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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진짜 단체교섭은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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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웰스토리 2개 노조 회사에 교섭 요구… 사측 어떻게 나올 지 관심

1938년 삼성상회로 시작해 반세기 넘게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성그룹에 노조 설립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감돈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삼성에도 드디어 노조가 생기는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절, 그룹 임원진들의 관심은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룹의 전통을 깨게 될 불명예스러운 기록. ‘과연 어떤 계열사가 처음 노조를 허용할 것인가’다. 이후 각 삼성 계열사별로 사내 노조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비상이 걸려왔다는 건 재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지난해 말 대법원이 “삼성그룹이 작성하고 실행한 것이 맞다”고 판단한 논란 속의 ‘S그룹 노사문건’도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2011년 삼성 최초의 ‘민주노조’로 지칭되는 삼성에버랜드노조(현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설립됐고, 올해에만 3개의 노조가 신설되는 등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도 조금씩 균열이 가는 중이다. 노동계가 숙원하던 ‘삼성에서 노조하기’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성 노조 역사에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노조와 삼성 간 사상 첫 단체협상이다. 삼성그룹 내 노조도 첫 물꼬를 튼 뒤 현재 8개까지 노조가 늘었다. 연내에 첫 단체협상이 열린다면 내년부터 노조가 있는 각 계열사별로 추가적인 단체협상 요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머지않아 삼성에서도 단체협상 결렬에 따른 ‘합법적인 파업’이 일어날 가능성 역시 있다는 뜻이다.

4월 17일 열린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노동조합 출범식에서 노동자들이 사측에 정당한 노조활동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삼성웰스토리지회 제공

4월 17일 열린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삼성웰스토리노동조합 출범식에서 노동자들이 사측에 정당한 노조활동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삼성웰스토리지회 제공

에버랜드 상장 논란, 부메랑돼 돌아오다

삼성웰스토리는 단체급식과 식자재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본래 삼성에버랜드 유통사업부에 속해 있다가 에버랜드와 제일모직이 합병된 후 2013년 12월 별도로 분사했다. 최대주주는 삼성물산으로, 삼성웰스토리 주식 100%를 가지고 있다. 대표이사 역시 김봉영 삼성물산 대표이사가 겸직으로 맡고 있다. 다른 삼성 계열사에 비해 이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웰스토리는 급식업계 1위 업체로 지난해 매출이 1조7259억원에 달했다. 직원 수는 6809명으로 삼성 계열사 중 8번째로 많고, 조리보조원 등 파견근로자까지 하면 1만3000여명이 근무 중이다.

삼성웰스토리에는 현재 2개의 노조가 설립돼 있다. 올 4월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삼성웰스토리지회(민주노조)가 먼저 설립됐고, 8월에는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소속 삼성웰스토리노조(한국노조)가 노조 설립신고를 마쳤다. 노조의 기본적인 설립 취지 등은 동일하지만 민주노조는 금속노조 산하에 있는 산업별 지회인 반면 한국노조는 기업별 단위노조라는 게 차이점이다. 통상 산별노조는 교섭 시 상급단체가 교섭에 참여한다. 반면 단위노조는 개별적으로 단체교섭권과 행동권 등을 갖는다. 한 계열사에 양대 노조 산하 노조가 나란히 설립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현재 양 노조 모두 사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상태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11월 1일 사측에서 양 노조에 보낸 ‘교섭요구 확인 노조 통지’ 문서를 보면 민주노조는 교섭 요구일자(10월 31일) 기준 조합원 수가 64명, 한국노조는 교섭 요구일자(10월 24일) 기준 조합원 수가 45명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삼성웰스토리 측은 노조의 요구에 응해 단체교섭에 나서야 한다. 현재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지만 적어도 연내 삼성이 노조와 단체협약을 위해 협상테이블에 앉는 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양 노조 모두 조합원들에 대한 대폭적인 처우개선을 요구 중이다. 급식업계의 경우 조리사, 영양사, 조리보조원 등 종사자들의 처우가 노동시간이나 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대표적인 업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양 노조에 가입된 조합원들 상당수가 조리사와 영양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민주노조의 임원위 지회장과 한국노조의 이진헌 위원장 모두 현직 조리사다.

삼성웰스토리에 유독 양대 노조 산하 노조가 설립된 건 근로조건이 열악한 업계 특수성 탓도 있지만 “사측이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도 노동계에선 나온다. 삼성웰스토리의 경우 분사를 앞두고 당시 에버랜드의 상장설로 재계가 떠들썩했다.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므로 경영승계 과정에서 에버랜드를 상장해 유용하게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었다. 에버랜드가 상장되면 싼 값에 우리 사주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직원들은 분사에 강력 반대했다.

삼성웰스토리지회 김현 사무총장이 10일 경기도 성남 삼성웰스토리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삼성웰스토리지회 제공

삼성웰스토리지회 김현 사무총장이 10일 경기도 성남 삼성웰스토리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삼성웰스토리지회 제공

‘사측’ 삼성은 어떤 모습일까

그러자 사측이 직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임 지회장은 “당시 사측이 5년 내 에버랜드 상장 계획이 없고, 분사가 되더라도 복지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고 보너스는 더 주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후 삼성웰스토리가 분사되자, 삼성은 분사 6개월 만에 에버랜드 상장을 단행한다.

