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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문화 바꿀 수 있는 ‘언로’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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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찰들의 목소리,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 노력해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철성 경찰청장은 ‘인권경찰’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때마다 이 청장은 “경·검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하지만 내부의 목소리는 다르다. “인권경찰이 되겠다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우선 조직 내부의 수직적인 문화부터 바꿔야죠.” 경찰 조직 내부에 있는 이들은 경찰관 사이의, 경찰관과 시민 사이의, 경찰관과 무기계약직 사이의 수직적인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ㄱ씨는 “경·검 수사권 조정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수사를 했는지도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근 강력범죄 사건들은 경찰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의 살인사건에서 경찰은 실종신고 후 범죄 관련성이 의심됨에도 출동하지 않았다. 담당 과장은 수사팀장으로부터 범죄 연관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부에 늦게 보고했다.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에서도 경찰은 피해자가 신고한 지 두 달이 되도록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보복폭행을 가했다.

ㄱ씨는 “지금까진 피의자 신문 때 변호사가 동석하는 것 말고는 경찰 밖에서 시민들이 수사과정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며 “변호사 자격증은 없더라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조사과정을 들여다볼 때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 누군가 우리가 수사하는 걸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대충대충 수사할 수 없고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지난 6월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인원 부족으로 교육·훈련 제때 못받아

비수도권 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ㄴ씨는 경찰 지휘부에서 현장 인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결정을 내리는 일들이 많다고 말했다. 불과 몇해 전 ㄴ씨가 근무하는 지역에서는 인력 충원이 없는 상태에서 경찰서를 신설해 한동안 말썽이 있었다. 결국 인근 지방경찰청과 근처 경찰청에서 각각 수십 명씩 인력을 차출받은 이후에야 경찰서가 새로 생겼다. ㄴ씨는 “경찰관 정원은 대통령령 별표에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쉽게 늘어나기 어렵다. 2010년에 결정된 정원이 7년째 유지되고 있다. 치안수요의 변동에 따라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하는데 일단 경찰서만 늘리니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인력부족 문제는 다른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선 경찰관들이 이야기하는 문제 중 하나가 교육·훈련 부족이다. 교육을 통해 경찰관들이 실무 매뉴얼을 정확히 파악하고, 신체가 단련돼 있어야 피의자들을 정확히 제압할 수 있다. 어설프게 힘을 쓰다가 피의자도 다치고 경찰관도 다치고 ‘과잉진압’ 논란을 불러온다. ㄴ씨는 “사실 서로 교육·훈련에 안 가려고 하는 조직문화가 있다. 그런데 진짜 사람이 없어서 교육을 가지 못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ㄴ씨는 경찰서에서 실종사건 담당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보통 업무의 공백을 없애기 위해서 두 명이 한 가지 업무를 같이 본다. 하루나 이틀짜리 교육이야 큰 문제가 없지만 2~3주짜리 교육과정은 어떻게든 안 가려고 애쓴다. 남은 한 명이 혼자서 두 명분의 일처리를 해야 하고 비번 때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며 “정원을 늘리든지 불필요한 조직은 합치든지 어떻게든 인력운용 부분도 크게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ㄱ씨는 경찰이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을 때마다 오히려 경찰 조직은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평가’임을 전제로, 경찰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던 실적주의는 점점 해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지방청장, 경찰서장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전국적 차원에서 실적을 강요하는 모습은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개선됐다. 특히 조현오 전 청장이 그만둔 후부터 실적 강요가 많이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경찰 내부의 수직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경찰관들의 ‘언로’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찰청이 추진하는 직장협의회 설립에 찬성하면서도 “직장협의회는 현행법상 경찰서 단위로만 설립할 수 있고, 협의회끼리 연대체를 만들 수가 없다”며 “경찰서별로 나뉘어서 활동하면 결국 현장 경찰관들보다 서장과 지휘부의 목소리만 크게 반영된다. 언로 보장이라는 목적을 이루려면 노동조합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 개선 필요

수도권 경찰관 ㄷ씨는 경찰노조 또는 직장협의회가 생기면 건강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건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ㄷ씨처럼 일선 지구대 근무자들은 4일 간격으로 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무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일하는 시간은 일주일 40시간이 보장되는 추세라고는 하나, ㄷ씨는 생체리듬이 파괴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일선 경찰관들이 생체리듬이 깨져 있는데, 건강권을 넘어선 생명권의 문제다. 퇴직 경찰관들의 이후 삶을 추적한다든지 해서 의학적으로 지금의 근무형태에 문제가 없는지 규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관과 무기계약직 사이의 차별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경민 경찰청공무직노동조합(주무관노조) 위원장은 17년간 주무관으로 재직하면서 ‘당신은 직원이 아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앞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경찰관 1명이 사망했다. 전국의 경찰들은 사망자를 추모하는 뜻으로 왼쪽 가슴에 근조리본을 달고 출근했다. 이 위원장은 “같은 경찰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1인당 5000원의 상조비를 냈기에 일이 터지고 나서 당연히 근조리본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안 주더라. 다른 서에서 일하는 조합원의 말을 들어보니 리본을 나눠줬다가 ‘당신은 직원 아니잖아’라며 가져간 곳도 있다고 한다. 민원실에서 다들 근조리본 달고 있는데 혼자만 리본을 달지 못한 채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청 주무관들은 특정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다. 그러다 보면 경찰관 못지않게 해당 부서의 업무를 잘 파악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경찰관의 일과 주무관의 일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통범칙금 관련 업무다. 일선 경찰서 교통과 민원실에는 주무관들이 교통 영상을 보고 법규 위반 여부를 판독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우가 있다. 경찰관이 아닌 직원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부당하다는 지적이 있자 경찰청은 교통단속 처리지침을 고쳐 주무관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가 문제제기한 핵심은 주무관들이 한 일에 대해 정당히 평가해달라는 거다. 영상판독은 우리가 다 했는데 우리는 (무기)계약직이니까 실적평가를 못받고, 같은 부서에 있는 다른 경찰관들 실적으로 빼앗기는 경우가 있다”며 “정부는 공공기관 무기계약직도 정규직과 같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이런 차별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관 ㄹ씨는 “경찰관도 계급에 따라 격차가 있고 경찰관과 행정직, 주무관 사이에 또 격차가 있다. 같은 조직의 구성원끼리 격차가 커지면 조직이 잘 안 돌아가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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