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삼성도 놀란 이재용 석방 여론도 설득할 수 있을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사법부 판단과 국민의 법감정은 별개… 이 부회장과 삼성의 새 부담으로

지난 2월 5일 오후 삼성그룹 모 계열사 사무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조용하던 사무실에 순간 나지막한 탄성이 흘렀다. 기쁨이나 슬픔 등의 어떤 감정을 나타내는 탄성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무언가에 놀랐을 때 내뱉는 감탄사였다. 당시 사무실에 있던 삼성의 한 관계자는 “감형까지는 기대했어도 솔직히 석방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털어놨다.

2월 5일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353일 만에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정문 밖으로 나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월 5일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353일 만에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정문 밖으로 나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빗발치는 여론에 움츠러든 삼성

그만큼 이 부회장의 석방 소식은 전격적이었다. 삼성 직원들도 놀랐다. 집행유예. 삼성전자의 경우 2심 선고를 앞두고 내심 기대해보는 눈치였지만 행여나 여론이나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입밖으로는 꺼내보지도 못했던 말이다. 그런데 현실이 됐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재판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재판 결과를 놓고 특검과 변호인단은 물론 일반 국민들 간에도 뒷말이 무성하다. 판사를 감찰해야 한다는 민원도 쇄도하고 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에는 또하나의 과제가 생겼다. 바로 2심에 부정적인 여론을 설득하는 것이다. 사법부의 판단과 국민의 법감정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판부 설득에는 성공한 이 부회장이 “유전무죄”를 외치며 분노하는 국민들까지 설득할 수 있을까.

항소심 선고 이튿날인 6일 오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이 개최한 긴급 간담회 자리에는 재벌개혁 관련 전문가들이 집결했다. 이름은 간담회였지만 분위기나 내용은 ‘성토회’에 가까웠다. 민변 김남근 부회장은 “2심 재판부는 재벌이 불·편법을 통해 축적한 부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권력과 결탁해 탐욕과 사익을 추구한 이 사건의 본질 자체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의 노종화 변호사도 “정경유착은 없었다”는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 전체에서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만 삼성그룹 승계작업의 존재를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비꼬았다. 참여연대 안진걸 처장은 “정경유착을 넘어 ‘삼법유착’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작금의 상황을 개탄한다”며 “사법부는 금권으로부터 독립돼야지 정의와 국민의 상식에 유리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판결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판결을 내린 정형식 판사에 대한 특별감찰을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20만명 서명을 달성해 청와대 측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정 판사에 대한 감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청와대 내에서 답변 담당자를 굳이 들자면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이 꼽힌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 수석은 학자 시절인 지난해 1월 법원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한 차례 기각했을 당시 “말도 안되는 결정”이라며 “검찰이 용기있게 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삼성은 재벌개혁 요구에 응답할까

빗발치는 비난여론에 삼성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최대 관건인 이 부회장의 공식 경영복귀 시점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 부회장의 향후 계획에 대해 삼성 측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이 부회장은 재판과정에서도 “석방되면 경영공백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다”며 적극적인 복귀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행유예 판결은 이 부회장의 경영활동에 법적으로 아무런 제약을 주지 않는다. 사내 등기이사 신분을 유지해온 만큼 곧장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봐도 문제될 게 전혀 없다. 롯데 신동빈 회장의 경우 지난해 12월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뒤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계속했고, 올해 1월 14일에는 운동복을 입고 직접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에 나서는 등 외부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이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석방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이 부회장이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국제모바일전시회(MWC)를 통해 공식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 MWC에서 삼성은 2년 만에 신제품 행사인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갤럭시S9’을 공개한다. 이 부회장이 과거에도 MWC에 참석한 사례가 있고, 등기이사로서 이 부회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해외 주요 업체 및 경영진들과의 교류인 점 등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집행유예 기간이라도 기본적으로 해외출국은 가능하다”며 “다만 재판이 진행 중일 경우 출국 전 미리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직업병 피해가족 및 반올림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월 5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법원이 엄중한 처벌을 내리라고 촉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삼성직업병 피해가족 및 반올림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월 5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법원이 엄중한 처벌을 내리라고 촉구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판결로 가장 급해진 것은 특검이지만 특검만큼이나 입장이 난처해진 건 바로 문재인 정부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재벌개혁에 속도를 내라는 압박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재판이 현 정부의 출범 기반인 ‘적폐청산’ 과제 중 재벌개혁을 상징하는 문제임을 짚은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등용하고, 김 위원장이 연차를 써가면서까지 이 부회장 재판에 나가 증언한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석방은 곧 정부의 재벌개혁 실패로 해석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부회장의 재판을 지켜보던 정부가 직접적으로 ‘삼성개혁’에 착수할 명분과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정부가 준비를 안해 왔던 것도 아니다.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집중조사 중이고, 1월 업무보고에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총수 일가 사익 편취의 규제대상이 되는 상장기업 지분요건을 현 30%에서 20%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CEO스코어 분석에 따르면 지분요건 하향 시 당장 삼성에서는 금융계열사의 맏형격인 삼성생명이 규제대상에 포함되게 된다. 공정위는 사실상 삼성을 표적으로 하고 있는 각 그룹의 공익재단 관련 문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12월에는 “삼성물산 합병 당시 삼성SDI의 주식 처분 비율 결정이 잘못됐다”며 삼성SDI에 남은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매각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반대로 보면 삼성이 정부와 여론의 재벌개혁 요구에 ‘응답’할 명분과 필요성 역시 생겼다. 그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삼성은 “총수가 재판 중”이라며 경영공백 문제를 방패로 활용해 왔다. 이제 이 부회장이 풀려난 만큼 더 이상 총수 공백을 핑계 삼기도 어렵다. 자체적으로 개혁안을 마련해 정부와 물밑협상을 벌일 경우 일방적으로 정부 규제를 받는 것보다 수위를 낮출 수도 있고, 개혁안의 내용에 따라서는 이 부회장 판결로 돌아선 여론도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공헌계획 발표 전망도

