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는 왜 테러의 수출기지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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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시절부터 독립 후 권위주의 정권 통치에 이르기까지 우즈벡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90년에 걸친 이슬람 탄압은 극단주의 경도와 테러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소련의 이슬람 탄압은 집요했다. 인구 90%가 무슬림이었지만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1912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슬람 사원(모스크)은 2만6000개에 달했다. 30년이 지난 1941년 그 수는 1000개로 줄었다.

사이포프가 테러에 이용한 소형 트럭이 1일 뉴욕 사건 현장에 그대로 세워진 가운데 경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뉴욕|EPA연합뉴스

사이포프가 테러에 이용한 소형 트럭이 1일 뉴욕 사건 현장에 그대로 세워진 가운데 경찰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뉴욕|EPA연합뉴스

테러의 ‘인큐베이터’ 된 이슬람 탄압

그러나 소련의 이슬람 탄압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슬림들은 지하로 숨었고 과격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소련의 영향력은 줄었고, 이슬람은 힘을 회복했다. 마침내 소련이 붕괴하자 극단주의자들은 신생 독립 정부를 장악하려 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직후 한 무장단체는 우즈베키스탄의 옛 공산당 건물을 점거하고,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기반한 법과 질서를 수립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삼을 것을 요구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테러가 오히려 더 확산된 것처럼 소련의 이슬람 탄압은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았다. 독립 후 우즈벡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각국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1991년 독립과 함께 우즈벡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슬람 카리모프는 지난해 사망하기 전까지 26년 집권 기간 내내 이슬람을 억압했다. 이슬람 정당을 불법화했고, 이슬람 학교에는 경찰을 잠입시켰다. 메카 순례에는 정부 요원을 붙였다. 식당에서 할랄 음식(이슬람 율법이 허용하는 음식) 파는 것을 금지했고, 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이드 알피트르 축제까지 막았다.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성직자들의 설교 내용을 사전 검열했다. 지난해 타지키스스탄은 무슬림 남성 1만3000명의 턱수염을 강제로 밀었고, 전통 이슬람 복장을 파는 상점 160여개를 폐쇄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트럭 테러로 8명을 숨지게 한 사이풀로 사이포프. 2010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넘어온 그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들었다./AP연합뉴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트럭 테러로 8명을 숨지게 한 사이풀로 사이포프. 2010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넘어온 그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들었다./AP연합뉴스

일자리 찾아 중앙아시아 떠난 무슬림

카리모프나 다른 중앙아시아 권력자들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정권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국 시사지 <더애틀랜틱>은 “카리모프의 가혹한 정책은 극단주의를 제어하지 못했고, 오히려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만성적인 부패와 빈곤까지 겹치면서 무슬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2010년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누적된 불만이 폭발해 유혈사태를 동반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2015년 타지키스탄에서는 미국에서 대테러 훈련까지 받은 굴무로드 하리모프라는 이름의 전직 경찰 고위간부가 이슬람국가(IS) 조직원으로 합류했다. 그는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이슬람을 억압하는 타지키스탄 정부를 개에 비유하며 미국과 러시아에서 지하드(성전)를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수많은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이 억압과 빈곤을 피해 나라를 떠났다. 칼리모프처럼 IS에 합류한 이들이 많았다. 세계 분쟁을 다루는 비영리조직 국제위기감시기구(ICG)는 2015년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최대 4000명이 IS에 가담했다고 보고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난 이주민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들고 테러에 손을 뻗는 경우도 적잖았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트럭 테러로 8명을 숨지게 한 우즈벡 출신 이민자 사이풀로 사이포프(29)도 그런 경우였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생활이 어려워질수록 분노는 커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제안보대학(CISA)의 중앙아시아 전문가 에리카 마랏 박사는 <뉴스위크>에 “우즈벡 젊은이들은 독재를 피해 서구로 떠나오지만, 그들은 현지 사회에 어울리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그들은 소속감을 원한다. 그들에게 극단주의 서사는 더없이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IS는 사이포프 같은 중앙아시아 출신 젊은이들의 좌절과 고립을 파고든다. 인터넷에는 러시아어로 된 IS 선전 영상이 넘쳐난다.

지난해 사망한 이슬람 카리모프 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26년 통치 기간 내내 가혹한 이슬람 탄압정책을 펼쳤지만 이슬람 극단주의는 오히려 더 커졌다./크렘린

지난해 사망한 이슬람 카리모프 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26년 통치 기간 내내 가혹한 이슬람 탄압정책을 펼쳤지만 이슬람 극단주의는 오히려 더 커졌다./크렘린

우즈벡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지역은 테러의 수출기지가 됐다. 맨해튼 사건뿐만이 아니다. 올해 벌어진 터키 이스탄불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자살폭탄 테러, 스웨덴 스톡홀름 도심 트럭 테러 모두 용의자는 우즈벡 출신이었다. 지난해 6월 사망자 45명이 나온 이스탄불 공항 테러 용의자는 우즈벡과 키르기스, 다게스탄공화국 출신 남성 3명이었다. 소련 시절부터 독립 후 권위주의 정권 통치에 이르기까지 90년에 걸친 이슬람 탄압은 극단주의 경도와 테러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아시아 출신의 테러가 급증하면서 세계는 대테러 전략을 다시 짤 수밖에 없게 됐다. 아리엘 코언 대서양위원회 선임연구원은 NBC방송 기고에서 “테러는 더 이상 중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극단주의자는 유라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올 수 있다”고 적었다.

강경책 예고한 트럼프, 효과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강경한 대테러 정책을 예고했다. 그는 테러 다음날인 지난 1일 트위터에 “우리는 더 엄해져야 하며, 정치적 올바름을 덜 따져야 한다”고 적었다. 사이포프를 ‘동물’에 비유하며,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엄격한 심사 없이 추첨으로 영주권을 허용하는 ‘비자 추첨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우즈벡을 입국 금지국가 목록에 추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는 두 차례 반이민 행정명령을 통해 이슬람 국가와 북한, 베네수엘라 등 8개국을 입국 금지국가로 지정한 바 있다.

강경 일변도 정책은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탄압은 실패로 돌아갔다. 코언은 지금이야말로 미국이 우즈벡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관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러 정보 공유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사법·안보당국이 이슬람 종교와 역사, 지리, 정치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심진용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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