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출, 참치·인삼·라면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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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수출품목 중 1위… K-FOOD 대표 주자로

올 상반기 한국산 수산물 중 수출 2위는 참치다. 1위는 무엇일까? 김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참치는 부동의 1위였다. 하지만 김 수출이 올해도 급등하면서 상반기에 왕좌를 내줬다. 김은 식품 전체를 통틀어서도 담배(궐련)에 이어 수출 2위를 기록했다. 지금은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에서도 한국산 김스낵이 판매된다.

‘식품산업의 반도체’로 떠오르다

김을 도대체 얼마나 팔았기에 수산물 수출품목 중 1위가 됐을까. 올해 세계로 수출되는 김은 6000만속, 60억장쯤 된다. 이를 이으면 136만5000km가량이다. 지구가 4만6000km니까 지구 34바퀴를 돌 수 있는 길이다. 한국 김이 이룬 작은 기적이다.

김이 ‘식품산업의 반도체’로 떠오르고 있다. 빠른 수출성장세와 고부가가치 창출, 성장과 고용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반도체와 매우 닮았다. 또 하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삭풍에도 대중국 수출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다만 반도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걸출한 두 기업이 이룬 성과라면 김은 2800개 양식어가와 400여개
마른김 가공업체, 800여개 조미김 가공업체가 함께 이룬 기적이라는 것이 다르다.

지난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비어페스티벌에 한국산 ‘김스낵’이 출품됐다./해양수산부 제공

지난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비어페스티벌에 한국산 ‘김스낵’이 출품됐다./해양수산부 제공

한국의 김 수출실적은 10년 전인 2007년만 해도 보잘 것 없었다. 당시 수출액은 6000만 달러(한화 약 660억원). 오징어는 물론 라면, 소주, 김치보다도 덜 팔렸다. 식품 수출 순위 전체로는 10위에 겨우 턱걸이했다. 이랬던 김이 지난해에는 3억5000만 달러(한화 3850억원)를 수출했다. 한국 대표 수출품으로 알려진 인삼(1억3000만 달러)은 물론 라면(2억9000만 달러)도 뛰어넘는 실적이었다. 이 기간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21.8%나 됐다. 경이적이었다. 올해는 수출실적이 상반기까지 전년 대비 50%나 증가했다. 이대로라면 사상 처음으로 수출실적이 연간 5억 달러를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수출 대상지도 늘었다. 1995년 34개국에 수출되던 것이 지난해에는 97개국까지 증가했다. 향후 목표는 이미 섰다. 2024년 즈음에는 연간 김 수출을 10억 달러까지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궐련(지난해 수출 9억8000만 달러)의 아성에도 도전해볼 만하다. 최완현 해양수산부 수산정책관은 “김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하면 생산유발효과가 1조원에 달하고, 김 양식어가들의 연소득은 3억~4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대표 K-Food는 인삼이나 담배가 아닌 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징조는 좋다. 우선 한국의 김 경쟁력이 높다. 김은 전 세계에서 한·중·일 3곳에서 99%가 생산된다. 바다에서 생산하는 물김 기준을 보면 중국의 양이 가장 많다. 물김을 말리면 마른김이 된다. 마른 김 기준으로는 한국이 가장 많다. 전 세계 생산량의 50%를 차지한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250억장이 생산되는데 한국이 124억장을 생산한다. 이어 일본 83억장(33%), 중국 44억장(18%) 순이다. 중국의 물김은 주로 탕에 쓰인다. 한국의 매생잇국 같은 형태다. 한국의 김 생산량이 많은 것은 국토는 크지 않지만 남해안과 서해안이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김 양식 면적이 극대화됐다는 의미다.

수출용 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조미김과 마른김이다. 마른김 중에 고급마른김은 김밥용김(초밥용김)으로 쓰인다. 김밥용김은 조미김보다 좀 두껍고 비싸다. 김밥용김은 세계 시장에 초밥용으로 많이 나가는데, 일본이 꽉 쥐고 있었다. 일본 내수시장은 난공불락이었다. 한국은 조미김에 집중했다. 한국의 수출규모를 보면 조미김이 63%다. 조미김은 일본인과 중국인의 입맛을 잡는 데 성공했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이 명동이나 면세점에서 조미김을 한 꾸러미씩 쥐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은 초밥용김에 집중하고 있어 한국과 같은 조미김은 생산하지 않는다. 올해 한국 김은 초밥용 시장을 뚫었고, 그게 수출 폭증으로 이어졌다. 김덕술 한국김산업연합회장은 “지난해부터 한국김이 초밥용김 시장에 진출했다”며 “올해 중국의 작황이 좋지 못한 것도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김 수출, 참치·인삼·라면 제쳤다

세계 김 시장은 잠재력이 크다. 김의 국제교역량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19.9% 성장했다. 김은 식사용이 아니라 저칼로리 웰빙 스낵용으로 더 인기다. 2001년 김 스낵이 출시됐다. 태국 ‘타오케노이’사가 적극적으로 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김 스낵이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태국의 경우 김 스낵 시장은 규모는 2012년 기준 9300만 달러에 달한다. 매년 성장률이 20%에 육박한다. 태국이 동남아, 중국, 미국 등으로 수출하는 김 스낵 규모만 5000만 달러다. 태국은 물김이 생산되지 않아 한국과 중국 등에서 수입한 마른김을 쓴다. 무역분류상 스낵김은 조미김으로 분류된다. 서양에서는 조미김도 맥주와 함께 스낵처럼 먹는다.

연구소 설립과 기초연구 투자 시급

한국은 생산된 김의 60%는 내수용으로 소비하고, 40%는 수출한다. 가장 많이 수출하는 곳이 일본(22%)이고, 미국(20%), 중국(19%) 순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이다. 사드 파문에도 불구하고 수출량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중국이 김 수입을 가장 많이하는 국가로는 한국으로 전체 수입량의 52%가량 된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연평균 수입증가율이 78%에 달할 정도로 급속히 시장이 확대됐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수출용 김 가공을 위해서는 원재료(물김)를 수입해야 하는데 중국 내부에서도 아이들 간식용으로 김 스낵의 인기가 높기 때문에 사드의 영향이 적다”고 말했다.

한국산 김 판매가 늘어나면서 김을 부르는 명칭도 달라질 조짐이 보인다. 2010년대 초반까지 김은 일본식 명칭인 노리(NORI)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우리말인 ‘GIM(김)’으로 표기한 제품이 늘어나면서 ‘김’이라 부르는 바이어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한국 김 산업은 이제 갈림길에 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부가가치 김을 생산해 글로벌 식품 선도국으로 갈지, 아니면 단순 원료 공급국으로 남을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양식어가와 가공업체가 소규모라 김 산업은 아직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물김 생산량이 연간 40만~50만톤에서 정체되는 등 한계가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CJ, 청정원, 동원 등 대기업들이 잇달아 김 스낵을 개발해 시장에 뛰어드는 등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업계에서는 차제에 김 연구소를 만들어 기초연구 투자를 늘려줄 것을 제안한다. 식품 중 수출 2위, 수산물 중 수출 1위 품목이라면 대표선수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덕술 한국김산업연합회장은 “김 시장은 식품 다음으로 약과 화장품 산업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김 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려면 기초연구와 위생성분 등에 대한 전문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기관 신설에는 조심스럽다. 전남 목포에 수산과학원 산하 해조류연구센터가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는 것이 더 유용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 연구소를 신설할 경우 3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 공두표 해수부 수출가공진흥과장은 “김은 수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김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신품종을 보급하고 김맥(김스낵+맥주)데이 등의 행사를 통해 대외홍보를 강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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