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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필로티와 드라이비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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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게 빨리’ 가장 많이 쓰는 공법… 화재 후에도 같은 방법으로 보수

지난해 12월 11일 오전 충남 천안시 두정동 4층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1명이 숨졌고 13명이 다쳤다. 불이 난 원룸은 필로티(1층을 비우고 기둥으로 하중을 지지하는 구조)로 지어졌고, 한쪽 외벽은 스티로폼을 붙이고 시멘트를 발라 마감하는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처리됐다. 불은 1층 주차장 천장에서 시작됐다. 소방당국은 필로티 구조가 불을 키웠고, 외벽 스티로폼이 타면서 나온 유독가스가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두정동 원룸에 쓰인 필로티와 드라이비트는 5명이 숨지고 139명이 다친 2015년 경기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사고와 29명이 사망한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에서도 피해를 키운 주범으로 꼽혔다. 39명의 목숨을 앗아간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 역시 드라이비트로 마감한 천장에서 나온 유독가스가 비극을 낳았다.

필로티와 드라이비트의 위험성은 이미 관련 연구를 통해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 2014년 경기도 북부소방재난본부에서 실시한 화재감식 연구논문 발표대회에서 현직 화재조사관이 드라이비트의 위험성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로티와 드라이비트는 여전히 도시형 생활주택 건설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시공법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빨리’ 공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원룸. 또다시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반기웅 기자

지난해 12월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원룸. 또다시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반기웅 기자

외벽 마감재 규제 대상은 6층 이상 건물

이미 화재사고를 겪은 건물도 예외는 아니다. 2개월 전 불이 났던 천안 두정동 원룸을 찾았다. 새 입주자를 맞이하기 위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술자들은 필로티 구조의 1층 주차장 천장을 손보고 있었다. 불이 번진 옆 건물 벽면에는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너덜너덜해진 벽면 사이로 스티로폼이 보였다. 화재 당시 불은 옆 건물로도 번졌는데, 불길이 닿은 옆 건물 역시 드라이비트로 마감됐다. 불이 난 원룸 벽에는 임대문의를 위한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 연락을 해보니 원룸 관리인이 받았다. 신분을 밝히고 공사 중인 원룸에 대해 물었다.

-이번에 보수공사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보강하거나 바꾸는 부분이 있나요?

“불 나기 전하고 똑같이 공사할 예정이에요. 이전과 동일합니다.”

-이번에 드라이비트 외벽이 문제가 됐는데, 혹시 외벽 마감재를 바꿀 계획은 없나요?

“이전하고 똑같이 합니다. 그리고 드라이비트는 한쪽 벽면뿐이에요. (바꾸고) 그럴 필요 없어요. 규정도 없고.”

관리인은 곧 공사가 마무리된다며 2월 말에는 입주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화재로 인명사고가 난 건물에 예전과 같은 드라이비트로 덧대겠다는 관리인을 말릴 수는 없다. 현행법상 6층 이하 건물에서는 가연재를 넣은 드라이비트 시공이 가능하다. 건축법은 운동·위락시설 용도의 건축물, 6층 이상 또는 높이 22m 이상인 건축물에 대해서만 외벽 마감재를 불에 잘 타지 않는 자재를 쓰도록 하고 있다. 해당 원룸은 4층 규모로 규제대상이 아니다. 경찰은 화재와 관련해 건물주와 관리인의 과실치사ㆍ과실치상 혐의를 수사하고 있지만 드라이비트 재시공은 별개 문제다. 건물주가 자신 소유의 ‘수익상품’에 이윤을 높이기 위해 원가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스티로폼 단열재를 넣는 드라이비트 시공비는 불연재인 석재를 활용한 시공비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건축사 문모씨는 “스티로폼을 이용한 드라이비트는 가격이 싸고 단열 성능이 좋다”며 “인화성만 아니면 단열성능이나 경제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공법이다”라고 말했다. 드라이비트와 필로티의 부작용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환영 받는 공법인 셈이다.