당시 크게 이슈화되지는 않았지만 상장 직후 삼성웰스토리 직원 668명은 삼성물산을 상대로 “분사로 인해 에버랜드 상장에 따른 우리사주를 받지 못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당시 에버랜드에서 삼성에스원으로 이직한 직원 223명도 소송을 내는 등 에버랜드 상장건으로 삼성이 직원들로부터 당한 소송은 1000여건에 달했다. 재판 결과 사측이 모두 승소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이 문제는 결국 부메랑이 돼서 삼성에 돌아왔다. 올해 노조가 새로 생긴 삼성 계열사 4곳 중 2곳이 바로 삼성웰스토리와 삼성에스원이라는 점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체교섭이 예고돼 있기는 하지만 삼성웰스토리가 직접 협상테이블에 나설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예컨대 삼성웰스토리가 “단협 경험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노무법인 등을 통해 이른바 ‘대리협상’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조합원이 하청업체 수리기사들로 이뤄진 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경우 사측이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대리인격으로 내세워 협상에 임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삼성웰스토리 측은 현재 “아직 단협 단일화 과정이라 구체적인 협상 일정이나 계획 등이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지만 과거 사례가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때문에 민주노조는 이번주부터 사측에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삼성웰스토리가 직접 협상에 나선다 해도 노조의 요구에 대해 사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슨 조건을 내걸지도 미지수다. 민주노조와 한국노조 모두 직원 수 대비 조합원 수가 크게 적다. 법률상 직원 절반 이상이 속해 있는 노조가 아닐 경우 단협을 체결해도 그 효력은 해당 노조에만 국한된다. 노동계에서는 이런 점을 이용해 사측이 얼마든지 협상테이블에서 사측에 유리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소수 조합원만 확보한 노조가 갖는 힘의 한계를 악용하는 경우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극단적으로는 단협이 무산돼 파업 등의 쟁의로 간다 해도 아무래도 노조 조합원이 소수라면 파급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사측에서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노조가 요구하는 단협 수준과 사측의 눈높이 간 간극이 크다는 점에서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민주노조의 경우 임금인상 16.5%를 관철시키겠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웰스토리가 지난해 노사협의회를 통해 확정한 임금인상률은 3%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어느 한쪽이 크게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단협이 본격적인 ‘카드’를 맞춰보기도 전에 파행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재계에서는 다만 ‘노동인권’을 주요 정책가치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상 삼성이 무리하게 노조를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아직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공익재단 조사에 착수하는 등의 경영환경을 감안할 때 사회적으로 비판여론이 높을 사안을 삼성이 굳이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노조는 노조 나름대로 첫 단체교섭에서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있을테고, 삼성도 단협이 파국으로 흐를 경우 총수 일가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결국은 양측이 일정 부분 타협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밝혔다.

첫 단협을 대하는 삼성 측의 카드는 그룹 인사가 모두 끝난 뒤 본격적으로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웰스토리 지분을 100% 가진 삼성물산만 해도 사장단에 대한 교체설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바로 각 계열사 내부 임원 인사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를 감안하면 적어도 이달 말쯤은 돼야 첫 단협에 대한 삼성 측의 대응방향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조 임원위 지회장은 “일단 사측과 동등하고 평등한 입장에서 교섭에 임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며 “교섭안을 놓고 사측과 싸우기보다는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는 책임감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노노갈등’ 문제도 극복해야

단협에 앞서 삼성웰스토리의 양 노조 간에도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다. 노동조합법에서는 한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있을 경우 사측과 단협에 임하기 전 협상창구를 반드시 단일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는 조합원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다수 노조’가 일단 주도권을 쥐게 된다. 노조들 간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단일화가 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수 노조는 단독으로 교섭권을 가져올 수 있다. 반대로는 사측과 사전 협의할 경우에 한해 각 노조가 사측과 개별교섭을 벌일 수도 있다.

삼성웰스토리의 경우 민주노조 조합원이 64명으로 한국노조의 45명보다 19명 더 많다. 이에 한국노조 측은 민주노조에 창구 단일화를 통한 공동교섭대표단 구성을 요구 중이다. 반면 민주노조 측은 교섭을 한국노조 측과 공동으로 할지, 단독으로 진행할지 여부를 놓고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등과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에서는 양측 간 원만한 단일화 협의에 실패할 경우 노노갈등이 벌어질 우려를 제기 중이다.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의 경우 이미 노동계에서는 존립이냐 폐지냐를 놓고 매년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경우 강제적인 단일화 조항 탓에 소수 노조의 교섭권이 제한되고 노노갈등이 심화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실제 한 사업장에서 단일화 문제를 놓고 노노갈등이 발생하는 게 드문 사례도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삼성과의 첫 단협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하는 시각이 많은 것”이라며 “향후 다른 삼성 계열사 노조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교섭 결과에 따라 양 노조의 조합원이 더 늘거나 줄어들 가능성 역시 있다.

교섭과정을 전후로 계속 노조를 유지하고 확장해나가야 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민주노조와 한국노조 모두 “지속적인 사측의 감시와 회유 등으로 노조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 중이다. 임 지회장은 “사측에서 조합원이 누군지 파악하기 위해 전사적인 직원 면담과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노조 이준헌 위원장은 “이미 조합 설립 초기부터 사측에서 노조 가입 여부를 묻고 다녀 인사담당자에게 부당노동행위라고 공식적으로 항의한 상태”라고 밝혔다.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사측에선 법으로 보장된 노조활동에 대해 감시나 회유 등을 전혀 한 바 없고, 할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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