사회에서는 민심과 선거 결과를 일치시키고, 다양한 정당이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광역의회에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기초의회에서의 중대선거구제 강화(3인 이상 선거구로)를 외치고 있다. 국회 제3세력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에서도 광역의회에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기초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2~4인 선거구)로 치러진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현행 제도가 지방의회의 다양한 구성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초의원 선거의 중대선거구제는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 이후 도입됐다. 하지만 2인 선거구가 대다수인 상황에서 기초의원의 구성은 크게 다양해지지 못했다. 지난 지방선거의 경우 무소속 당선자를 제외한 2621명의 기초의원 당선자 중 98.05%인 2507명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소속이다.

50%대 득표율로 90%의 의석 차지

지방선거제도 개혁방안을 직접 국회에 입법청원한 김낙경 정치개혁부천시민행동 집행위원장은 4인 선거구가 늘어나야 기초의회 구성이 다양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천시만 해도 2인 선거구와 3인 선거구가 거의 반반임에도 불구하고 1명의 무소속을 제외한 전원이 새누리당·민주당 당선자였다”며 “4인 선거구가 많아져야 기초의회의 구성이 다양해지고, 기초단체장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의석 독과점이 심각하다 보니 무투표 당선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총 229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이 중 기초의원 무투표 당선자는 171명이다. 서울에서 22명, 경상북도 14명, 경상남도 13명 등이 경쟁 없이 기초의회에 입성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 정치인들이 지역주민들의 여론보다는 공천권자의 생각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기초의회 2인 선거구는 국회의원-광역의원-기초의원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구조를 반영한 것으로 봤다. 그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둘로 나눠서 광역의원 지역구를 만들고, 그것을 또 둘로 나눠 기초의원 지역구를 만드는 게 현재 지방선거의 구조”라며 “2인 선거구에서는 1-가 또는 2-가 기호로 공천을 받으면 당선권이다. 그러나 4인 선거구에서는 거대정당 공천권자가 2명은 당선시켜야 하는데, 제3세력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다보니 그만큼 공천을 주는 입장에서는 권리가 줄어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민사회에서는 정치신인들의 지방정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정치결사체(지역정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치결사체는 지방선거에만 출마할 수 있는 대신 정당에 비해 설립요건이 낮다. 그동안 기존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정치신인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충북 옥천군에서는 시민단체 활동가 등 여러 정치신인들이 ‘풀뿌리옥천당’이라는 이름으로 집단 출마했다. 하지만 정당 설립요건이 너무 높은 탓에 선거공보물에서는 풀뿌리옥천당을 쓰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

김낙경 집행위원장은 “지역정당제도가 도입되면 무소속 후보들도 자신들을 대표하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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