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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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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민간단체 지원의 문제점, 국정 홍보사업이 공익활동인가

24일 새벽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가 일부 보수단체 회원에게 기습 철거당한 뒤 시민들이 분향소를 다시 세우지 못하도록 경찰이 저녁 늦게까지 주변을 지키고 있다. <정지윤 기자>

24일 새벽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가 일부 보수단체 회원에게 기습 철거당한 뒤 시민들이 분향소를 다시 세우지 못하도록 경찰이 저녁 늦게까지 주변을 지키고 있다. <정지윤 기자>

6월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보수단체 회원 100여 명이 모여 ‘생명존중국민운동’ 결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석봉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불총) 사무총장이 입을 열었다. 보수성향 인터넷 매체인 뉴데일리에 따르면, 그는 “모든 종교는 자살을 죄악시하고 있다”면서 “자살은 가정과 사회, 국가를 파괴하는 무책임한 행위이며 망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자살 반대는 생명존중사상에 입각한 종교인의 당연한 신념이다. 이 자리의 성격이 궁금해지는 건 다음 대목부터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 노동운동권, 시민단체들은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투쟁과 정쟁의 도구로 삼고 ‘정치적 타살’이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대립과 갈등을 조장 선동하고 있다. 또 언론인, 정치인, 지식인들은 ‘자살은 죄악’이라고 말하지 않고 침묵하기 때문에 자살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잘못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같은 단체의 한 스님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뉴데일리는 그가 “노 전 대통령이 죽자 비리 관련 수사는 종지부를 찍었다. 이로 인해 자기가 받은 것이 전부 미궁에 빠졌다. 더 무서운 것은 죽음으로 대한민국 법을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라면서 “이것이 좌파에게 기폭제가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원들은 프레스센터에서 을지로 입구까지 자살방지 가두캠페인을 벌였다. 이날 행사에는 대불총, 바르게살기중앙회, 국민행동본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6·25남침피해유족회, 한국미래포럼, 예비역대령연합회, 전국자연보호중앙회, 늘푸른희망연대 등이 참여했다. 이들 단체는 2009년 한 해 동안 행정안전부로부터 각각 평균 4200만 원의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지난 5월 8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09년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공모기간에 등록하고 선정받아
행안부는 2월 1일부터 2월 27일까지 비영리 민간단체를 상대로 사업 공모를 받아 4월 24일부터 심사에 착수, 5월 1일 지원 대상 단체를 확정했다. 최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보수단체 중 21곳은 애초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돼 있지 않았으나 공모 기간 중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고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21곳 중 11곳은 공모 마감 이틀 전인 2월 25일부터 마감일인 2월 27일 사이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했다. 특히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 애국단체총연합회, 6·25남침피해유족회, 경찰소방공상자후원연합회, 4개 단체는 마감일인 27일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했다. 신청 마감일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고 사업지원 신청을 했으나 최종 지원 대상에서는 탈락한 한 보수단체 대표는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했다”면서 “지난 정권 때는 좌파 성향 단체에는 엄청난 돈을 지원하고 보수단체에는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활동했다. 올해는 옆에서 너도나도 지원을 하는 걸 보고 신청했다”고 말했다.

국민행동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 50여 명이 24일 새벽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대통령 임시 분향소에 난입, 집기들을 부순 가운데 시민 상주 관계자들이 집기류를 살펴보고 있다. <남호진 기자>

국민행동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 50여 명이 24일 새벽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대통령 임시 분향소에 난입, 집기들을 부순 가운데 시민 상주 관계자들이 집기류를 살펴보고 있다. <남호진 기자>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보수단체는 대부분 현 정부 국정기조를 충실히 반영하거나 외곽 지원단체 구실을 해온 곳들이다. 이는 행안부가 제시한 2009년 지원사업 유형이 ‘100대 국정과제’ ‘저탄소 녹색성장’ ‘선진화’ ‘일자리 창출과 4대강 살리기’ 등 국정홍보에 치우친 탓에 빚어진 필연적인 결과다. 예비역대령연합회는 ‘국가 안보전략 연구 및 교육, 국정과제 실천운동’, 건국60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준비위원인 강영훈 전 총리와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고문으로 있는 선진화개혁추진회의는 ‘선진화와 사회통합을 위한 국민운동’, 대표적인 뉴라이트 단체인 시대정신은 ‘선진국민 양성을 위한 의식개혁 운동’, 재향군인회 대표인 박세직 전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는 ‘안보정세 보고대회 및 세미나’ 사업 명목으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포럼푸른한국은 ‘4대강 살리기 정책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국민경제 파급효과 심포지움’이라는 사업으로 40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이 단체는 2007년 한반도 대운하 토론회를 두 차례 개최하고 2008년 1월 ‘한반도 대운하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토론회를 여는 등 대운하 여론 조성에 열을 올려왔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단체 중 일부는 공익단체와 친목단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있다. 2월 17일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한 내무회 녹색사랑 봉사회는 애초 2001년 ‘내무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자원봉사자라고 밝힌 이 단체 관계자는 “(내무회는) 내무부·행자부·행안부 퇴직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친목단체로, 정부가 녹색성장을 표방하고 있고 우리도 자연보호활동을 주로 해온 터라 올해부터 이름을 녹색사랑봉사회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보호, 수자원오염 예방, 산불예방 및 감시, 불우이웃돕기, 각종 걷기대회” 등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가 행안부에 신청한 지원 대상 사업의 이름은 ‘저탄소 녹색생활화 운동 추진’이다.

친목단체와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과 공익활동 사업 지원 신청을 서두른 탓에 지원금 관리를 정부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출 준비가 부족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업 지원 신청 마감일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한 경찰소방공상자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을 신청해서 받기는 했지만 기준에 맞추는 게 쉽지 않다”면서 “회비로 운영하던 때와 달리 회계를 전담할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르면, 이 법이 규정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는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민간단체”다. 그러나 행안부가 ‘헌법정신 수호 및 선진 시민의식 함양 운동’ 사업 명목으로 31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한 국민행동본부는 6월 24일 새벽 덕수궁 대한문 앞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하면서, 정부가 판단하는 ‘공익성’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Weekly 경향’과 한 전화통화에서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서울 한복판에 그런 시설이 있는데 경찰이 방관하고 있었다”면서 “경찰이 못 하니까 우리가 보조 역할을 해준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분향소 철거가 헌법정신 수호와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난해 MBC의 광우병 거짓선동으로 촛불난동이 일어났고, 올해 초에는 국회의원에 대한 테러까지 있었다”면서 “이 나라에 공권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목표는 헌법수호와 정의실현”이라고 주장했다.

행안부의 ‘2009년 공익지원 사업 선정 결과’에는 지원 대상 사업의 이름만 나올 뿐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알 수 없다. 행안부는 지난 5월 15일까지 각 단체별로 실행계획서를 접수했지만, “단체와 관련된 여러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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