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의 꿈’ 치킨집 몰락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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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사 점포 5곳 중 1곳꼴로 우후죽순… 수익은커녕 본전도 못찾고 떠나

영하의 출근길. 바쁜 직장인들이 지하철 역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맡게 되는 냄새는 빵 굽는 냄새다. 버터를 머금은 빵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냄새를 맡다보면 저절로 빵집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지난 12월 29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지하도 한 제과점포에는 빵과 커피를 사려는 직장인들이 3~4명씩 줄을 서 있었다. 이들은 베이글이나 머핀, 미니식빵 등 비교적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빵 한두 종류와 커피를 주문한다. 가격도 저렴하다. 종류별로 가격은 다양하지만 빵 1개당 1000원에서 시작해 2500원을 넘지 않는다. 커피도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보다도 훨씬 저렴하게 판매한다. 아메리카노는 1500~1900원 정도면 한 잔을 사 마실 수 있다. 빵을 구입하면 아메리카노를 1000원씩 염가에 판매하는 점포도 있다. 사당역 2·4호선 환승통로에 위치한 ㄱ빵집 종업원은 “오전 7시30분에서 8시 사이에 손님이 몰리는 편”이라며 “근처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빵과 커피를 사 간다”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인 만큼 한 번 몰릴 때는 5~6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점심시간 전후도 대목이다. 동네 주민이나 주머니에 여유가 없는 노인들이 싼 값에 빵을 구입해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교대역 ㄴ빵집 종업원은 “점심시간에는 주로 노인들이 빵을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 소시지빵이나 소보루빵은 1개당 1000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다.

12월 29일 오전 서울 지하철 2·7호선 환승구역 내 한 제과점에서 시민이 빵을 고르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류인하 기자

12월 29일 오전 서울 지하철 2·7호선 환승구역 내 한 제과점에서 시민이 빵을 고르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류인하 기자

한 역사에 빵집 4~6개 있는 곳도

최근 2~3년 사이 지하철 역사 내에 이 같은 빵집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다. 퇴직 후 치킨집 사장을 꿈꾸던 이들이 이제는 빵집 사장이 되고 있다. 자본금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면 10평 이내의 지하철 역사 내 빵집 점포를 낙찰받아 운영할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제공한 2017년 ‘지하철 1~8호선 상가운영 현황’을 보면 소송 진행 중이거나 공사 중인 역사 등을 제외한 전체 점포 1458개 중 264개(18.1%)가 빵을 파는 점포인 것으로 집계됐다. 2호선 잠실역, 3호선 연신내역, 6호선 합정역, 7호선 학동역·논현역 등은 지하철 역사 내에 빵집만 4~6개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미 지하철 내 빵집은 과밀화 상태인 셈이다. 역사 내에서 서로 마주보고 ‘어색한 동거’를 하는 빵집도 있다.

하지만 한 역사 안에 빵집이 몰리는 것을 제재할 법적 장치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모범거래기준을 통해 점포 간 250m 거리제한을 뒀지만 강제성이 없고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2015년 폐지됐다. 2017년 10월부터 ‘가맹사업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해당 법에도 점포 간 거리제한 등의 규제는 없다. 법 제12조의 4 제3항에서 가맹본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가맹 계약기간 중 가맹점사업자의 영업지역 안에서 가맹점사업자와 동일한 업종의 자기 또는 계열회사의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설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서로 다른 가맹사업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같은 가맹점 점포가 아닌 이상 한 장소에 동일한 종류의 점포가 들어선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확천금은 아니라도 안정적 수익을 기대하고 창업을 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ㄷ빵집 사장은 “가맹본부 측이 (개업한 점포 역사가) 유동인구도 많고 최소 500만원은 순수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해서 교육까지 받고 창업했는데 월 150만원도 못 벌었다”며 “나중에는 직원 1명을 해고하고 직접 가게를 운영해봤지만 사업자가 말한 그 매출은 절대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12월 28일 오전 10시에 찾은 해당 빵집은 출근시간이 지난 점을 감안해도 40여분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ㄷ사장은 “물론 장사가 잘 되는 곳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가맹본부가 처음 설명을 할 때 총매출액과 순수익을 뻥튀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가맹본부만 배불리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실제 ㄷ사장이 가맹본부에 낸 돈과 향후 돌려받을 수 있는 보증금을 제외하고 빵집에 지출한 금액은 1억원이다. 그는 “본사에서 주는 설비 외에 전기시설, 급배기시설 비용 등은 다 가맹사업자가 내야 한다”고 말했다.

‘빵집의 꿈’ 치킨집 몰락의 재판?

실제 <주간경향>이 지하철 역사 내 가맹점 점포를 모집하는 사업체 두 곳을 전화해 취재한 결과 이들은 가맹사업자를 대상으로 기본 2000여만원 이상을 가입비, 교육비, 집기비품 등의 명목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한 가맹본부 관계자는 “본사에 내는 보증금 500만원, 가맹비 500만원, 교육비 500만원, 인테리어 시설 외주비 550만원 등 약 2100만원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돈은 빵집이 계약보다 조기에 철수해도 돌려받지 못하는 돈이다. 일단 지하철 역사 내에 점포 입점을 해도 가맹사업자는 매달 두 차례 완전조리 빵과 오븐에 굽기만 하면 되는 반조리 빵 값으로 전체 매출액의 42%를 본사에 내야 한다. 가맹본부 관계자는 “그래도 파리바게뜨나 던킨도너츠는 매출의 50~55%를 본사에 지급해야 하는데 우리는 저렴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매출액의 58%에서 직원 월급과 서울교통공사에 매달 내는 월세, 수도세·전기세 등 각종 사용료를 제한 돈이 빵집 사장에게 돌아가는 ‘순수익’이 된다.

서울교통공사는 매달 입찰공고를 내 점포사업자를 구한다. 점포는 유동인구, 점포규모 등을 고려해 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까지 월세가 측정된다. 고정비용을 제외한 순수익 역시 가맹사업자의 ‘예측’에 불과하다. ㄷ빵집 사장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지하철 빵집을 1년 정도 운영하다 권리금만 받고 점포를 승계할 사람을 구하는 글이 꽤 올라온다”며 “그 사람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수익이 안 나서 철수하는 케이스”라고 말했다.

교통공사 “자유시장경제 따라” 책임회피

동일업종 사업자에게 점포를 내준 서울교통공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교통공사는 29일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다른 제빵업체가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면 공사 내부규정이나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 해야 할 텐데 현재로서는 그러한 (제재) 규정이 없다”면서 “기본적으로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는 시장 상황에 맞춰서 자기들끼리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지 공사에서 임의적으로 개입하면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맹본부의 예측만 믿고 입점해 피해를 보는 가맹사업자가 없도록 입찰공고 시 역사 내 점포현황을 상세히 알려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태훈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사무국장은 “편의점은 가맹본점이 계약 당시 예측한 매출예상액보다 가맹사업주가 훨씬 못 미치는 수익을 내면 자체적으로 수익을 보완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안전망을 마련하는 추세”라며 “빵집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도 너무 가맹본부 측의 말만 믿지 말고 자신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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