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돌아오는 ‘성 비위 교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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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담당’ 선생님이었다. 교사 김모씨(52)는 자는 학생의 몸을 만지고 추행했다. 자기 몸이 뻐근하니 주물러 달라는 식으로 추행한 학생만 31명에 달했다. 31명의 여학생들이 성추행을 당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남학생 3명은 폭행을 당했다. 학생들의 인권, 성적 자기 결정권은 교사의 권위 앞에 무너졌다. 김씨의 동료교사 한모씨(42)도 김씨에 못지 않았다.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치는 여학생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저지른 한씨에게 당한 제자만 54명이다. 경기도 여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2015년 3월부터 알려진 피해만 이 수준이었다. 뒤늦게 두 교사를 비롯해 해당 교사들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학생에게 듣고도 방관한 교사들까지 도교육청의 징계대상에 올랐다.

전교 여학생 수의 3분의 1에 이르는 72명의 학생들이 두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해 주목을 받았던 이 사건은 11월 10일 경기도교육청이 이들 교사를 교단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중징계 처분을 내릴 방침을 세우며 차츰 일단락되어가고 있다. 두 교사가 받고 있는 성추행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일단 도교육청의 중징계 방침에 따라 교육청 징계위원회가 파면 또는 해임이라는 구체적 징계처분을 확정하면 이들은 교단에 설 수 없게 된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사립학교 경우 이사진이 징계 결정

하지만 파면이나 해임처럼 교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무거운 ‘배제징계’를 받아도 완전히 끝은 아니다. 교원의 인사처분에 대한 소청심사를 거쳐 징계 내용이 한 단계 내려가기만 해도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교육부의 교원 징계양정규정에 따르면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원칙적으로 다시 파면 또는 해임의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럼에도 정직·강등·감봉 등의 경징계를 받는 경우를 포함해 소청심사를 거쳐 징계가 취소되거나 감경돼 다시 교단에 서는 성 비위 교원의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와 교원소청심사위의 성 비위 교원 징계 현황과 그 가운데 파면·해임된 교원의 취소청구 현황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교원들이 성범죄를 저질러 징계받은 건수는 291건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다시 교직을 맡을 수 없게 중징계를 받은 건수는 해임 114건, 파면 47건으로 55.3%에 불과했다. 나머지 44.7%는 징계 중이거나 징계가 끝난 뒤 전처럼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교원소청위에서 징계 취소나 변경 결정이 내려져 징계가 가벼워진 경우를 더하면 교단에 복귀하는 성범죄 교원의 비율은 더 높아진다. 2015년 1건을 비롯해 지난해 7건, 올해는 7월까지만 7건에 이르는 등 징계 취소 건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기엔 교원이 성범죄 때문에 받는 징계 건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배경이 되고 있다.

교원이 성범죄로 교육부의 징계를 받은 건수는 2014년 44건에서 2015년 97건, 지난해에는 135건으로 급증했다. 교원들이 최근 들수록 더 많은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기보다는, 대체로 그동안 교사의 권위 때문에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해도 밝히지 못했던 현실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교육현장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한 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사들의 성범죄 자체가 급증했다기보다는 예전에는 성범죄로 여겨지지 않았거나 피해를 입어도 밝히기를 꺼려해 감춰졌던 일들이 드러나면서 건수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교사 역시 성범죄 같은 학대사실을 알았을 때의 신고의무자이므로 다른 교사들이 성범죄에 대해 신고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교원의 성범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특히 교사들이 초·중·고교생 등 청소년과 가장 오랜 시간 가까이서 함께 생활한다는 특성 때문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원소청위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교원이 저지른 성범죄 피해자의 64%가 학생으로 나타났다. 이어 동료직원이 피해를 입은 경우가 22%로,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성범죄 피해가 집중되고 있었다.

학생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교육현장의 특성 때문에 교육부도 2015년 4월 이전보다 성범죄 징계를 강화하는 방침이 담긴 대책을 제시했다. 모든 성폭력에 대해서, 그리고 성매매도 미성년자 등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최소 해임하는 등의 강도 높은 대책이었다. 성범죄 관련 사실을 고의로 은폐했을 때도 최고 파면까지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장에서도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가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로 동의했다. 하지만 교원 성 비위사건 건수가 늘어난 데다, 이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으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대표적으로 사립학교 교사는 교육청에서 징계내용을 정해도 사학 이사진이 그보다 낮은 단계로 징계를 내리게 되면 손쓸 방법이 별로 없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징계 교원 대부분 징계 취소청구

학교 재단의 횡포나 과도한 징계로부터 교원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의 교원소청위에서 성범죄 교원의 징계가 감경되는 경우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교원을 대상으로 한 징계나 불리한 처분에 대해 심사를 통해 권익을 구제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교단을 떠나도록 하는 파면·해임 같은 배제징계를 면할 수 있는 마지막 창구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징계 취소 결정문의 구체적인 사유를 보면 ‘청구인이 잘못을 모두 시인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거나 ‘범죄 전력이 없다’ 등 주관적이어서 일반 여론과는 상충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교원소청위를 거쳐 징계가 감경된 한 교사는 자신의 승용차에 여학생을 태운 뒤 손을 잡고, 체육실에서 학생의 이마에 강제로 뽀뽀를 하는 등의 추행을 저질러 해임처분을 받았다. 학생에게 시험을 봐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자신과 ‘연애하자’는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의 추행도 저질렀다. 그러나 교원소청위의 판단으로는 이런 행위가 해임에 이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 교사는 3개월간의 정직으로 징계가 낮춰진 뒤 징계를 모두 마치고 교단으로 돌아갔다. 또 다른 교사 역시 수업시간에 여학생 4명의 몸을 만지며 성희롱 발언을 했지만 해임처분에 불응해 교원소청위를 거쳐 정직 3월 처분으로 징계수위가 낮아진 바 있다.

최근 3년간 성범죄 때문에 중징계를 받은 교원의 수가 155명인데 같은 기간 교원소청위에 징계 취소 청구를 한 인원이 141명에 달하는 점은 교원소청위가 징계 감경의 창구로 인식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파면·해임에서 정직 등의 경징계로 낮춰질 경우 체면 때문에 더 이상 교단에 머무르지는 못해도 자진해서 사직서를 낸 뒤 퇴직금과 연금 등을 수령할 수 있게 된다. 이 점도 이들이 교원소청위로 향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성범죄 교원 중 징계를 감경시키지 못한 비율이 89%에 달할 정도로 교원소청위의 결정이 이들 교원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한 고교 교사는 “이미 파면이나 해임 같은 중징계를 받았다는 건 죄질이 무겁다는 얘기인데, 교원 권리 구제를 위해 필요한 기관을 악용해 사익을 노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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