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고다이라 거의 따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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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라 나오는 2017~2018시즌 이상화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며 이상화의 3연패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화도 월드컵 3·4차 대회에서 36초대 기록을 내며 고다이라와의 차이를 크게 줄였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오랫동안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는 이상화(28·스포츠토토)를 위한 종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많은 선수들이 이상화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압도적인 실력차만 확인하고 고개를 숙였다. ‘빙속 여제’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다.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는 내년 2월 9일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3연패에 도전한다. 한국 동계올림픽 역사상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위업에 이상화가 나선다.

그러나 앞선 두 번의 올림픽과는 달리, 이번에는 이상화의 금메달을 장담할 수가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상화의 뒤를 쫓기만 하던 경쟁자 한 명이 무섭게 성장, 이상화를 넘어서는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스피드스케이팅 스타 고다이라 나오(31)는 2017~2018시즌 이상화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며 이상화의 3연패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상화가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대회 여자 500m 경기에서 질주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이상화가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대회 여자 500m 경기에서 질주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이번 시즌 500m서 독보적인 고다이라

고다이라의 2017~2018시즌은 놀랍기만 하다.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그리고 피겨스케이팅이 속하는 빙상 종목의 선수들은 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개최하는 대회에서 실력을 겨룬다. 대표적으로 월드컵 대회와 세계선수권이 있다.

고다이라는 이번 시즌 총 4번의 월드컵 대회에서 500m에서만 7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시즌 월드컵 대회는 총 4번이 열렸고 지난 3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를 제외한 나머지 3개 대회에서 각각 두 번씩 500m 경기가 열렸다. 즉, 이번 시즌 월드컵 대회에 걸린 500m 금메달을 고다이라가 모두 따냈다는 얘기다. 고다이라는 지난 11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10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하는 등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500m와 1000m 2관왕에 도전하고 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다이라는 이상화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2016~2017시즌 들어 부상에 시달린 이상화를 제치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고다이라는 이상화와 500m에서 대결을 펼쳤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현장에서 고다이라를 만날 수 있었는데, 기쁨을 표현하면서도 “확실한 것은 나는 아직도 이상화를 추격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고다이라가 기량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에는 네덜란드 유학이 결정적이었다. 고다이라는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자비를 들여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가 만으로 28세. 큰 모험이었다.

2년간 네덜란드에서 홀로 유학하며 고다이라는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레인 뷔스트, 스벤 크라머 등 많은 스타들을 배출한 스피드스케이팅 강국 네덜란드에서 고다이라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현지 음식이 몸에 맞지 않아 병에 걸리기도 하는 등 같은 고난을 겪었지만, 고다이라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생이 지금에 와서 결실을 맺고 있다.

이번 시즌 이상화는 자존심이 상해도 단단히 상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부터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다 2016~2017시즌에는 상태가 악화돼 주춤했던 이상화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부상을 털어내면서 다시 세계 최강 위치를 되찾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고다이라와의 대결에서 모두 패하면서 우려를 남겼다. 한국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금메달이 힘들다는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이상화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상화는 “(이번 시즌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1·2차 대회는 감을 찾기 위해 나갔고 3차 대회부터가 본경기였다. 몸이 속도감을 기억하고 있었다. 감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상화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상화는 1·2차 대회에서 모두 37~38초대 기록을 냈다. 예전에는 36초대 기록을 우습게 냈던 그였기에 스스로 실망감이 컸다. 그러나 3·4차 대회에서는 반전에 성공했다. 전부 36초대 기록을 내며 자신의 컨디션을 거의 다 되찾았고 고다이라와의 차이도 크게 줄였다.

기록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이상화가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단거리 종목에 속하는 500m 경기는 초반 100m 기록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상화는 3차 대회까지 초반 100m 기록이 10초3대를 찍었으나 마지막 4차 대회에서는 두 번의 레이스에서 모두 10초2대의 기록을 세웠다.

이상화는 2016~2017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거의 다 회복이 됐지만, 이번에는 실전감각 유지가 문제였다. 시즌 초반 그런 문제점들이 확실하게 드러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감을 잡은 이후로는 기록이 쑥쑥 올라오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부상 여파로 단 한 번도 마음에 드는 경기를 펼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는 이상화의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빙상장에서는 경쟁자, 밖에서는 친구

겉으로 보이는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관계는 금메달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라이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두 선수는 굉장히 친한 사이다. 고다이라는 이상화를 두고 “내 한국어 선생님, 친구인 동시에 좋은 경쟁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상화 역시 “중학교 때부터 알던 선수다. 경기 전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기도 한다”며 경기장 밖에서는 좋은 사이임을 인정했다.

다만 경기 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의식해야만 한다.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당시 고다이라는 인터뷰가 끝난 뒤 나지막하게 “나이는 내가 (이상화보다) 더 많다”며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상화는 12일 인터뷰에서 고다이라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그 선수’, ‘그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한 번도 고다이라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60일도 남지 않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둘이 펼칠 경쟁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윤은용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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