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범 처벌 강화보다 ‘회복적 정의’를 세우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사법절차 과정에서 피해자 회복을 최우선… 가해자의 반성과 공동체 성찰 계기로

처벌 강화가 해법이 아니다. 처벌 아닌 다른 길을 찾자. 소년법 폐지 청원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르는 전후로 많은 지식인들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님께 어리고 힘없는 피해자 청소년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소년법’의 폐지를 공론화해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청원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소년법 폐지 청원 참여자 수는 꾸준히 증가됐다. 9월 29일 기준으로 12만2150명이 청원에 동참했다. 소년법을 청소년보호법으로 잘못 알고 올린 청원안 참여자 수(27만7710명)까지 합치면 참여 인원만 40만명에 가깝다.

처벌 강화해도 청소년 범죄 줄지 않아

소년법 폐지 요구가 계속되자 청와대가 답변을 내놨다. 청와대의 답은 ‘처벌 강화가 해법이 아니다’라는 말의 반복이었다. 9월 25일 등록된 ‘친절한 청와대’ 영상에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형벌을 아주 강화한다고 범죄가 주느냐? 그렇진 않습니다. 범죄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라며 “죄질이 낮다면 (…) 수강명령을 내리거나 보호관찰을 한다거나 여러 방식으로 이 친구들이 감옥에 안 가고도 교화가 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 모두는 통상 감옥에 보내는 것만 자꾸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소년법 폐지는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조 수석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2012년 정부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강력범죄가 줄어들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문제는 해법이다. ‘친절한 청와대’는 청소년 범죄 문제에 대해 “이게 하루 이틀 만에 생긴 일도 아니고,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일도 아니다”(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라고 말할 뿐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청원하신 국민들께서 이 대답을 보시더라도 굉장히 답답해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소년범에 대한 처벌 강화가 아니더라도 청소년 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주장하는 이들이다. 회복적 정의는 사법절차 과정 및 그 전후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최우선적으로 주목하자는 입장이다.

민간 차원에서 회복적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이재영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원장은 사법절차에서 사라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그동안 형사절차에서 피해자는 피해를 신고한 것으로 역할이 끝나고, 이후에는 국가와 가해자가 공방을 벌이는 식으로 진행된다. 사법절차에서 사라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회복적 정의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법안이 2005년 12월 제정된 범죄피해자보호법이다. 이 법의 제정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수사·재판·행형상의 인권 개선폭과 비교하여 범죄 피해자의 인권 개선은 여전히 부진한 실정”이라고 진단하며,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체계를 만드는 것을 법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법의 2조는 범죄 피해자가 피해상황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과 관련한 법적 절차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범죄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년법에도 피해자를 위한 조항이 신설됐다. 2007년 개정된 소년법에 피해자의 진술권이 명문화된 것이다. 소년부 심리는 비공개로 진행되며, 소년부 판사의 허가를 받은 이만 재판에 참석할 수 있다. 진술권이 명문화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피해자가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가해자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펼칠 기회가 막혀 있었던 셈이다.

회복적 정의 연구자인 김혁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소년 보호절차의 경우 일반 형사사건 절차에 비해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재판이 비공개이고, 판사가 허락하지 않으면 방청할 수도 없는 등 관여를 많이 못한다. 피해자들이 절차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이라며 “회복적 사법에서는 사법절차의 각 단계마다 피해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설명했다.

