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호실적 불구 몸집 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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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행 돌풍·간편결제 등에 자극… 지점 통·폐합에 인력 감축도

시중은행들의 ‘몸집 줄이기’가 한창이다. 경영 효율화를 이유로 지점을 없애거나 통합하고 있다. 올해 화두로 떠오른 ‘디지털 금융’으로의 체질 전환에 주력하고, 대신 금융소비자의 발길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오프라인 점포는 지역별로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이다. 인력 감원에도 고삐를 죄고 있다.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피라미드형’으로 개선하고, 인건비와 관리비 등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의 지난해 1~3분기 순이익은 11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순이익(5조5000억원)의 2배를 넘겼다. 2011년 13조원을 기록한 이후 6년 만에 최대 규모다. 호실적에 결산이 나오기도 전인 지난해 이미 성과급을 지급한 곳도 있다.

지난해 7월 7일 서울 강남구 한국씨티은행 역삼동 지점에 지점 폐점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7월 7일 서울 강남구 한국씨티은행 역삼동 지점에 지점 폐점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디지털 금융’으로의 체질 전환에 주력

은행들이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조직과 인력을 축소하는 이유는 뭘까. 이른바 ‘카뱅(카카오뱅크) 쇼크’로 대변되는 인터넷은행의 돌풍과 토스 등 간편결제 업체의 등장이 기존 시중은행의 디지털화를 촉발시켰고, 올해 강화될 대출규제 등 대내외적인 여건을 감안했을 때 지난해 수준의 실적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오프라인 지점을 통·폐합하는 등 조직을 재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 화두를 ‘디지털’로 정한 시중은행장들도 지점 축소와 인력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지난 12월 말 취임한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인력과 지점 구조조정 계획을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숫자를 밝힐 수는 없지만 일단 국내 지점은 계속 줄여나갈 것”이라며 “그에 따라 인원도 불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일정 부분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주요 4대 은행의 국내 지점 수는 3분기까지 3617개로, 1년 전에 비해 161개 줄었다.

지난 한 해 60곳 넘게 지점을 줄여 전국적으로 1050개 지점이 있는 KB국민은행은 올해 2월까지 지점 8곳과 출장소 3곳 등 총 11개 점포를 폐쇄할 예정이다. 884개인 지점을 865개로 줄인 신한은행도 올해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통·폐합하겠다는 계획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 통·폐합이 될 지점을 이용했던 기존 고객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모든 폐쇄점에 무인점포(365코너)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0곳 넘게 지점을 정리한 KEB하나은행도 올해 최대 15곳의 지점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올해 적자와 저수익 영업점을 지속적으로 통·폐합할 예정”이라며 “지역 환경 등 전략적 필요에 따라 10~15개 지점을 선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지점 통·폐합은 ‘커뮤니티’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업금융 또는 자산관리 등에 특화된 허브 센터를 중심으로 지점 간 연계를 강화한 기존의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 방식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허브(바퀴) 앤드 스포크(바퀴살)는 허브 센터와 스포크 지점으로 구성된 클러스터를 구축해 서로 간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협업모델로, 은행권에서는 3~4년 전부터 시험 도입했다. 신한은행은 인근 지점 6~7곳을 하나로 묶어 인력을 교차로 투입하고, 성과평가를 할 때 지점의 개별 성과가 아닌 전체 커뮤니티의 성과만 100% 반영한다. 현재는 지점 50%, 커뮤니티 50%의 성과를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불편·금융 공공성 고려해야”

은행들은 명예퇴직 등 인력 감축의 폭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4600명 넘게 은행을 떠났고, 올해도 예년 수준 이상의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임직원의 10%가량인 2795명이 희망퇴직한 KB국민은행은 올해도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과 2019년과 2020년 임금피크제 전환예정자를 상대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퇴직금으로는 잔여정년에 따라 최소 27개월치에서 최대 36개월치 급여를 일시에 받는다. 1월 19일 확정 예정인 희망퇴직 대상자들의 수는 최소 300명에서 최대 1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노사 합의에 따라 2015년부터 매년 정례적으로 임금피크제 대상자에 한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411명이 희망퇴직한 농협은행은 최근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 전원과 10년 이상 농협은행에 근무한 40세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접수했다. 퇴직자는 26개월치 급여를 퇴직금으로 지급받는다.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 역시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들을 대상으로 각각 300여명, 160여명 수준의 퇴직자들을 이르면 이달 안에 선별할 예정이다.

은행권의 구조조정 칼바람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금융이 대세이다보니 디지털 조직으로 재편하겠다는 은행의 경영방침이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 달에 서너 개의 지점이 통·폐합되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언젠가 정리되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은행이 지점을 줄이면서 고객 불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모바일과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채널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의 경우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수익성에 중점을 둔 지점의 연쇄 폐쇄조치가 소비자 불편을 야기하고 나아가 금융 공공성을 저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씨티은행이 오프라인 지점을 기존 126개에서 90개 줄여 총 36개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나서 “비대면 금융거래 증가 등 은행권 영업환경 변화로 인해 점포 통·폐합 사례가 늘면서 금융소비자의 불편과 피해 발생이 우려된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헌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민간기업이 노동생산성과 경영효율성을 따져 조직을 축소하고 인력을 감원하겠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금융의 공공성을 생각해보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며 “디지털 조직을 확대하고 재편하는 과정에 기존 인력과 조직을 재교육한 후 재배치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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