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에 소임 물려준 태릉선수촌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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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은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철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진천선수촌 개촌식에 참가한 전·현 국가대표 선수들은 진천선수촌의 뛰어난 시설과 환경에 깜짝 놀라면서도 철거 위기에 놓인 태릉선수촌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9월 27일은 한국 엘리트 체육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다. 51년간 땀을 흘렸던 태릉을 떠나 진천에서 새 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는 이날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에 자리한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비롯해 체육인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개촌식을 열고 한국 체육 100년의 새로운 출발을 공표했다.

9월 27일 공식 개촌한 진천선수촌의 웨이트트레이닝센터에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연합뉴스

9월 27일 공식 개촌한 진천선수촌의 웨이트트레이닝센터에서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연합뉴스

태릉 복원 계획으로 선수촌 철거 예정

모든 참석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가인 그룹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를 부르며 진천선수촌과 함께 시작될 대한민국 스포츠의 ‘희망’을 노래하고, 내년 2월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다짐했다.

이 총리는 “태릉선수촌이 한국 체육의 탄생과 성장의 요람이었다면 진천선수촌은 성숙과 선진화의 도량이 될 것”이라면서 “국민이 역대 올림픽의 감동과 환희를 기억하는 한 태릉선수촌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진천선수촌은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구심점이자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공존하는 소통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대한체육회가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상징물과 같았던 태릉선수촌을 떠나는 것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1966년 건립돼 반세기 넘게 한국 엘리트 체육을 선도한 태릉선수촌은 비좁고 낙후됐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체육계와 정부의 노력 끝에 2004년 12월 진천군에 새 선수촌 부지를 마련했고, 2009년 2월 착공에 들어가 8년 만인 지난 8월 완공됐다. 총공사비 5130억원이 투입됐고, 부지면적은 159만4870m²(48만2448평)로 태릉선수촌의 5배에 달한다.

문화재청이 태릉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신청하면서 부적합 시설을 철거한다는 내용의 원형복원 추진계획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한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태릉선수촌은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철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진천선수촌 개촌식에 참가한 전·현 국가대표 선수들은 진천선수촌의 뛰어난 시설과 환경에 깜짝 놀라면서도 철거 위기에 놓인 태릉선수촌에 아쉬움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진천에 소임 물려준 태릉선수촌 운명은

수영 유망주 이호준, 사격 간판 진종오, 펜싱 박상영 등은 “이렇게 훌륭한 시설을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해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김광선은 “태릉선수촌은 올림픽에서 116개의 금메달을 배출했다”고 강조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미정(용인대 교수)은 “대한민국 체육의 역사인 태릉선수촌이 코리아 스포츠의 혼이 살아있는 문화재로 보존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천선수촌이 반가운 것은 놀라운 규모와 화려한 시설 때문이기도 하다. 태릉선수촌에 비해 선수숙소는 3개동 358실에서 8개동 823실로, 수용인원은 12개 종목 450여명에서 35개 종목 1150명으로, 훈련시설은 12개에서 21개로 늘어나 세계 최대 종합 스포츠 훈련 시설로 거듭났다.

체육인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희망

농구·배구·아이스하키·컬링·빙상·레슬링·체조·역도·펜싱·볼링·핸드볼·배드민턴·탁구·스쿼시·세팍타크로·수영·테니스·사격 등 실내 훈련장에 육상장, 양궁장, 소프트볼·야구장, 클레이 사격장, 럭비장, 벨로드롬, 조정·카누 훈련장, 실외 테니스장, 크로스컨트리 코스 등을 고루 갖추었다. 비좁은 태릉에서 훈련시설이 부족해 외부에서 훈련을 하던 ‘촌외종목’ 사이클과 럭비, 스쿼시 종목 선수들도 선수촌 밥을 먹으며 제대로 훈련할 수 있게 됐다.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메디컬센터, 스포츠과학센터는 메달 사냥을 이어갈 태극전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선수들은 마치 병원에 온 것처럼 운동치료와 수치료, 열전기치료 등을 받을 수 있다. 선수들의 몸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이은희 트레이너는 “치료와 재활을 위해 최첨단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부상 선수들에게는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고, 부상 예방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진천선수촌이 개촌하면서 태릉선수촌에서 종목별로 본격적인 이전이 시작된다. 10월 중순부터 배드민턴, 볼링, 태권도, 체조 등 16개 종목 장비들이 옮겨진다.

대한체육회는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정식 이사 개시일을 전국체전 개막일인 10월 20일로 늦췄고, 11월 30일까지 대부분 종목 시설의 진천선수촌 이전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태릉선수촌에는 내년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 선수 일부만 태릉 빙상장에 남아 훈련하게 된다.

1966년 국가대표 선수들의 합숙 훈련시설로 탄생한 태릉선수촌은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으로 소임을 넘기고 문을 닫는다. 태릉선수촌은 존폐 위기에 섰다. 대한체육회는 태릉선수촌의 핵심 시설을 문화재 형식으로 보전하고, 기존 건물을 한국 체육 역사관이나 박물관 등의 용도로 남기고자 문화재청과 협의하고 있다. ‘태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선수촌’이듯 태릉선수촌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역사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며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당시 향후 태릉선수촌을 완전히 철거하고 문화재의 가치를 온전히 살리겠다고 약속을 했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체육인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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