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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결의안, 피해갈 방법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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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재가동까지 “갈 길 멀지만 그렇다고 못 갈 길은 아니다”

“재개만 되면 당장 내일이라도 들어가고 싶죠.”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석촌도자기 조경주 대표의 말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부분은 개성공단 재개를 손꼽아 기다린다. 문재인 정부를 맞아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흐름이 개성공단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 질의응답에서 한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제재범위 속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그 부분을 해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개성공단과 관련해 ‘조속한 재개를 위한 즉각 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말을 바꿨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그가 후보 시절이던 2017년 5월과 2018년 1월 사이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원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금융거래를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한 ‘타깃형 제재’였다. 하지만 2017년 하반기부터는 숨통을 막는 ‘포괄적 제재’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제재 때문에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해 언급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라며 “북한도 남측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을 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2016년 2월 10일만 해도 개성공단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는 무관했다. 1차, 2차, 3차, 4차 핵실험 이후에도 개성공단이 그대로 운영됐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개성공단이 북핵으로 이어진다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6년 3월과 11월에 발표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개성공단 재개에 크게 저촉되지 않는다. 문제는 2017년 하반기에 발표된 결의안들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6년 11월 30일, 대북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6년 11월 30일, 대북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2017년 하반기까지는 문제 없었다 

개성공단 중단 이후 추가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총 다섯 개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2017년 상반기까지 발표된 결의안에 대해 “개성공단 재개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들 결의안의 핵심 내용은 ▲회원국 금융기관의 북측 내 사무소 계좌 개설 금지 ▲교역을 위한 공적•사적 금융지원 및 보증 금지 등이다.

김 이사장은 “회원국 금융기관의 북측 내 사무소 계좌 개설 금지의 경우, 개성공단에 있던 남측의 우리은행이 다시 들어가지 않으면 되고 공적•사적 금융지원 금지조항에 관해서는 개성공단 기업들은 북측기업이 아니라 남측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된다.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북측에 들어가는 현금, 즉 임금과 관련해서는 "임금 대신 북한에 도로나 다리 등 사회기반시설(SOC)을 깔아주면 된다"고 말했다. 노동의 대가를 SOC로 지원하게 된다면, 북측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활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우리 시각에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우리가 북측 노동자에게 한 달에 50달러를 지불하든 200달러를 지불하든, 북한 정부는 그들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진다”고 말했다. 기업에 고용된다는 개념보다는 정부에 고용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각에서는 ‘벌크캐시’와 관련된 결의안을 언급한다. 북측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또는 안보리 결의 위반 행동과 관련된 대량현금이 이동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의안은 2013년 1월과 2013년 3월에 나온 것이다. 이후에도 개성공단은 무리 없이 잘 가동됐다. 이는 오히려 개성공단이 북측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대량현금이 아니라는 증거다.

문제는 2017년 하반기에 발표된 결의안이다. 이는 각각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과 2017년 11월 말 북한의 “핵 무력 완성” 발표 이후에 나왔다. 핵심 내용은 ▲천연가스 액체의 직•간접적인 공급•판매•이전 금지 ▲북측 섬유의 직•간접적인 공급•판매•이전 금지 ▲북측의 수출 금지품목을 식용품 및 농산품, 기계류, 전자기기, 목재류, 선박 등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김연철 교수는 “당시 결의안을 보면 위탁가공도 중단하라고 한다. 위탁가공도 못 하는데 직접투자가 가능하겠느냐”며 “지금 중국 기업들도 다 중단하는 상황이다. 개성공단을 중단했을 때는 남북문제였지만 북한이 핵 완성을 선언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남북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예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진향 이사장은 천연가스 액체가 반입되지 않는다는 조항에 대해 “개성공단 공장 운영을 위해 소량의 LNG, LPG가 들어간다. 결정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유엔 제재위 사전승인 시 예외 상황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1718 제재위’는 각 사항들을 예외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북한 ‘핵 무력 완성’ 이후 급변한 정세

김 이사장은 섬유 관련 사업은 “북•중 사업을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섬유는 북한의 대중수출 사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김 이사장은 “북한 내에서 섬유 관련 사업이 안 된다고 하면, 섬유 봉제를 제외한 나머지 공장부터 들어가면 된다. 결의안을 엄격하게 적용해도 피해갈 수 있다. 결국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성장 실장도 “안보리 결의안에 분명히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북핵문제 해결이 전혀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구멍을 이용하게 된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법률적으로 가능한 부분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에 차이가 있다. 그 구멍을 키우는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멍’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갈 길은 아니다. 개성공단이 재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연철 교수는 “북핵과 관련된 상황 변화가 빠르면 빨리 재개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노력해서 빨리 재개되도록 해야 한다”며 “어떻게든 재개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재개되지 않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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