결국 삼성의 소유·지배구조에서 불합리성과 불투명성 등을 지적 받아온 문제들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게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주식 문제다. 삼성생명은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지분 8.1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보험사는 보험업법 제106조에 따라 대주주 및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회사의 채권이나 주식을 소유할 때 총자산의 3% 이하 금액만 쓸 수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 2017년 말 기준 자산이 276조원이므로 약 8조3000억원가량의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할 수 있지만, 현재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시가 30조원이 넘는다.

원칙대로라면 삼성생명은 기준을 초과하는 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하지만 보험업법 감독규정에서 삼성전자의 지분 가치를 시가가 아닌 취득가(약 5690억원)로 계산토록 예외를 둔 탓에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주요 금융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화재 역시 시가 기준 5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 185만여주를 보유하고 있어 총자산(72조원)의 3%를 넘겼지만 이 감독규정 덕분에 지분을 유지 중이다.

지분을 취득가로 인정하는 이 감독규정으로 사실상의 ‘혜택’을 보는 곳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감독규정을 개정해 지분 가치를 시가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렇게 되면 삼성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다. 감독규정 개정으로 2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당하게 될 경우 그룹 전체의 출자구조가 흔들리고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감독규정 개정은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가 할 수 있지만 그간 금융위는 정부 차원의 규정 개정보다는 국회에서 법률 개정을 통해 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하지만 국회에서 관련 법안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 부회장 석방으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정부가 재차 감독규정 개정을 검토하고 나설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경영과 의사결정과정의 불투명성 문제에 대한 지적에도 이 부회장은 응답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17일 구속된 직후 미래전략실을 해체했지만 시민단체들은 미래전략실의 ‘완전한’ 해체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당시 경제개혁연대는 “계열사 간 수직계열화로 성과를 내고 성공가도를 달려온 삼성이 계열사 간 업무를 조정하는 컨트롤타워인 미전실을 없앤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미전실 기능을 일부 축소하고 부분적으로 분할해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의 핵심 계열사 내부로 이전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월 6일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 규탄 긴급 간담회에서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 6일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 규탄 긴급 간담회에서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경제개혁연대의 전망은 정확히 맞아들어가는 분위기다. 미전실 해체 후 삼성은 실제로 삼성전자에는 ‘사업지원TF’를, 삼성물산에는 ‘경쟁력 강화 TF’를 각각 만들었다. 두 조직 모두 과거 미전실에서 잔뼈가 굵은 주요 임원들이 이끌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미전실 인사지원팀장이었던 정현호 사장이, 삼성물산 경쟁력 강화 TF는 미전실 전략2팀장이었던 김명수 부사장이 수장이다. 삼성생명 역시 곧 내부 TF를 출범시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장으로는 미전실 금융일류화추진팀장이었던 임영빈 전 부사장이 거론된다.

삼성은 ‘미니 미전실’이라고도 불리는 TF들에 대해 “과거 미전실 업무와 전혀 관계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재계만 해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설되거나 신설예정인 TF가 모두 미전실 출신들이 주도한다는 점, TF에서 하는 업무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 등에서 과거 미전실을 연상케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컨트롤타워를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며 “3대 주요 계열사에 독립적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등 내부 ‘이사회 순혈주의’도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이 그룹 차원의 새로운 사회공헌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이 부회장 체제에 들어선 김에 그룹 사회공헌체계도 총괄정비하고 추가계획을 통해 재판에 부정적인 여론도 일정 부분 설득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말 이인용 전 삼성 커뮤니케이션 팀장을 사회봉사단장(사장)으로 임명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경우 아직 확정판결을 받기 전이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거나 하는 등의 사회공헌을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라며 “대신 과거보다 규모가 큰 새로운 사회공헌활동 계획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 ‘의혹’도 부담요소

이 부회장이 설득해야 할 여론에는 단지 본인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8일 임원들 명의로 다수의 차명계좌를 개설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로 이건희 회장과 사장급 임원 A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이건희 회장과 A씨가 그룹 임원 72명의 명의로 차명계좌 260개를 만들어 4000억원가량의 자금을 관리하면서 2007~2010년 이 회장이 내야 할 세금 82억원을 탈루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경찰이 발견한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2008년 삼성특검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새 차명계좌들이다. 삼성 측은 돈의 출처에 대해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돈”이라고 밝혔지만 이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는 지난 국감에서 과세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이 다스의 BBK 소송비용을 대납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점도 이 부회장에게는 부담이다. 이미 검찰이 삼성전자와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했고, 검찰은 소송비용 대납이 확인되는대로 돈의 대가성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소송비용 대납과 그 대가성이 모두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 역시 정경유착에 해당되는 탓에 삼성 총수 일가를 향한 여론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비 대납건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총수였던 시절 발생한 문제지만 사건의 파장이 현직 임원 등에게까지 미칠 가능성도 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