9월 25일 조국 민정수석(오른쪽), 김수현 사회수석이 소년법 폐지 청원안에 대해 답하고 있다.  / 청와대 유튜브 캡쳐

9월 25일 조국 민정수석(오른쪽), 김수현 사회수석이 소년법 폐지 청원안에 대해 답하고 있다. / 청와대 유튜브 캡쳐

보호관찰제도는 ‘반성’ 이끌어내지 못해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들의 반성과 재범 방지를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가해자가 변화하고 사회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들이 자발적으로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가해자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피해내용을 알지 못한 채 사법당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처벌을 받은 가해자는 쉽게 바뀌기 어렵다. 처벌이 끝난 후에도 다시 범죄에 손을 대거나 피해자에게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보호관찰 통계는 기존 사법 패러다임인 응보적 정의가 소년범들의 ‘반성’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보호관찰 통계에 의하면 소년범의 재범률은 매년 오르내리기는 하나, 2007년 9.1%에서 2016년 12.3%까지 꾸준히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재영 원장은 예시를 통해 회복적 정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휴대전화 가게를 털다가 잡힌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절도죄를 저질렀다’는 정도만 알 뿐, 피해자들의 피해는 알지 못한다. 절도로 인해 피해자는 경제적으로 파산했을 수도 있고, 한 가정이 파탄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행 사법절차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각을 듣기가 쉽지 않다”며 “현 상황에서는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벌을 받고 있다. 피해자들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해자들이 달라지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이 원장은 회복적 정의가 구현되는 과정이 피해자·가해자뿐만 아니라 주변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사건만 봐도 피해자가 먼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 뒤에도 여러 번 가해자의 보복폭행을 막을 기회는 있었다. 그런 기회를 지나친 사회의 책임에 대한 언급은 없고, ‘괴물’에 대한 대책만 말해온 게 엄벌주의였다. 엄벌주의가 과연 우리 공동체를 치유해 왔는지 냉정히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는 법·제도로는 배상명령제도를 들 수 있다. 배상명령제도는 형사소송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될 때 가해자(피고인)가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명령하는 제도다. 이재영 원장은 “가해자에 대한 응징보다는 피해자의 회복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상명령제도도 회복적 정의의 흐름에는 있지만, 가해자가 강제적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는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취지 못살린 학폭위, 분쟁의 장이 돼버려

배상명령제도에도 자체적인 한계가 있다. 폭행·횡령 등 배상액을 정하기 용이한 범죄는 배상명령제도의 대상이 되지만, 살인 등 심각한 범죄는 배상명령제도의 대상이 아니다. 활용도도 낮다. 2016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배상명령 신청건수는 매년 5800~6800건 내외로 큰 차이가 없다. 배상명령은 가해자의 유죄가 확정된 상황에서 내려지는 것임에도, 법원이 배상신청을 인용하는 비율도 매년 낮아져 2015년에는 29.3%를 기록했다.

배상명령보다 좀 더 회복적 정의의 이념에 가까운 제도는 2007년 도입된 소년법상 화해권고제도다. 소년부 판사가 필요성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의할 경우 화해절차가 시작된다. 화해 과정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직접 자신의 피해상태와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변상 등을 통해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킬 수 있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나 지난해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시범 실시한 회복적 생활교육 역시 회복적 정의의 이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 특히 회복적 생활교육은 갈등 당사자들이 한데 모여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고 깨진 공동체 관계를 회복시키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좋은교사모임에 따르면, 회복적 대화모임은 피해자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에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좋은교사모임이 회복적 대화모임을 진행한 교사와 학생 199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피해 학생의 72%가량은 상대와 관계가 동등해졌고,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고 답했다. 27% 정도의 피해 학생들은 가해자들과 같이 있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다고 답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학폭위의 경우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갈등을 치유한다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김혁 연구관은 “학폭위의 취지는 좋지만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학폭위가 징계를 위한 절차로만 쓰일 뿐 분쟁 해결 등 본래 취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봤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학교폭력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탁경국 변호사는 현행 학폭위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조건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는 제도상의 허점 때문에 학폭위가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키는 공간이 아니라 분쟁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탁 변호사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양쪽 학생이 티격태격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티격태격한 경우에도 학폭위를 거치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만 100% 잘못된 것처럼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학생부에 학교폭력 가해자로 기재되기 때문에 가해 학생이 억울해하며 피해 학생을 더 미워하는 경우도 있다”며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학생 간의 경미한 갈등에 대해서는 담임교사 선에서 화해시킬 수 있도록 학폭위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회복적 정의 전문가들은 ‘화해’는 회복적 정의의 수단이나 결과물일 뿐,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재영 원장은 ‘화해권고’라는 제도의 이름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회복적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다. 피해자가 화해를 원치 않으면 화해를 하지 않는 게 정의인데, 현재 제도는 마치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아서 제도가 생길 때부터 이 이름에 반대했다”며 “피해자들도 ‘화해권고’라는 이름만 보고 일단 반감을 갖게 된다. 화해를 하려면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혁 연구관은 화해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회복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일본에는 피해자가 원할 경우 피해자의 심정을 보호관찰관을 통해 가해자에게 전달하고, 가해자의 반응을 피해자에게 통지하는 제도가 있다. 정보 부족으로 인한 피해자의 소외를 줄이고 피해 회복을 위해서라도 검토해볼 만한 제도”라고 밝혔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