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 한국 경제에 악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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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경기 회복세 맞물려 2년 6개월만에 달러당 1100원 뚫려

‘원화 강세 시대가 돌아왔다.’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2년 6개월 만에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당 1100원이 뚫렸다. 시장에서는 이보다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우선은 국내 경기회복세와 수출 호조라는 요인이 크다. 여기에 정책적 요인도 작용한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펼치는 문재인 정부에서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고환율 정책을 고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1월 24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보다 7.18포인트 오른 2544.33에, 환율은 전일과 같은 1085.40원에 장을 마쳤다. / 연합뉴스

11월 24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보다 7.18포인트 오른 2544.33에, 환율은 전일과 같은 1085.40원에 장을 마쳤다. / 연합뉴스

수출기업 가격경쟁력 낮아져 부담 가중

올해 1월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08.0원이었다. 12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점점 하락세를 기록하다가 11월 들어 1100원대마저 깨졌다. 11월 23일 1085.4원으로 마감해 지난 2015년 5월 6일 1080원으로 마감한 뒤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11월 한 달간 4% 넘게 하락했다. 이에 외환당국이 지난 17일 “환율 하락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며 구두개입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음에도 원화가치 상승세는 이어지고 있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배경으로 크게 네 가지가 꼽힌다.

우선 국내 경기상황이 좋다는 점이다.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6%로 ‘깜짝’ 성장을 기록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3.2%로 상향 조정했다. 최근 두 달간 북한의 도발이 없었다는 점에서 북한발 리스크도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는 평가다. 사드 배치 보복 우려 역시 한·중관계가 풀리는 기류로 나타나면서 원화 강세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개편안 통과가 지연된다는 점과 한·캐나다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 역시 원화 강세를 지지한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원화가치 상승세는 참여정부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과거 참여정부 후반기(2006년 1월~2008년 4월) 국내 경기회복세와 맞물려 원·달러 환율은 27개월 동안 900원대에 머물렀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에서 참여정부 시절 ‘2004년 기준금리 인상으로 약달러 반전’, ‘신흥국 경기 상승세 확산’, ‘신흥국으로 투자자금 유입’ 등의 이유로 약달러가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금융규제 완화로 미국의 해외 투자 확대가 약달러 압력으로 작용하는 등 내년 외환시장 환경은 2006년과 매우 유사하다”며 “약달러 기조 연장으로 원화 강세 압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2018년 환율 전망 시 원화 강세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연간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완만한 달러 약세와 경기 펀더멘털 개선을 고려했을 때 원·달러 환율이 1060원 선까지 하락할 것”이라며 “평균 원·달러 환율은 1080원 수준”이라고 전망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내년 3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이 1080원으로 떨어진다고 예상했다. 환율이 올해 4분기 평균 달러당 1130원에서 내년 1분기(1115원)와 2분기(1095원)에 이어 3분기에 저점을 찍는다고 내다봤다.

해외에서도 예상은 비슷하다. 블룸버그 통신이 투자은행(IB)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달러 평균환율은 올해 4분기 1140원에서 내년 3분기 1125원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비자 구매력 확대시켜 긍정 요인도

외환시장에는 ‘최중경 라인’이라는 용어가 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2003~2004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시절 달러당 ‘1140원’ 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외환투자자들과 일전을 벌인 일을 뜻한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1140원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 이후로 환율 1140원은 ‘최중경 라인’으로 불리게 됐다.

이처럼 환율이 떨어질 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수출이다. 한국산 제품을 해외에 팔 때 가격경쟁력 저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 하락하면 국내 제조업체의 영업이익률이 0.05%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통상 압박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떨어지면 수출기업들의 부담은 가중된다. 현대차와 같은 수출대기업에서 환율 하락을 경계하는 이유다. 현대경제연구소는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원·달러 환율은 1183.9원인데 지금은 원화가 고평가된 상태”라며 “원화 고평가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 경제에 큰 어려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원화 강세를 꼭 그리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회복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환율 하락이 수출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며, 동시에 환율 하락이 내수경기에는 우호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수출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환율보다 글로벌 경기 사이클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면서 “사드 리스크 완화로 대중국 수출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향후 국내 수출경기에 우호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무역량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원화 강세는 수입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확대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특히 내수를 기반으로 한 소득 주도 성장론이기 때문에 지금은 환율 여건과 맞물려 내수 부양을 진작시킬 수 있는 재료가 갖춰진 것이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원화 강세의 순기능 중 하나는 내수 부양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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