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립 이어 남부 분리까지 ‘혼돈의 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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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갈라지고 양측을 지원하는 중동 강대국들 간 싸움터가 된 예멘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시리아·이라크에 이어 예멘이 새롭게 중동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북부 후티 반군과 대치하고 있는 예멘 남부 망명정부가 분리주의 진영에 일격을 당했다.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에 내각 해산을 요구해 온 남부 분리주의 진영이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1월 28일(현지시간) 임시수도 아덴의 정부청사를 점거한 것이다. 이날 분리주의 진영과 정부군 간 교전으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130여명이 부상했다.

분리주의 진영은 더욱 기세를 높여 아덴을 사실상 점령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아덴의 주요 군기지를 점령하고 대통령궁을 포위했다. 하디 대통령은 후티 반군에 사나를 빼앗긴 뒤 줄곧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분리주의 진영이 사퇴를 요구했던 아흐메드 빈 다게르 총리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통령궁에 피신 중이다. 언제든 물리적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예멘 남부 분리주의 진영 무장조직 대원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남예멘 임시수도 아덴에 탱크를 몰고 들어와 북부 정부군 검문소를 점거한 뒤 총을 들고 남부과도위원회 깃발을 흔들고 있다. / 아덴|AFP연합뉴스

예멘 남부 분리주의 진영 무장조직 대원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남예멘 임시수도 아덴에 탱크를 몰고 들어와 북부 정부군 검문소를 점거한 뒤 총을 들고 남부과도위원회 깃발을 흔들고 있다. / 아덴|AFP연합뉴스

분리주의 진영, 남예멘에 왜 등돌렸나

이미 남북으로 갈라지고 양측을 지원하는 중동 강대국들 간 싸움터가 된 예멘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시리아·이라크에 이어 예멘이 새롭게 중동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제껏 하디의 남부 망명정부를 지지하던 분리주의 진영이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된 배경은 아직도 확실치 않다.

남부 분리주의 진영을 이끄는 핵심 조직은 지난해 5월 전 아덴 주지사 아이다루스 알 주바이디가 설립한 남부과도위원회(STC)다. 주바이디는 STC 설립 한 달 전 예멘 정부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주바이디가 이끄는 STC는 정부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국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내각 총사퇴를 요구해 왔다. 일주일 시한을 주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예고했지만 예멘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무력행동에 나선 것이다.

부정부패는 명분일 뿐 오랫동안 정부 요직에서 남부 출신이 배제되고 자원 착취만 당하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이 터져나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분리주의 진영은 1990년 남북 예멘이 협상으로 통일된 이후에도 1994년 반란을 일으키는 등 중앙정부에 꾸준히 저항해 왔다. 아덴 점거가 남예멘 정부에 대한 불만이라고 보기 힘든 이유다.

2014년 후티 반군에 사나를 빼앗긴 남예멘 정부를 돕기도 했다. 하디 예멘 대통령이 남부 아브얀 출신인 데다 후티 반군과 손잡고 권좌 복귀를 노린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에 대한 적개심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살레는 2011년 아랍의 봄 때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지난해 말 북부 반군에서 후티 세력을 따돌리고 평화협상에 나서려다 내분 끝에 살해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예멘 정부가 3년 만에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고 후티 반군과의 싸움이 중요한 단계에 접어든 시점에 반정부 운동이 일어난 것에 주목했다. 분리주의 진영이 당장 독립을 관철하기보다는 향후 자원 배분이나 정부 인사 문제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주바이디는 하디 정부가 무슬림형제단과 연계된 이슬람주의 세력인 이슬라와 동맹을 맺고 있다며 이슬라를 배제하는 개각을 요구해 왔다.

사우디는 후티 반군을 몰아내 예멘 통합을 이뤄내겠다며 아랍연합군을 이끌고 2015년부터 북부를 공습하고 있다. 사태 해결의 열쇠는 아랍연합군을 주도하는 사우디와 이를 지원하는 주축세력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쥐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사우디는 남예멘 중앙정부를, UAE는 분리주의 진영을 각각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 간 갈등이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초부터 사우디가 지원하는 예멘 정부군과 UAE가 지원하는 분리주의 진영 무장조직 안보벨트군(SBF)이 아덴 공항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당시 사우디와 UAE가 조정에 나서 사태를 매듭지었다.

사우디는 분리주의 진영의 지난달 28일 아덴 진입 시도를 앞두고 자제를 촉구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UAE는 분리주의 진영이 지난달 30일 아덴의 군기지를 접수할 수 있도록 도왔다. 분리주의 진영은 UAE의 지원을 바탕으로 사우디 정부가 호위하는 대통령궁 턱밑까지 파고들었다.

예멘 남부 분리주의 진영 무작조직 대원들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임시수도 아덴에서 순찰트럭을 타고 거리를 돌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아덴|로이터연합뉴스

예멘 남부 분리주의 진영 무작조직 대원들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임시수도 아덴에서 순찰트럭을 타고 거리를 돌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아덴|로이터연합뉴스

실상은 사우디와 UAE 간 싸움?

전문가들은 사우디와 UAE가 남예멘을 지원하는 동기가 서로 달라 갈등을 빚고 있다고 본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는 시아파 맹주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예멘을 통일시켜 중동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무함마드 마란디 이란 테헤란대 정치학과 교수는 프랑스 라디오 RFI와의 인터뷰에서 UAE가 예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우디에 비해 소국인 UAE 입장에서는 통일 예멘을 관리하기 벅찰 뿐만 아니라 역내 정치적 위상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아랍연합군이 후티를 몰아낸 이후 UAE가 사우디에 공습 참여 대가로 남예멘 땅을 원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사우디와 UAE는 남예멘 혼란사태 중재를 위한 특사를 보내며 일단 화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문제는 사우디나 UAE 모두 근본적으로 예멘 분열사태를 해결할 역량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랍연합군은 2년 넘게 후티 근거지 공습을 이어오고 있지만 세력 축소에 실패했다.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은 만만치 않은 전력을 선보였고 오히려 북부에 확실한 거점을 만들었다.

사우디의 젊은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국내 정치상황도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탈석유 국가 건립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보이지 않고 다른 왕족들의 반발도 거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사우디 정부는 대대적인 반부패 수사에 나서면서 용의자로 지목한 수십 명의 왕자와 전·현직 고위관료 등을 호텔에 구금시켰다가 합의금을 받고 지난달 30일 전원 석방했다. 왕자들 구금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권력 강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사우디 당국은 반부패 수사로 받게 된 합의금만 1000억 달러(약 106조6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유가 기조에 허리띠를 졸라매던 사우디 정부에 숨통이 트인 것이다.

안정적인 권력 토대를 다지기에도 바쁜 무함마드 왕세자가 예멘 내전에 적극 개입하고 평화 건설에 나설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예멘은 남부 분리주의 진영이 들고 일어나기 전부터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 등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의 배후지로 변했다. 군벌과 부족세력들의 할거도 진행되고 있다. 예멘은 이미 중동의 화약고다.

<박효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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