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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농촌의 먹거리연대 불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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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파동 한 달, ‘친환경 인증’을 둘러싼 신뢰의 길 찾아야

9월 20일 대형마트 계란 매대 앞. 식료품을 가득 담은 카트가 멈춰 섰다. 카트를 미는 이들은 잰걸음을 치지 않고 꼼꼼하게 살핀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하모씨(41)는 “식약처 발표를 보니 어른들은 괜찮은 것 같지만, 5살 아이 때문에 걱정된다. 품번을 확인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구입한다”고 말했다. 이마트 경기 의정부점에서 만난 조혜영씨(35)는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08번 계란은 아예 구입하지 않는다. 과일이나 채소도 가급적 유기농으로 산다”고 말했다. 껍데기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의 정확한 품번은 ‘08계림’으로 시작하지만 소비자들이 전부 외우기는 어렵다. 서울 구로구 주민 길모씨(56)는 “나는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직접 농사 짓지 않는 한 안전이란 온전히 확인할 수 없고 늘 먹어왔던 것인데, 새삼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이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의 채소매장을찾아 장보기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린이들이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의 채소매장을찾아 장보기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달 전보다 32% 떨어진 계란값

같은 날 충남 부여시. 신지연씨(42)는 가지를 수확하고 참깨를 널어 말렸다. 신씨가 재배한 가지는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자보다 길이가 짧고 오동통하다. 토종종자라서 다르다. 모양이 특이하고 예쁘다고 칭찬받으면 으쓱하다. 참깨는 이웃들이 흉작이라고 아우성이다. 7월 꽃 피울 시기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농업 3년차인 신씨는 감이 잘 안 온다. 하지만 이웃들의 무거운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많이 위축돼 있어요.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친환경 농산물과 농민 전반에 대한 불신이 심해져서…. 가격 폭락도 걱정이죠. 정부에서 가격안정 대책은 있어도 가격 폭락 대책은 없잖아요.”

살충제 계란 파동 한 달, 추석을 보름 앞두고 도시와 농촌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풍요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먹거리와 관련한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과 긴장감이 팽팽하다. 정부의 대책이 잘못됐기 때문일까.

정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부 농장의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자마자 나흘 동안 전국 1239개 농장의 계란을 전수조사해 49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난각코드 표시 규정을 강화하고 위·변조에 대한 처벌을 엄격히 할 방침을 내놓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친환경 인증 농산품의 잔류농약 검사기준을 강화하고, 농가가 3회 연속 같은 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대형 계란 집하장(GP센터)을 설치해 상시적으로 계란의 품질을 검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불안과 불신은 사그러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농산물유통정보센터의 자료를 보면 9월 22일 계란의 평균 소매가격은 1판(30알)당 5481원으로, 한 달 전보다 32% 떨어진 상태에서 오르지 않고 있다. 평년 도매가격(5716원)보다 낮다.

불신은 확산되고 있다. 계란뿐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품으로 적용된다. 도시는 농촌에서 제대로 된 먹거리가 생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농촌은 도시가 안전하고 품질 좋은 먹거리에 제 가격을 지불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봉화 아이쿱생협 관악지점 이사장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 멜라민 분유 파동 등 ‘식품사고’가 있을 때마다 급작스럽게 소비자 조합원 수가 늘어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믿지 못해 가입하는 회원 수가 대폭 늘어나는 것은 좋은 신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이쿱생협의 계란에서는 이번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한국 농업에 대한 전반적 불신으로 번지는 이유는 친환경 농장에서 살충제 계란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기존의 식품사고와 다른 점이다. 정부는 이번 파동의 핵심으로 ‘인증’의 문제를 지목했다. 정부의 살충제 계란 관련 대응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인 8월 19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농식품부를 방문해 “국민의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을 용서해선 안 된다는 확고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정부를 속인다거나 하는 농가에 대해 형사고발을 포함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농산물품질관리원 퇴직자들이 친환경 인증기관에 재취업하는 ‘농피아’ 문제를 언급했다. ‘정부를 속이는 농가’와 ‘부도덕한 농가와 결탁한 전직 관료’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농식품부와 식약처가 쏟아낸 대책들이 농가 규제인 것은 자명한 결과였다.

지난 9월 19일 강원 춘천 지역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를 뚫고 내린 우박을 농민이 들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지난 9월 19일 강원 춘천 지역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를 뚫고 내린 우박을 농민이 들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농가에 대한 불신 부추기는 정부

정부의 이러한 대응이 도농갈등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병선 건국대 경제경영학부 교수는 이에 대해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는 부실한 인증제도로 인해 발생했는데, 이 인증제도는 정부가 주도해 왔다”며 “생산농가를 범죄집단화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농민에 대한 불신을 부추겨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라앉힌 셈이다.

