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이렇게 답답한 적이 또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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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럽 원정이 더욱 큰 실망으로 다가온 것은 한국축구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사라졌다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믿어왔던 해외파에 대한 환상은 이번 유럽 원정을 통해 산산조각났다.

한국축구에 역대 최악의 위기가 찾아왔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던 유럽 원정 2연전에서 모두 참패를 당하고 돌아온 한국축구대표팀을 향한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따갑다. 월드컵 본선에서의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 한국축구의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팬들은 줄기차게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신태용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의 사퇴를 외치고 있다. 지금 한국축구는 마치 침몰 직전의 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반전이 필요했던 한국축구가 유럽 원정에서 이처럼 무참하게 참패를 당한 원인은 무엇일까.

10월 10일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의 모로코와의 평가전 중 신태용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 10일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의 모로코와의 평가전 중 신태용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준비과정 안일, 수비 무너져

이번 유럽 원정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것은 준비과정부터 안일했던 탓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힘겹게 통과한 뒤 조기 차출에 협조한 K리그를 배려해 전원 해외파로 이번 대표팀을 꾸렸다.

물론 이전에도 대표팀의 주축은 해외파였다. 그러나 실전감각이 살아있는 국내파가 빠지자 팀 밸런스가 완벽하게 무너졌다. 윤석영의 부상 이탈이 이를 증명한다. 포백을 선호하는 신 감독이지만, 전원 해외파로 꾸리다보니 여러 포지션에서 부족한 부분이 나왔다. 특히 양쪽 풀백 자원이 그랬다.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포백을 구사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윤석영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완전히 꼬였다.

신 감독은 이에 변형 스리백이라는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었다. 월드컵 본선을 대비해 수비가 단단한 스리백을 실험하려고 했지만 조직력부터 선수 운용 등등 많은 곳에서 허점만 노출했다. 모로코전에서 측면공격수인 이청용을 측면수비수로 출전시키는 모험수를 뒀지만 대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은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2경기에서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모두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답답한 경기였다는 것은 일단 접어두고, 신 감독이 말한 “지지 않는 축구”에 대입한다면 무실점 경기였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로 꼽을 만했다.

그런데 이번 유럽 원정을 통해 이런 기대도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러시아(2-4 패)와 모로코(1-3 패)를 상대로 모두 7골이나 내줬다. 그것도 러시아전에서 내준 2골은 자책골이었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수비에서 잇단 실수가 나온다는 것은 분명 우려스러운 일이다. 수비 조직력은 수준이 엇비슷한 멤버들끼리 오랜 기간 훈련을 반복하고 팀워크를 다져야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신 감독은 이번 유럽 원정 2연전에서 2경기 각각 다른 수비조합을 실험했다.

물론 실험을 통해 최적의 조합을 찾는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지금은 실험을 할 때가 아니다. 월드컵 개막까지 이제 8개월 조금 남았다. 그 기간 대표팀이 소집돼 같이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주전 수비진을 확정한 뒤 그 호흡을 극대화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대길 스포츠경향 해설위원은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수비 안정이다. 많은 활동량과 압박 플레이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담한 경쟁력, 신 감독만 책임인가

이번 유럽 원정이 더욱 큰 실망으로 다가온 것은 한국축구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사라졌다는 점 때문이다. 그동안 믿어왔던 해외파에 대한 환상은 이번 유럽 원정을 통해 산산조각났다.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기량과 몸상태가 국내파들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었다.

모로코는 한국전에 1군을 내보내지 않았다. 지난 7일 러시아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 가봉전을 치러 체력적으로 부담이 있었다. 이에 A매치 경험이 부족한 벤치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다. 한국을 상대한 모로코 선수 11명의 A매치 출전 경험은 고작 평균 5.7경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런 팀을 상대로도 한국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상대하는 팀들은 러시아나 모로코보다 더 강하면 강하지 약하지 않다. 지금 상황이라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도 3전 전패는 뻔하다. 당장 16일 발표될 예정인 FIFA 랭킹에서도 역대 최저치를 찍을 것이 확실시된다.

‘히딩크 논란’으로 많은 마음고생을 했던 신 감독에게 이번 유럽 원정이 준 타격은 크다. 신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신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우선 이번 유럽 원정에 뽑힌 대표팀이 정예라고 할 수 없으며, 어떤 경기력을 보였든 위기의 한국을 이끌고 월드컵 본선행을 일궈냈다는 점은 인정받아야 한다.·

따라서 대한축구협회는 신 감독 체제로 월드컵을 치르겠다는 입장을 확실하게 한 이상 신 감독에게 쏠리는 비판을 대신 받을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아울러 신 감독을 보좌할 코치를 하루 빨리 영입해야 한다. 신 감독의 약점 중 하나가 큰 대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월드컵 본선까지 남은 시간은 8개월 안팎이다. 현재 대한축구협회는 신 감독을 보좌할 외국인 코치진을 물색하고 있다.

신 감독도 이번 유럽 원정을 통해 느낀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신 감독은 모로코전이 끝난 뒤 “스코어, 내용 모두 졌다. 참패를 인정한다”며 “나부터 반성한다. 나 역시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벽한 실패로 끝난 스리백에 대해서는 “지금 스리백이 좋지 않았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해외파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뽑지 말아야 할 선수들이 많이 보였다”며 칼을 빼들었다.

<윤은용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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