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덕목, 나를 따르라? 소통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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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역할은 더 이상 경기 운영 능력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경기 중 결정을 어떻게 선수들에게 전달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즉 소통 능력이 최우선순위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중이다.

뉴욕 양키스는 한때 감독들의 무덤이라 불렸다. 1980년대 양키스 감독은 이제는 고인이 된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변덕에 따라 바뀌기 일쑤였다. 빌리 마틴 감독은 양키스 감독 자리에서 세 번이나 잘렸다 복귀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1996년 이후 또 한 번의 양키스 왕조를 구축한 뒤 20여년 동안 양키스 감독은 딱 2명이었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시즌 양키스를 이끈 조 토리 감독과 2008년부터 양키스 감독으로 부임한 조 지라디 감독이 전부다.

올해까지 22번의 시즌 동안 양키스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것은 겨우 4번뿐이었다. 올 시즌에도 양키스는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까지 치렀다. 월드시리즈 문턱까지 갔던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다저스 프랜차이즈 사상 첫 유색인 감독인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10월 28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타석을 앞둔 야시엘 푸이그와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저스 프랜차이즈 사상 첫 유색인 감독인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10월 28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타석을 앞둔 야시엘 푸이그와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드 스쿨 시대 가고, 뉴 스쿨 시대 오다

양키스는 10시즌을 이끌어 온 조 지라디 감독과 재계약을 선택하지 않았다. 경기 운영을 위한 전략·전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브라이언 캐시맨 양키스 단장은 지라디 감독과의 결별 이유에 대해 “젊은 선수들과 보다 강한(stronger) 연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른바 ‘소통’과 ‘설득’이 부족했다는 판단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단지 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리더십’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

<뉴욕 타임스>는 11월 9일자에서 뉴욕 양키스의 감독 선정 과정을 두고 ‘LA 다저스를 참고하라’고 전했다.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2년 전 다저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다저스 프랜차이즈 사상 첫 유색인 감독이었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 데 결정적인 도루를 성공시킨 선수로 잘 알려졌지만 특유의 공격적이면서도 낙관적인 태도가 큰 점수를 얻었다.

로버츠 감독과 계약한 앤드루 프리드먼 다저스 야구부문 사장은 “정규시즌 162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는 멈추지 않는 낙관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특히 여론이 들끓는 빅 마켓 팀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프리드먼 사장은 “메이저리그 팀 25명의 선수들을 이끄는 데 있어서 에너지를 뿜어내고 (선수들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로버츠 감독은 거기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감독의 역할은 더 이상 경기 운영 능력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는 야구 관련 통계와 기록들은 감독의 판단을 ‘객관적’으로 만든다. 경기 전 선발 라인업의 결정, 경기 중 교체선수의 투입은 경기 흐름에 예민하게 닿는 감독의 ‘감’이 아니라 숫자가 결정한다. 그동안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 않던 야구경기의 세밀한 부분들이 미사일을 추적하는 레이더 시스템의 도입과 슈퍼 슬로모션 카메라 등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숫자는 감독의 감을 재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감독의 역할은 경기 중 숫자가 내려주는 결정을 어떻게 선수들에게 전달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즉 소통 능력이 최우선순위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중이다.

양키스를 대표하는 1루수였고 지금은 ESPN 해설위원으로 일하는 마크 테셰이라는 “이제 올드 스쿨이 아니라 뉴 스쿨 스타일의 감독이 주목받는 시대”라고 평가했다. 테셰이라는 “조 지라디 감독은 훌륭한 감독이었지만 매 경기를 월드시리즈 7차전처럼 운영하는 감독”이라면서 “존경받는 분이지만 162경기를 모두 그렇게 치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야구에서의 감독은 더 이상 “나를 믿고 따르라. 그러면 이길 것”이라고 말하는 자리가 아니다. 테셰이라는 “뉴 스쿨 스타일의 감독은 선수에게 왜 경기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왜 5회 이후에 교체되는지에 대해 통계숫자와 함께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휴스턴 힌치 감독, 명문대 심리학 전공

다저스 로버츠 감독은 선발투수를 일찌감치 교체하는 방식으로 정규시즌을 치렀다. 류현진은 물론이고, 마에다 겐타, 알렉스 우드 등이 6회는 물론이고 5회를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도 바뀌기 일쑤였다. 심지어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도 예상보다 일찍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러나 투수들은 감독의 ‘퀵 후크’에 큰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구단의 전략이 반영된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 역시 로버츠 감독의 역할이자 장점이었다. 로버츠 감독은 2016시즌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시카고 컵스 조 매든 감독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AJ 힌치 감독은 휴스턴을 올 시즌 창단 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힌치 감독은 34세였던 2010년 애리조나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후 다저스 코치 등을 거쳐 2015년부터 휴스턴 감독을 맡았고, 3시즌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감독이 됐다.

힌치 감독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뉴 스쿨’ 감독이다. 메이저리그 포수 출신이지만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숫자와 통계에 밝은 것은 물론이고, 심리학 전공자답게 선수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휴스턴이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모두 7차전까지 치른 끝에 우승을 차지한 것은 힌치 감독의 팀 운영 스타일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감독 기준의 변화는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KBO리그에도 찾아오고 있다. KIA 김기태 감독은 경기 운영의 전략보다는 팀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시즌 초반이었던 5월 28일 광주 롯데전 최원준은 앞선 세 번의 만루기회를 한 번도 살리지 못했다. 롯데는 앞 타선의 김선빈을 고의4구로 계속 거르며 최원준을 궁지로 몰았다. 또 찾아온 연장 11회말 만루 기회, 김 감독은 최원준을 그대로 내보냈다. 김 감독은 무거운 지게를 스스로 짊어졌다. 최원준은 만루홈런을 때렸고, 한 뼘 이상 성장했다.

6월 13일 사직 롯데전 7-7 동점 8회말 2사 1·2루, 이대호 타석 때 마운드에 김윤동이 있었다. 김 감독이 마운드를 찾았다. “이대호 연봉이 얼마냐?”고 물었다. 김윤동 연봉의 50배가 넘는다. “맞아도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김윤동은 이대호를 내야 땅볼로 잡아냈다.

신뢰가 쌓였고, 소통으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냈다. 롯데는 팀워크 형성에 장점이 있는 조원우 감독과 재계약했고, 한화는 새 감독으로 ‘어머니 리더십’으로 잘 알려진 한용덕을 선택했다. 야구도 우리 사회도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나를 따르라”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쏟아지는 데이터 속에 이를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소통의 능력이다.

<이용균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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