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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성단층 연구 계획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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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주 지진 후 지도 제작 추진했으나 올 7월에야 겨우 연구기관 선정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일어난 5.4 규모의 큰 지진으로 활성단층의 존재가 다시 부각됐다. 하지만 지난해 경주 대지진 이후 박근혜 정부가 거창하게 약속한 국가 지진연구사업이 실제로 올해는 큰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 대지진 직후 국민안전처는 2017년부터 경주 등 경북지역과 인구 밀집 대도시부터 활성단층 조사를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연구기관 선정은 올해 7월에나 이뤄졌다.

경주 대지진 이후 국내의 활성단층 지도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민적 공분을 샀다. 활성단층이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원자력발전소, 산업단지 등 여러 주요 시설들이 들어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09년 소방방재청은 20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통해 ‘활성단층 지도 및 지진위험 지도 제작’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안전처는 시간과 예산의 제약으로 인해 450곳 이상으로 추정되는 단층 중 일부만 조사할 수 있었다며, 당시 만들어진 활성단층 지도는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2년 이후에도 국가 차원에서 활성단층 지도를 만들려는 연구는 이어지지 못했다.

경주 대지진 이후 국회와 언론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국민안전처는 2017년부터 경북 등 지진 빈발 지역과 대도시부터 활성단층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지진과 관련한 연구 예산은 2017년 예산안에 ‘지진 대비 안전인프라 기술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총 41억7500만원이 배정됐다. 이 중에서 가장 예산을 많이 배정받은 중요한 연구가 바로 부경대 산학협력단이 담당한 ‘한반도 단층구조선의 조사 및 평가기술 개발’ 연구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8년도 예산안을 보면 경주 대지진 1년이 지나도록 연구가 제대로 시작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예산 10억원이 배정된 국가지진 위험지도 표준화 방안 연구는 아예 연구용역기관이 선정되지 못한 채 예산이 그대로 내년으로 넘어갔다.

포항 지진 이틀째인 11월 17일, 붕괴위험으로 출입이 통제된 포항 홍해읍 대성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간단한 생필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포항 지진 이틀째인 11월 17일, 붕괴위험으로 출입이 통제된 포항 홍해읍 대성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간단한 생필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국가지진 위험지도 표준안도 시급

행정안전부는 무려 4차례에 걸쳐 연구용역 기관 공모를 진행했다. 올해 1월 공모에는 응시한 기관이 없었고, 3월의 2차 공모에는 경북의 한 대학에서 연구를 신청했다. 하지만 연구개발계획서의 내용이 행안부의 연구제안요청서와 맞지 않아 접수가 무효화됐다. 9월의 3차 공모 때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공모에 응했지만 행안부 내부 평가 결과 기준에 미달해 연구기관으로 선발되지 못했다. 행안부는 11월 말에 4차 공모를 마치고 연구기관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한 국회 관계자는 “행안부 측에 물어보니 경주 대지진 이후 연구 프로젝트가 많아서 국가 지진 위험지도 연구를 할 만한 분들이 다 그쪽으로 참여를 하는 바람에 적당한 연구자를 찾지 못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국가 지진 위험지도 제작은 활성단층 지도 제작만큼이나 중요한 사업이다. 국가 지진 위험지도는 지진·화산 재해대책법의 근거가 되는 지도다. 이 지도를 갖고 여러 시설물의 내진설계 기준이 정해진다. 2012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13년 만에 국가 지진 위험지도를 제작했는데(공표는 2013년 12월),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진·화산 재해대책법 12조에 의하면, 행안부 장관은 지진 위험지도가 공표된 날로부터 5년마다 이를 변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년에서야 지진 위험지도 표준안이 마련된다면 지도 제작 자체는 후년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진 위험지도는 활성단층 지도와 다르다. 지진 위험지도는 1905년 이래 발생한 지진을 측정한 자료와 역사문헌에 나오는 지진 자료를 토대로 한다. 여러 자료를 토대로 50년, 100년, 200년의 재현 주기마다 각 지역에서 얼마나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지 등고선 형태로 표기한 지도다. 2013년 공개된 지진 위험지도를 보면 경북 경주시와 포항시 일대는 지진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단층이 활성단층인지는 지진 위험지도로는 알 수 없다. 특정 지역이 활성단층의 영향권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활성단층 지도가 같이 활용돼야 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김부년 수석전문위원은 예비심사 검토보고서를 통해 “국가 지진 위험지도 표준화 방안 연구는 지도 제작에 필요한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알고리즘 개발을 통해 지도 작성 표준화를 하려는 것”이라며 “체계적·합리적인 국가 지진 위험지도 제작을 위한 방법론 연구 및 시스템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포커스]활성단층 연구 계획 ‘지지부진’

한편, 2041년까지 5단계에 걸쳐 진행될 활성단층 연구도 1단계부터 지체됐다. 1단계 5년(2017~2021년)간 168억8500만원이 투입될 예정인 활성단층 연구기관은 올해 7월이 되어서야 부경대 산학협력단으로 결정됐다. 행안부는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지진단층 조사·연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처별 역할분담, 사업 추진체계 결정 등에 시간이 소요돼 올해 5월 중순에야 연구기관 공모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연구기관 선정이 늦어진 탓에 1차 연도 연구는 내년 4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해저 활성단층 조사 필요 의견도

한편 새로 작성될 국가 활성단층 지도는 활성단층의 기준을 4등급으로 세분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는 2014년 전문가 25명으로 구성된 국가 활성단층 정비기획단을 구성했다. 정비기획단은 8번의 회의와 두 번의 세미나를 통해 한국형 활성단층 정의를 정립했다. 경주 대지진 이후 국민안전처는 활성단층 조사가 이 로드맵에 근거해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비기획단은 마지막으로 단층이 활동한 지질 시대에 따라 활성단층의 등급을 매겼다. 홀로세(현재~약 1만년 전)에 활동한 바 있는 활성단층은 1등급, 후기 플라이스토세(약 1만~12만년 전)에 활동한 활성단층은 2등급, 이후 중기 플라이스토세, 전기 플라이스토세에 활동한 바 있는 단층은 3·4등급으로 정했다.

정비기획단의 로드맵대로 활성단층 정의가 내려진다면 원자력발전소 관련한 활성단층과 활동성 단층 논란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원자력계는 활성단층보다 기준이 높은 활동성 단층이 있는 지역이 원자력발전소 설치에 위험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 현재 원자력 시설 고시에 따르면, 활동성 단층은 5만년 전에 1회 또는 50만년 이내에 2회 이상의 지표 변동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지금의 원자력 시설 고시에 따르면, 정비기획단 로드맵 상에서 2등급 활성단층으로 분류되는 곳의 상당수도 활동성 단층엔 들어가지 않는다.

해저 활성단층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활성단층 조사연구팀이 확정된 이후인 9월, 행정안전부는 경주 대지진 1년 관련 국제 세미나를 열고, 미국·일본·대만 등 해외 전문가들로부터 활성단층 지도에 대한 초청강연을 들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한준 박사(한국해양과학기술원)는 해저 활성단층의 조사 필요성도 밝혔다. 김 박사는 지난해 7월 부산 남동쪽 12㎞ 지점 해저에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학자다. 이미 김 박사는 2014년에도 부산 연안에까지 양산단층이 확장되어 있을 수 있다며 “남해를 권역별로 나눠 7년에 걸쳐 조사하고, 다음에 동해와 남해를 각각 7년씩 권역별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행안부의 활성단층 연구에서는 해저 활성단층 부분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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