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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 큰 손 하림의 살처분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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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는 농가 병아리지만 하림의 재산” 육계농가 보상금의 80% 가져가

조류인플루엔자(AI)와 살충제 계란으로 ‘공장식 축산’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지난 10월 1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정기 국정감사에 출석한 하림그룹 김흥국 회장(60)에게 김현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질문했다. “위탁농가에서 키우고 있는 닭은 하림의 소유입니까, 위탁농가의 소유입니까?” 김 회장이 답했다. “지금은 계약상 소유는 농가로 돼 있고, 재산권은 신탁양도담보를 해서 계열주체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병아리가 누구의 병아리인가?’라는 질문에 ‘농가 소유의 병아리지만 하림의 재산’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 짤막하고 기묘한 문답에 최근 한국 축산업 이슈가 모두 들어 있다. AI로 인한 닭 살처분 보상금 문제부터 축산 계열화의 불공정 문제까지 핵심은 ‘병아리의 소유권’에서 출발한다. 김현권 의원실은 공장식 축산과 AI파동 등이 있을 때마다 부담을 떠안는 축산농가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아리 소유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하림이 계약농가에 대해 ‘병아리 단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도록 농가에 불리한 계약을 맺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하림은 하림계열 농가들은 불만이 없는데 업계 1위 기업이라 부당하게 견제 받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계열화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불공정행위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개선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역시 병아리 소유권이 포인트다. 축산 계열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의 축산업계 행태가 수직적 계열화인지 수평적 계열화인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병아리 소유권’이 이를 가늠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5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오리에 있는 한 토종닭 사육 농가에서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하고 있다. 기장군은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농가에서 키우던 닭과 오리 4228마리를 살처분하고 반경 3km이내 농가에서 키우는 닭과 오리도 살처분했다. / 연합뉴스

지난해 6월 5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오리에 있는 한 토종닭 사육 농가에서 공무원들이 살처분을 하고 있다. 기장군은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 농가에서 키우던 닭과 오리 4228마리를 살처분하고 반경 3km이내 농가에서 키우는 닭과 오리도 살처분했다. / 연합뉴스

‘병아리 소유권’이 불공정 문제 핵심

김 회장이 국회 농해수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유 중 하나는 몇 년째 논란 중인 AI 살처분 보상금 문제 때문이었다. AI는 2003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2~3년 주기로 발생하다가 2014년 이후부터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농가가 손해를 입지 않도록 살처분한 병아리들에게 시중 닭의 가격을 적용해 보상금을 지급한다. 양계농가를 중심으로 계열화된 육계(고기를 목적으로 하는 닭) 농가에서는 보상금의 80%를 하림 등 계열주체인 육가공업체가 가져간다는 지적을 계속 제기해 왔다.

하림 측에서는 보상금을 나눠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병아리가 애초에 하림의 재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란계 농가는 대부분 자율적으로 계란을 납품하는 반면, 국내 육계 농가의 94%는 특정 육가공 업체의 위탁을 받아 병아리를 기르고 납품하도록 계약이 맺어져 있다.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선진(하림계열)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구조를 ‘계열화’라고 표현한다. 자본과 설비를 갖춘 대규모 육가공업체가 시장을 개척하고 판단하며, 농가는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해 소득을 올리고 중간 유통단계를 줄여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스템이다.

농가와 계약 단가, 하림이 일방적 결정

이런 계열화 체제에서 하림은 자체 종계장에서 부화시키거나 외부 종계장에서 사온 병아리를 계약농가에 맡기고 사료와 의약품을 공급한다. 농가는 이 병아리를 약 30~35일 동안 키워 하림에 납품하고 위탁수수료를 받는다. 병아리는 원래 하림의 소유이니 일종의 인건비 개념인 것이다. 하림은 수수료를 줄 때 병아리 및 사료·의약품 가격을 제외하고 지급한다. 하림은 이를 ‘원자재 가격’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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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이 입수한 하림과 위탁농가 간 계약서에 따르면 정산은 납품 뒤 25일 이내에 하도록 돼 있다. 공정위의 표준계약서에 따라 병아리 단가는 농가협의회와 하림이 협의해 정산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하림은 ‘부칙’을 통해 하림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변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마련해 놓았다. 시중 시세 변동에 따라 ‘회사’의 서면통보로 변동할 수 있다는 부칙 제1조 2항의 구절이다. 하림은 지난 2014년 1월 전북의 한 계열농가가 원래 마리당 450원으로 계약돼 있던 병아리 단가를 살처분 이후 520원으로 변경했다. 농가에 지급되는 살처분 보상금을 이 기준에 따라 하림과 농가가 나눴다. 하림의 몫이 약 80%다. 김현권 의원실은 지난 12일 일방적 재정산으로 하림이 보상금을 타간 경우로 이 사례를 지목했다.