이 지적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친환경 농업이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국내에서 친환경 농업(유기농 및 무농약)에 종사한다고 인증받은 농가 수는 1400호였다. 2012년 1만7000호까지 성장했다. 연 평균 37.9%씩 성장한 셈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 ‘웰빙열풍’ 등 사회적 환경변화의 영향도 있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이뤄낸 성과다.

경남 거창에서 밭농사에 종사하는 정일성씨(53)는 친환경 농가의 수가 극소수일 때부터 도전했던 사람이었다. 정씨는 28세에 비닐하우스에서 농약을 살포하다 호흡곤란 증세로 수술을 받았다. 기도에 혹이 있었다. 자연과 건강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건강조차 지키지 못하자 회의감이 들었다. 누군가 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잘 짓는다는 말을 들으면 수소문해 노하우를 배웠다. 전 세계적으로 유기농 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종자개량과 농약, 화학비료 과다 투입을 통한 ‘식량증산혁명’을 이뤘지만 이것이 후속세대나 생태계를 위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으로 개별 농가들이 실험을 시도하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뜻을 공유하는 도시 소비자들이 후원하면서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증산 위주의 정부 농정에도 변화를 주게 된 것이다.

실험에는 비용이 든다. 정씨는 비닐하우스 8000평, 노지 1만2000평에서 가족 5명이서 당근, 고구마, 상추 등을 번갈아가며 짓는다. 농약을 쓰지 않으니 제초 등에도 사람의 힘이 많이 드는 데다, 때때로 병충해로 작물 전체가 전멸하는 경우도 있다. 가까스로 한 해 농사에 성공해도 대구 매천시장 등 도매상에 내놓으면 일반 농산물과 가격경쟁을 해야 한다. 2003년 아이쿱생협 생산자조합원으로 가입하고 나서야 판로가 안정됐다. 아이쿱생협의 생산자조합원이 되려면 생협 지역모임의 다른 생산자들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하고 3년간의 준회원 기간 동안 교육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

우박 피해를 본 경북 영주, 봉화, 상주 등의 농민들이 7월 24일 청와대 앞에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했다. 집회 참가 농민들이 재해대책법 개정을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영민 기자

우박 피해를 본 경북 영주, 봉화, 상주 등의 농민들이 7월 24일 청와대 앞에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했다. 집회 참가 농민들이 재해대책법 개정을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영민 기자

40%가량 줄어든 친환경인증농가

생협의 장점은 흔히 도농 간 ‘직거래’를 통한 유통마진 절감을 생각하지만, 농민 입장에서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 안정’이다. “농산물은 작황에 따라 원래 가격이 요동칩니다. 생협에서는 어떤 조건이든 처음에 계약한 가격에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흉작이 들어 출하량을 못 채우면 그만큼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지난해 중국에서 생강이 많이 수입돼 생강의 산지가가 급락했다. 1kg당 종자 가격만 1만원이다. 1kg을 심어 보통 5~6kg을 수확할 수 있다. 생강의 1kg당 평년 가격은 6000원 선이었는데 지난해에는 2000원대까지 떨어졌다. 경북 안동 등지에서는 농민시위도 벌어졌다. 협동조합에 가입하면 이런 위기에서 비교적 안전한 것이다. 반대로 가격이 치솟아도 시장에 더 비싼 가격으로 파는 기회를 포기한다. 소비자조합원 역시 농산물 전체 시장에서 가격이 급락해도 더 싼 가격을 포기하고 원래의 계약가격으로 구입한다. 농민들의 실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이봉화 관악 아이쿱생협 이사장은 “소비자조합원들을 조직화시키고, 생산농장에 견학하는 것도 생협활동에서 중요한 활동”이라고 말했다. 이런 구조에서 ‘불신’은 자리잡기 어렵다.

정부의 정책은 친환경 농업의 양적 성장을 가져왔다. 1997년 친환경농산물육성법이 제정됐다. 정부가 FTA 협정 등을 대비해 친환경 농산물을 차세대 농정의 핵심으로 지정했다. 법에 따라 농식품부는 친환경농업 육성계획 5개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친환경 농가의 수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경지면적, 출하량 등을 늘리는 것을 계획으로 세웠다. 인증제도를 만들어 품질관리를 시도했다. 문제는 인증제도가 기존 관행농을 친환경 농가로 유도하는 장치로 인식됐다는 점이다.

지난 8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행한 <2017 국내외 친환경 농산물 생산실태 및 시장 전망>은 친환경 인증 농가 실적이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농식품부가 지난해 3월 제출한 <제4차 친환경농업 5개년 계획>에서도 “단기간 성장 중심의 접근으로 인해 최근 면적이 감소되고 있고, 소비자 신뢰, 농가 판로 문제, 한국형 친환경농법 정립 노력의 보완이 필요하다”면서도 친환경 전환 농가에 보조금을 줘 전환을 유도하는 계획을 잡고 있다. ‘농피아’는 부수적인 문제이며, 애초에 ‘인증농가 수’를 ‘실적’으로 보는 정부의 관점이 근본적인 문제다.

