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 ‘명예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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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1500명 위촉… 마을과 기업 상호 교류와 소속감 우선시

농협중앙회는 9월 21일 기준으로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 운동으로 위촉한 명예이장의 수가 1500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15일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강원도 원주시 궁촌2리 명예이장에 위촉됐다. 당시 농협은 올해 말까지 명예이장 1500명을 만든다는 계획을 밝혔고, 목표를 조기에 달성한 셈이다.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 운동의 기원은 1사1촌(一社一村) 운동이다. 2003년 12월 서울 양재동 농업유통광장에서 열린 농촌사랑 공동선포식에서 1사1촌 운동 추진이 결의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우리 농산물을 먹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살리는 길이다. 농민 여러분께서는 농촌과 도시를 한마음으로 묶는 사랑의 농사를 지어달라”며 1사1촌 운동에 대해 “사랑과 믿음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2004년 6월부터 농협과 경제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1사1촌 자매결연 발대식이 열리기도 했다.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 ‘명예이장’

경남 고성의 장기마을이 성공사례

1사1촌 운동도 많은 성과를 냈다. 2014년 농협이 밝힌 바에 의하면, 10년간 1사1촌 운동을 통해 1만448쌍의 기업·단체와 농촌마을이 자매결연을 맺었다. 삼성중공업과 같은 대기업은 수십 개의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하지만 도시와 농촌의 지속적 교류라는 본래 취지가 명확히 실현되지는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1사1촌 운동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농촌에 대한 봉사나 퍼주기 등 농촌 지원사업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시작된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 운동’은 과거 1사1촌 운동과 달라진 점이 있다. 농촌마을과 결연하려는 회사·단체의 대표자나 임원이 직접 명예이장이 되는 것이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당시 김건영 NH농협은행 강원영업본부장이 강원도 철원군 양지리 철새마을에서 처음으로 명예이장에 위촉됐다. 이후 매달 100명가량이 새롭게 명예이장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농협 임원이나 지부장, 조합장을 중심으로 명예이장 위촉이 이뤄졌기 때문에 지금도 1504명의 명예이장 중 665명이 농협 관련 인물들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기업으로, 410명의 기업 대표·임원들이 명예이장에 위촉됐다.

농협중앙회 측은 “기존의 1사1촌 자매결연이 일손 돕기와 농산물 판로 지원에 중점을 뒀다면,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는 마을과 기업, 단체의 상호 교류와 소속감을 우선시한다”며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명예이장으로 위촉하고 소속 임직원을 명예주민으로 참여시키는 방식은 기존 1사1촌 자매결연보다 책임감과 실행력을 높인다. 도농협동운동을 진일보시켰다고 대내외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은 명예이장이 “성공한 기업인의 공공적 봉사정신과 사회공헌”을 구현할 수 있는 자리라고 설명한다. 명예이장은 이름만 걸어놓는 자리가 아니라 마을과 회사, 지역주민과 행정, 그리고 전문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명예이장이 도시에 있을 때에도 ‘이장’으로서 할 일은 많다. 회사 내부 통신망을 이용하거나 직거래 장터를 개설해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사내 구성원들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기업 내 매점에서 마을에서 만든 농산물 등을 팔 수도 있고, 원하는 사내 구성원들에게 마을에서 재배한 채소를 정기적으로 받아보게 할 수도 있다. 명예주민 역시 명예이장처럼 마을농가 1호와 1대 1 결연을 통해 해당 농가와 지속적인 교류활동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게 농협의 설명이다.

농협은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 운동 추진본부’를 통해 마을 만들기 운동에 참여하려는 기업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건설회사는 농촌의 재래식 화장실을 고쳐주는 등 여러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더 잘할 수 있다. 유통회사는 마을 농산물을 파는 유통창구 역할을 더 잘할 수 있고, 약국조차 없는 마을에는 의료인들이 명예이장이나 명예주민으로 나설 수도 있다.

농협은 기업과 농촌마을이 잘 연결된 성공사례 중 하나로 경남 고성군에 위치한 장기마을을 들었다. 두산중공업은 1사1촌이 한창이던 2011년 장기마을을 비롯한 경남의 농촌마을 7곳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지난해 7월에는 이홍철 두산중공업 보일러BG 상무가 장기마을의 명예이장으로 위촉됐다. 지난 6월에도 이홍철 명예이장 등 두산중공업 직원 40여명이 장기마을을 방문했다. 이들은 노후주택을 수리하고, 주민들과 함께 마을 골목길을 새로 칠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다. 김정식 장기마을 이장은 농협에 “(명예주민들과) 마을의 여러 곳을 새로 칠하면서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마을에서 경로잔치 등을 개최할 때마다 명예이장과 주민들을 초청해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마련하겠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NH농협은행 직원들이 자매결연을 맺은 지영마을을 찾아 마을 일을 돕고 있다. / NH농협은행 보도자료

지난 6월 NH농협은행 직원들이 자매결연을 맺은 지영마을을 찾아 마을 일을 돕고 있다. / NH농협은행 보도자료

충북 음성군 삼성면의 대실비타민팜스테이마을도 농협중앙회가 꼽는 모범사례다.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 운동이 시작된 직후인 2016년 5월 12일, 삼성SDI의 송재국 상무가 이 마을의 명예이장으로 위촉됐다. 지난 5월에도 삼성SDI 직원 40여명이 마을을 찾아 직접 맨발로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하는 등 농촌의 현실을 체험하고 돌아갔다. 삼성SDI의 사회공헌 담당자이자 대실마을의 명예주민인 오정민 과장은 마을 만들기 운동을 통해 도시 사람들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한다. 오 과장은 “도시생활에 지친 연구원들이 자연을 벗삼아 쉬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치유도 받는다”며 “마을사람과 막걸리를 먹는 시간도 즐겁다”고 말했다.

회사·단체 대표자나 문화예술인 등 다양

농협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4044번의 도농 교류활동이 있었다. 일손돕기 활동이 1040회, 기업과 마을의 직거래가 599회, 물품 기증이 574번 등으로 나타났다.

한편, 농협은 “기업 대표나 임원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명예이장이 될 수 있다”며 “기업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문화·예술분야 등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명예이장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충남 홍성군 홍북면 지동마을은 명예이장으로 이원국 발레단의 이원국 단장과 김유진 단원을 위촉했다. 마을 인근의 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위촉식에서 이원국 발레단은 마을 주민들에게 발레 공연을 선보였다.

셰프 이장도 있다. 여러 방송 출연으로 ‘스타 셰프’로 불리는 신효섭씨는 지난 8월 29일 충남 서산시 해미면 별마을의 명예 셰프이장으로 위촉됐다. 이날 마을의 주부들과 함께 식문화 체험교실을 가진 신씨는 “제 고향인 서산에 좋은 일이 생겨서 감사하다”는 뜻을 인스타그램에 남기기도 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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