하림의 입장에서는 병아리가 원래 하림의 소유이기 때문에 농가와 재정산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로 보고 있다. 하림 관계자는 “병아리는 원자재로 당연히 개별농가가 구입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농가에서 병아리를 직접 사서 닭까지 생산하려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고 판로를 직접 개척해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한다. 계열화는 이 부담을 계열주체(하림)가 대신 지는 것으로, 닭의 가격 또한 시시때때로 변화되기 때문에 가격변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하림 측은 ‘불공정 계약’이 아니냐는 질문에 “농가에서도 이 방식이 유리하기 때문에 계열화를 선호하고 94%의 육계 농가가 계열화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림은 계열화사업을 통해 농가와의 상생발전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계약 사육농가(3회전 이상 육계 사육)의 연평균 소득을 1994년 2500만원에서 2000년 5000만원, 2010년 7400만원, 2015년 1억7100만원, 2016년 1억8100만원으로 7배 이상 증가시켰다고 밝혔다.

병아리 및 사료 단가를 제외하고 하림이 지급한 연간 수수료를 소득으로 계산했다. 문제는 이 수수료 역시 계약농가들을 ‘상대평가’해 지급한다. 대한양계협회는 상대평가식 수수료 지급이 농가 간 분열을 부추기고 계열업체에 더욱 종속시키며 부담을 감내하게 하는 제도라고 비판해 왔다. 김흥국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상대평가’에 관한 질문을 받자 “불량사료에 대한 불만이 높아 농가에서 원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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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책임 농가에 전가 불공정 계약”

반면 김현권 의원실은 개별 농가들이 선택권이 없는 상태에서 하림이 위험과 책임은 농가에 부담시키는 불공정 계약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현권 의원실 김성훈 비서관은 “하림은 병아리 및 사료값을 뺀 나머지를 농가소득이라고 말하지만, 농가는 인건비, 자재비, 설비투자 융자금을 추가로 부담한다”며 “현재 개별 육계 농가에는 계열화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농가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계열화를 선택했다는 설명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계열화 방식은 수직적 계열화와 수평적 계열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림은 이 두 가지 방식 중 유리한 부분만 취하고 부담은 농가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 의원실 측의 분석이다.(그래픽 참조)

현재 하림은 병아리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수직적 계열화 모델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AI 등 방역 및 살처분을 할 때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을 모두 하림 측이 지불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김흥국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병아리 판매계약을 통해 소유권이 이전된다는 점에서 수평적 계열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외상거래’의 특성과 위에서 언급한 하림이 일방적으로 가격 변동을 통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림과 농가를 수평적 관계로 보기 어렵다. 더욱이 수평적 계열화라면 병아리의 소유권은 개별 농가에 있다. 김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하림은 “(판매계약이 발생하니) 수평적 계열화”라고 주장하면서도 병아리의 소유권에 대해선 모순된 답을 했다. 하림 측은 10월 27일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는 “수직적 계열화가 맞다”고 대답했다. 김현권 의원실은 수직적 계열화라면 병아리 가격을 공제하지 말고 위탁수수료만 변동 없이 지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수평적 계열화라면 농가 보상금 정산행위 없이 보상금은 오로지 농가에 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의원실에 따르면 하림은 필요에 따라 수직적 혹은 수평적 계열화의 장점만 취하는 셈이다.

하림의 병아리 단가 보상을 통한 보상금 재분배 문제는 2014년부터 계속 제기되다가 이번 국감에서 크게 불거졌다. 전북의 한 계약농가가 2014년 1월 원래 마리당 420원으로 정산했던 병아리 정산단가를 800원으로 일방적으로 인상했다가 문제가 되자 520원으로 조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였다. 하림은 “사실관계가 완전히 다르다. 하림이 보상금을 허위로 타내기 위해 마치 일부러 800원짜리 계약을 한 것처럼 비춰졌는데, 계약농가를 관리하는 외주업체가 농가 보상금 산정을 앞두고 내민 가상의 계약서 예시를 농가에서 오해해 협회에 알리는 바람에 문제가 된 것이지, 오히려 하림은 병아리의 시중 가격이 577원이었지만 농민의 사정을 감안해 520원에 계약했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이 해당 양계장 주인과 통화한 결과 주인 ㄱ씨도 “하림 측의 말이 맞다. 단가 800원짜리 정산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림의 위탁을 받아 농가를 관리하는 외주업체의 실수로 보인다. 그러나 450원→800원→520원은 아니었지만 450원→520원의 단가 조정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하림이 일방적으로 가격 변동을 통보할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김현권 의원실에 따르면 하림 등 상위 3개 계열화 사업자의 시장점유률이 2009년 36.3%에서 2012년 40.1%, 2016년 55.7%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실 측은 “하림은 지난 10년간 닭·오리 계열사 지원자금의 40%, 500억원가량을 독차지하다시피 했고, 잡음도 불거지고 있으며, AI 등의 위험은 국민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며 “기형적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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