국내 친환경 유기농의 양적 전성기는 2012~2013년이다. 이후로 하락한다. 2016년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는 6만1900호 수준이다. 전성기 때보다 40%가량 줄어들었다. 2012년 무렵이 인증기준을 맞추지 못하거나 속인 농가들이 속속 적발되던 시기였다. 정씨는 “정부가 나선 것의 장점도 있다. 소비자들에게 친환경 농업이란 것이 널리 알려졌고, 대기업 마트도 매장을 마련하는 등 판로가 늘었다. 그러나 자격조건이 되지 않는 농가에까지 인증을 남발해 사고가 터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일부 농가의 문제가 친환경 농업 전체의 문제가 돼 소비자들의 불신을 사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규정이 강화되고, 규정이 비현실적이라 또 위반 사례가 나오고, 소비자들이 더 불신하고, 다시 규정이 강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계란 사태에서도 나타나는 사이클이다.

정부는 인증제도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었지만 핵심은 정부가 파악한 ‘친환경 유기비료’와 ‘유기사료’를 쓰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뒤늦게 친환경 농업에 관심을 가진 농업인들에게 ‘친환경 농업이란 정부가 허용한 혹은 금지하지 않은 비료와 약품을 사용하는 농업’이라는 오해를 낳았다. 농가에서 ‘규제만 지키면 된다’는 수동적 생각이나 ‘검사할 때만 피하면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원인이다. 달걀에서 검출돼 문제가 된 비펜트린 성분도 본래 허용된 것이었다. 정부는 지난 8월 31일 일선 농가에 공문을 보내 ‘유기합성농약 및 유기합성성분을 지닌 동물용 의약품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알렸다. 기존에는 ‘유기합성농약’만 금지하고 있었다. 정부가 허용했던 것이 반환경적인 것으로 판명났을 때 책임은 농가만 진다. 정작 닭진드기 해결책에 대해서는 현지 농가에 전달된 바가 없다. 국립축산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살충제의 근본 원인인) 닭진드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곤충학자들을 투입해서 본격적으로 닭진드기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이 전달되지 않으며 도시 소비자들의 불신은 커지는 구조다.

[특집]도시와 농촌의 먹거리연대 불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친환경 농업의 근본인 농업인의 자율성이 무시된다는 점도 문제다. 충남 홍성에서 농업법인 성우를 운영하는 이도헌 대표는 지역에서 방목돼지 사업을 벌이기 위해 지역 도축장 건립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115kg으로 규격화된 기준을 벗어나 다양한 돼지를 길러보고, 생산부터 도축과 가공까지 지역에서 일원화해 다양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에서다. 규격화된 친환경 농업 기준에서 ‘친환경’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도축장을 개설했다가는 ‘위법’까지 된다. 부여의 농업인 신지연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주로 직거래를 해오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출하를 위해 인증을 받기 시작했다. 신씨는 “인증받는데 개별 농가의 돈이 든다. 멜론 농사를 짓기 위해 하우스를 짓고 시설을 투자하는 데 2동에 1800만원이 들었다. 정부의 기준과 설비대로 하면 2배의 비용이 든다”며 “인증제도가 주변 설비자재업자의 배를 불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의 정책대로 3년에 한 번씩 인증기관을 바꾸면 농민은 계속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 인증기관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 일부 지역의 경우 4년에 한 번 ‘인증 검사원’을 바꾸도록 돼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또 터질 수 있다

경기의 한 양계농가는 이번 살충제 파동을 계기로 친환경 농가 인증을 포기하기로 했다. 판매비용에 비해 친환경 사육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값싼 친환경’이 불가능한 이유다. 문제는 포기도 마음대로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농장주는 “친환경 인증을 포기한다고 하니 농식품부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한 번 인증을 포기하면 재인증되기 쉽지 않다’며 설득하려 했다”고 전했다. 농식품부에서 인증 농가 수는 여전히 줄어들면 안 되는 실적인 셈이다. 유병덕 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장은 “정부가 문제를 제공한 원인을 다시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와 농촌의 먹거리 연대에는 조건이 있다. 농업인의 실험과 도시 소비자의 투자가 필요하며 정부가 실험의 비용과 투자금을 분담한다. 친환경 급식이 대표적이다. 친환경농산물의 16.7%가 학교 급식에 소비된다. 정부가 안정적인 판로를 만들어준 셈이다. 그러나 현재의 흐름에서는 도·농·정 간의 연대를 기대할 수 없다. ‘인증’을 매개로 도시 소비자의 불신과 농업인의 수동화, 정부의 규제가 돌고 돈다. 살충제 계란 사태는 반복될 준비를 하고 있다.

<박은하 기자·정상빈 인턴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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