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MBC 몰락, 그 시작은 MB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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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근행 노조집행부가 출범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검찰이었다.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PD와 작가를 체포하고자, 방송관련 자료를 압수하기 위해 영장을 들고 MBC에 들이닥쳤다.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얼굴이 크게 모자이크 되어 있다. 영화의 말미, 최승호 감독은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가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혹자는 왜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냐고 묻고, 또 혹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잘못을 했냐고 묻는다. 왜 그가 공범자들 피라미드 구조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드디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지난 9월 12일 국정원 개혁위가 발표한 ‘문화·연예계 정부 비판세력 퇴출 관련 조사결과’에 따르면 MB 정부는 MBC와 KBS를 장악하기 위해 청와대와 국정원이 중심이 되어 조직적으로, 구체적으로 움직였다. 국정원의 발표는 MB 정부가 MBC를 일종의 ‘반정부단체’로 보고 불순분자를 박멸하고, DNA 자체를 바꾸려 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MB는 정보기관까지 동원해 MBC를 장악하려 했다. 길고 치열한 싸움 끝에 MBC는 MB의 방송이 되었다.

2009년 12월 10일, MBC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왼쪽)이 MBC 임원진의 재신임을 묻는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항의방문한 이근행 당시 노조위원장과 어색한 악수를 하고 있다./남호진 기자

2009년 12월 10일, MBC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왼쪽)이 MBC 임원진의 재신임을 묻는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항의방문한 이근행 당시 노조위원장과 어색한 악수를 하고 있다./남호진 기자

엄기영 사장, MBC에서 쫓겨나다

2008년 MB가 대통령으로 취임할 당시 MBC의 사장은 앵커로 이름이 높았던 엄기영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편 방송으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나고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MB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음해하기 시작했고 엄기영 사장을 압박했다. 친정부 인사가 장악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방송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을 내렸는데, 그 명령을 제작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기영 사장은 곤혹스러웠지만 사과방송을 구성원들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 강행했다. 엄기영 사장은 10월에는 손석희를 <100분 토론> MC 자리에서 내려오게 했고, 새로운 <100분 토론> 진행자가 ‘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4대강 수질은 로봇물고기가 지킨다’는 코미디가 만들어졌다.

2009년에도 가까스로 엄기영 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엄 사장은 정권의 미움을 받던 신경민 앵커를 기자들의 제작거부에도 불구하고 4월에 쫓아냈다. 그 해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고 정권은 또다시 긴장했다. 은 노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편을 통해 광장을 봉쇄하고 집회에서 무차별적으로 시민을 연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그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현 MBC 기획본부장이고 각종 부당노동행위의 당사자가 된 당시 최기화 정책기획팀장은 방송이 나가고 있는 도중에 집에서 뛰어나와 직접 PD수첩 팀장을 찾아 강하게 항의했다. 항의의 내용은 ‘위에서 난리가 났다. 이런 프로그램이 나가면 엄기영 사장을 지키기 힘들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프로그램을 모니터하던 그 ‘위’가 어디인지 이제야 밝혀진 셈이다.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인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그해 8월 임기를 시작했고 MBC에 대한 간섭을 노골화했다. 결국 엄 사장에게 임원 인사권을 빼앗는 굴욕을 주었고, 엄 사장은 사퇴했다. 2010년 2월 엄 사장은 이근행 노조위원장 등 조합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MBC 파이팅”을 외치고 떠났다. 유명 언론인으로서 부당한 권력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주)엣나인필름

영화 「공범자들」의 포스터./(주)엣나인필름

이근행 위원장과 노동조합의 투쟁

이근행 PD는 2009년부터 2년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이하 MBC 노동조합)의 노조위원장이었다. 2009년은 MB 정부가 MBC에 대해 ‘복수’를 할 것이 자명한 해였다. 노동조합 간부를 구하지 못해 ‘사다리를 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고난의 해였는데, 이근행 PD는 수난이 예정된 노조위원장의 길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이근행 PD가 MBC 노동조합의 위원장이 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했다.

2009년 이근행 노조집행부가 출범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검찰이었다. PD수첩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그들은 PD와 작가를 체포하고자, 방송 관련 자료를 압수하기 위해 영장을 들고 MBC에 들이닥쳤다. 이근행 집행부는 온몸으로 막았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빈 손으로 돌아갔다. PD들은 체포당하지 않기 위해 집에 가지 않고 조합 사무실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모든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밤을 새며 혹시 있을지 모를 압수수색에 대비했다. 흡사 MBC는 남한산성 같았다.

국정원의 발표를 보면 바로 이즈음인 2009년 7월 국정원은 TF팀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노제 사회를 본 김제동은 1급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무려 연예인을 사찰하는 MB 정부였다. 소름 끼치도록 냉혈한 권력 앞에서 MBC 노동조합은 싸움을 준비해야 했다.

엄기영 사장이 쫓겨난 2010년 본격적으로 MBC 장악의 시나리오가 진행되었다.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은 역시 고대 출신이자 MB와 막역한 사이였던 김재철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노동조합은 김재철 사장 체제가 들어서는 것을 막았다. 출근저지투쟁, 위원장의 12일 단식, 전국 MBC의 39일 전면파업. 파업이 끝나자 이근행 위원장은 모든 투쟁에 책임을 지고 해고되었다. 조합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조합원들의 투쟁 열기는 식지 않았지만 김재철 사장은 4대강 사업의 의혹을 파헤친 을 불방조치하는 등 검은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와 국정원 로드맵을 따라 김재철 사장은 2011년부터 더욱 노골적으로 MBC 장악을 시도했다. 2011년 3월 PD수첩에서 최승호 PD가 쫓겨나간 것이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PD들을 드라마 세트장 등에 강제 배치하는 만행도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 라디오에서는 김미화, 윤도현, 김어준이 줄줄이 하차했다. 결과는 참담했지만 시사교양PD, 라디오PD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피케팅을 하고, 국·부장의 면전에서 침묵시위를 하면서 저항의 불을 지펴나갔다. 큰 불로 번질 것이 두려웠던 김재철 사장은 노동조합과 2011년 9월 ‘꽤 괜찮은 공정방송 조항’이 담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 소중한 단체협약은 김재철 사장, 그 배후의 정권과 2년 동안 처절하게 싸워서 얻은 결실이었다.

이런 와중에 2012년 2개의 선거(국회의원·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김장겸 정치부장은 ‘MB 내곡동 사저 의혹’을 은폐하는 등 편파방송을 계속했고, 결국 170일 파업으로 이어졌다. 그 파업은 실패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재철과 맺은 단체협약으로 파업의 정당성은 법원으로부터 계속 인정받았고, “공정방송은 언론인의 근로조건”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국정원 TF까지 동원된 MB 정부의 MBC 장악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MB의 몰락은 MBC를 비롯한 언론과 문화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했던 그 불법적인 시도가 백일하에 밝혀지면서 시작되었다. <공범자들>의 결말이 궁금하다.

<김재영 MBC PD(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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