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시장의 동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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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17개월 만에 0.25%P 올려 연 1.50%로… 시장 예측대로 충격은 없어

마침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다. 0.25%포인트다. 0.25%포인트를 올리는 데 17개월이 걸렸다. 한은의 기준금리는 지난해 6월 이후 1.25%에서 꿈쩍도 안했다. 1.25%는 사상 최저 금리였다.

11월 30일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연 1.50%로 올린다고 밝혔다. 금리인상은 6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2011년 6월 금리를 올린 것을 끝으로 그동안 금리는 계속 내려만 갔다. 그 사이 3.25%였던 금리는 1.25%까지 떨어졌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임기만료 4개월을 앞두고 처음으로 금리를 올려봤다.

금리는 종종 ‘무딘 칼’로 비유된다.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곧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0.25%포인트 금리인상 자체는 크지 않지만 지금까지 아래쪽으로 향했던 무딘 칼이 이제는 위쪽을 향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리인상기가 시작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1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1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김기남 기자

한·미간 금리역전 우려에 불가피한 선택

이 총재는 금리인상을 단행한 다음날인 12월 1일 “가계는 차입이나 저축 또는 투자 등에 관한 의사결정에 있어 이전과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다.

한은의 금리인상은 시장의 예측대로 이뤄졌다. 그랬던 만큼 큰 충격은 없었다. 한은으로서는 금리인상을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뤘다고 봐야 한다. 11월 30일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올해 마지막 회의였다. 만약 이날도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상당 기간 한·미 간 금리역전(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의 기준금리보다 높아지는 것)이 이뤄질 수 있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는 1.0%에서 1.25% 사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2월 기준금리를 0.25%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최고 1.50%까지 높아지게 된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통위의 다음 회의는 내년 1월 18일에 잡혀 있다. 자칫하면 연말연초가 낀 한 달 이상을 금리역전 상태로 갈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국내에 들어온 시중자금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 경제가 조금이라도 불안정해질 경우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제적인’ 금리인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은의 금리인상이 ‘예상된 이벤트’였던 만큼 당일 환율시장과 주식시장의 혼란은 없었다. 코스피지수는 2476.37로 2500선이 붕괴됐지만 금리인상의 이벤트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JP모건이 내년도 한국 증시 전망을 하면서 내년도 하반기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 컸다. JP모건은 삼성전자 주식을 추천주식에서도 제외했다. 그러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동반하락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준금리 인상이 한 달 전부터 예고돼 선반영됐던 만큼 주식시장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며 “금리가 지금보다 0.25%포인트씩 두 번 더 올라서 2%대에 도달하게 되면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금리인상 땐 부동산시장 위축될 듯

환율은 되레 올랐다. 통상 금리가 오르면 외국인 자금 유입이 많아지기 때문에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 현상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1.4원 올랐다. 시장에서는 이 역시 ‘선반영’으로 설명했다. 금리인상이 예상되자 투자자들이 원·달러 환율을 미리 끌어내려 놓았고, 이 때문에 막상 금리가 인상돼도 추가적으로 미칠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총재가 이날 “금리 추가조정 여부는 경제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검토하며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며 금리인상 신중론을 편 것이 결정타가 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연준의 금리인상 여부가 금통위의 금리인상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금리를 올리긴 했지만 0.25%포인트를 올린 연 1.50%는 여전히 낮은 금리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리인상에 신중하겠다는 얘기는 ‘당분간 저금리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저금리는 환율 상승의 요인이다. 그러니 외환시장이 ‘원·달러 환율 상승’에 배팅을 했고, 이날 환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금리인상, 시장의 동요는 없었다

정작 귀를 쫑긋 세우는 분야는 부동산이다. 10·24 가계대책으로 위축되기 시작한 부동산은 ‘예고된 이벤트’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신(新)DTI(총부채상환비율)와 DSR(총체적상환능력심사제)이 도입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여력이 크게 줄어든다. 여기에 대출금리까지 오르면 부동산에 유입되는 유동성이 전반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대출금리 인상은 대출의존도가 높은 상가와 신규분양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 당장이야 0.25%포인트 인상이 미칠 영향은 적지만 내년 이후 추가적으로 금리가 오른다면 장기간 갚아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은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가 10년 만기 국채 금리인 2% 수준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부동산시장은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전문위원은 “금리상승은 대출이자를 높여 금융조달비용을 높이기 때문에 투자수익률이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특히 오피스텔과 상가 등 시중금리 영향을 받는 부동산물건의 경우는 아무래도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관심은 한은이 과연 내년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금리를 올릴 것이냐에 모아진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3%를 넘을 것 같다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체감하는 국내 시장여건은 여전히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10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생산과 소비, 투자가 모두 감소해 ‘트리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총재는 퇴임 전까지 두 차례 기준금리를 결정할 수 있다. 내년 1월 18일과 2월 27일이다.

시장에서는 적게는 한 차례, 많게는 세 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세 차례 올리면 내년 말께 기준금리는 2.0%를 넘는다.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말한 수준이다. 추가 금리인상의 시점은 내년 2월과 7월로 엇갈린다. 예상보다 경기가 좋다면 2월에, 그렇지 않다면 7월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금리 결정의 숨어 있는 변수도 있다. 이 총재 임기다. 내년 2월 전이라면 이 총재가 주재하지만 그 이후는 신임 총재가 금통위를 주재한다. 퇴임을 앞둔 이 총재가 추가 금리인상을 단행할지, 새 총재는 비둘기파인지 매파인지에 따라 금리인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소시에테제네랄(SG)은 내년 2월로 점쳤다. 오석태 SG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가 경제성장을 자신하고 원화 강세에 대한 우려도 크지 않다는 입장을 보여 2월 추가 인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현대차투자증권은 내년 7월 기준금리 인상 쪽에 손을 들어줬다. 김지만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 두 번째 금리인상까지의 시차는 과거보다 클 것 같다“며 “내년 7월 추가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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