화재에 취약한 도시형 생활주택

서울 도심ㆍ역세권 일대 임대료가 비싼 도시형 생활주택을 제외하면, 드라이비트와 필로티를 섞어 만든 위험한 ‘보금자리’는 주거취약계층의 몫이다. 당초 도시형 생활주택은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저소득층과 서민들의 주거난 해결을 위해 도입됐다. 전용면적 85㎡ 이하, 300세대 미만 규모로 도시지역에서만 지을 수 있는 ‘서민 주거안정용’ 주택이다. 건축비 절감을 위해 스티로폼으로 건물 외벽을 마감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규제가 풀리면서 외벽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1층 주차장을 비워둔 도시형 생활주택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도시형 생활주택 안전실태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적으로 준공된 도시형 생활주택 가운데 외벽 마감재로 화재 취약자재가 사용된 단지는 전체의 약 30%에 달한다.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상임대표는 “방화문,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있는 아파트와 달리 도시형 생활주택은 아무런 화재대책이 없고 관련해서 고민조차 없었다”며 “짓는 사람 손해 안 보고 짓게 하는 것에 급급해 단가를 낮추고 후려치는 건축방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사회 안전망에 대한 고민 없이 빠르게 확산됐다. ‘빠르고 간편한’ 주택 공급량 확대를 위해 도입한 만큼 규제는 완화됐고 건축허가 역시 손쉽게 났다.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 건축주가 관할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면 관련 부서에서 실무종합심의회를 열어 허가 여부를 정한다. 이때 관할 소방서의 건축허가 동의절차도 함께 이뤄진다. 소방시설에 대한 검토가 구청의 서류 검토를 통해 이뤄지는 셈이다. 도시형 생활주택에 기본적인 소방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이유다. 이렇다 보니 사고가 나면 인명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소방행정자료 및 통계(2015년 기준)에 따르면 해마다 도시형 생활주택에 사는 거주자 가운데 23명이 화재사고로 목숨을 잃고 116명이 부상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재사망사고가 발생한 천안 두정동 원룸 인근 도시형 생활주택에 살고 있는 58살 김모씨는 “지금 살고 있는 건물에 쓴 단열재도 난연재(불에 잘 타지 않는 성질을 가진 재료)는 아닌 것 같다”며 “봄이 오는대로 이사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LH에서 관리하는 다세대ㆍ다가구형 매입임대주택 상당수가 드라이비트ㆍ필로티 구조로 지어졌다. / 반기웅 기자

LH에서 관리하는 다세대ㆍ다가구형 매입임대주택 상당수가 드라이비트ㆍ필로티 구조로 지어졌다. / 반기웅 기자

관리 사각지대인 매입임대주택

화재사고가 무서워도 집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매입임대주택에 사는 주민들 얘기다. 매입임대주택의 주요 입주자들은 기초생활수급자와 한부모가족, 월평균소득 100% 이하 장애인이다. 입주자격이 까다롭지만 입주 대기자가 많아 경쟁률이 치열하다. 들어가기도 쉽지 않거니와 일단 들어가면 섣불리 나오기도 힘들다.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원룸과 빌라가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선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도 매입임대주택 여럿이 몰려 있다. 한 다세대 매입임대주택을 찾았다. 시멘트가 벗겨진 주차장 기둥 틈새로 하얀 스티로폼이 드러났다. 외벽 역시 드라이비트로 처리됐다. 소방시설 역시 마련돼 있지 않았다. 불이 나면 건물 자체를 거대한 아궁이로 만든다는 필로티 구조에 스티로폼 외벽까지 화재 취약요소를 두루 갖췄다. 이곳에 3년째 거주하고 있는 49살 최모씨는 “불이 나면 어쩌나 불안하긴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고 어쩔 수 없다”며 “당분간은 여기에서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의정부 화재 이후 드라이비트에 대한 위험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매입임대주택은 여전히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아직까지 전국 매입임대주택 가운데 몇 가구가 드라이비트 주택인지에 대한 실태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매입임대주택을 공급ㆍ관리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는 “현재 드라이비트 관련 조사를 하고 있다”며 “일단 서울지역은 매임임대주택의 12% 정도가 드라이비트 주택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LH는 실태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드라이비트 보강공사를 시행한다는 방침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동 전체를 매입한 다가구주택은 보강공사가 가능하지만 세대별로 주인이 다른 다세대주택의 경우엔 공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LH 관계자는 “10세대 가운데 1세대만 매입한 경우엔 건물을 건드릴 수 없다”며 “공사비 분담부터 입주민 동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진행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LH를 포함한 각 자치단체와 소방본부, 공공기관들은 건축물을 대상으로 드라이비트와 필로티 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일단 드라이비트인지 아닌지부터 정확히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1월 3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드라이비트 외벽을 교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이른바 ‘충북 제천 화재 예방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화재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법은 1년 3개월 전에도 발의된 바 있다. 이른바 소방안전 관련 법률안 3건이다. 소방차 전용구역을 설치하도록 하고, 관련 과태료를 부과하는 한편, 방염처리업자의 처리능력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들 법안은 별다른 이유 없이 표류하다 제천ㆍ밀양 화재로 수십 명의 희생자를 낸 뒤에야 통과됐다. 지역 소방본부의 한 소방관은 “예전에도 소방관이 부상을 입은 뒤에야 법안이 통과된 적이 있었다”며 “항상 피해자가 나와야 법 개정이 이뤄지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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