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킬러’ 어찌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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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가전 등 전문매장 유통규제 거의 없어 골목상권 위협… 유통 대기업 간 규제 형평성도 야기

정부와 여당이 유통규제 강화를 통한 골목상권 보호를 정책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있는 가운데 유통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카테고리 킬러(전문매장)’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세상인 위협하는 ‘유통 공룡’ 다이소

‘카테고리 킬러’는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등과 달리 상품분야별로 전문매장을 특화해 상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으로 장난감, 화장품, 가전제품 등 특화된 매장을 체인 형태로 갖추고 상권을 공략하는 전략을 취한다.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과 달리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출점과 영업시간 규제 등을 받지 않는다.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등 국내 문구 관련 단체 3곳이 전국 459개 문구점을 대상으로 진행한 ‘다이소 영업점 확장과 문구업 운영실태 현황’ 조사 결과, 다이소 영향으로 매출이 하락했다고 답한 문구점은 92.8%에 달했다.

절반에 가까운 46.6%는 다이소 입점 후 매출 하락 때문에 매장을 계속 운영할지 고민이라고 답했다. 업종을 변경하거나 폐업하겠다는 답도 각각 4.4%와 5.2%였다.

올리브영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모습./올리브영 제공

올리브영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모습./올리브영 제공

다이소는 지난해 매출 1조3055억원으로 국내 기업형 슈퍼마켓 3위인 GS슈퍼마켓(1조4244억원)과 비슷한 규모지만, 전문매장으로 분류돼 출점 등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2010년 600개였던 매장 수는 올해 1200개를 돌파했다.

공정위가 최근 복합쇼핑몰과 아웃렛에 대해서도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영업시간 등의 규제를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다이소는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 의원은 “유통 공룡으로 급성장한 다이소의 공격적인 매장 확대로 영세상인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유통법의 대규모 매장 점포의 정의에 매출과 전체 매장 수를 포함해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전문 판매점인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의 판매망 확대도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화장품은 물론 과자와 음료 등 각종 생활용품을 팔며 주택가로 파고 들고 있지만 역시 규제할 법규가 없다. 올리브영과 왓슨스, 롭스 등 H&B 스토어는 현재 1000여개의 매장이 전국에서 영업 중이지만, 올해 안에 200개 이상의 매장이 추가로 영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1위인 올리브영은 지난해 790개 매장을 통해 1조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올리브영을 운영하는 CJ올리브네트웍스는 올해 안으로 매장 수를 최대 1000개까지 늘려놓을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128개 매장을 운영 중인 왓슨스는 올해 30여개 매장을, 롯데 롭스도 35개를 올해 안에 신규 출점할 계획이다.

여기에 이마트가 영국 최대 드럭스토어인 ‘부츠’를 신규 론칭하며 출점 경쟁을 벌일 태세다. 지난 5월 스타필드 하남에 국내 첫 부츠 매장을 연 이마트는 7월 명동 스토어 개장에 이어 하반기부터 점포 수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H&B 스토어 매장확대 마땅한 대책 없어

소상공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H&B 스토어들이 판매 상품군을 확대하고 신규점포를 계속 늘리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다”면서 “유통산업법의 적용 범위를 손보거나 적합업종 지정 확대 등을 통한 구제조치가 없으면 골목상권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카테고리 킬러’ 어찌할까나

공정거래위원회도 앞서 H&B스토어와 가전양판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까지 ‘카테고리 킬러’에 대한 본격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는 지난 6월 올리브영을 운영하는 CJ올리브네트웍스 본사를 점검한 데 이어, 7월에는 롯데하이마트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조사를 진행했다. 전자제품 전문판매점인 롯데하이마트는 지난해 매출액 3조9394억원으로 연매출 4조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때문에 공정위가 뷰티·헬스상품, 전자제품, 생활용품 등 특정 상품군을 전문으로 집중 판매하는 ‘카테고리 킬러’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는 것으로 전망했지만, 추가적인 조사 움직임이나 계획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전임 공정거래위원장이 중소 납품업체들과의 간담회에서 ‘카테고리 킬러’ 거래관행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후 골목상권 보호 의지를 수차례 공언한 만큼 “아무일 없었던 듯 지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도급 납품 거래관행 개선을 시작으로 골목상권 진입규제까지 현재 미비한 ‘카테고리 킬러’ 규제가 일시에 정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카테고리 킬러’는 골목상권 생존권뿐만 아니라 유통 대기업 간 규제 형평성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대형 할인점은 출점·영업시간 규제를 받는 반면, 이케아 등 전문매장을 표방한 해외 브랜드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유통업체 영업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던 특정 브랜드를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킬 것을 검토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상공인 및 전통시장의 육성과 보호를 위해 가구 등 대규모 전문점에 대한 영업규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형 유통업체 가운데 대형마트는 영업규제를 받고 있으며, 국회에 복합쇼핑몰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하지만 이케아 등 가구전문점은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아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까지 불거쳤다. 앞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지난 8월 “이케아는 왜 안 쉬느냐”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기부는 가구·전자제품·식자재 등 대규모 전문점이 골목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규제 필요성을 검토, 규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규제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유통규제를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크기나 형태, 업종을 떠나서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크면 규제할 수 있도록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골목상권 보호라는 취지에 맞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생소한 형태의 카테고리 킬러 같은 영업점에 대해서는 상권에 미치는 영향 연구도 부족하고 이에 따른 규제도 미비한 실정”이라면서 “새로운 점포 유형들에 대한 대응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준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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