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시에서만 물폭탄이 터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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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된 도로 비가 스며들지 못해… 대도시, 거대한 물그릇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는 울퉁불퉁한 박석이 깔려 있다. 조선왕조 대신들이 도열하던 자리인 이곳은 웬만한 큰 비가 와도 바닥이 잠기거나 구덩이가 파이지 않는다. 얇고 넓적하게 뜬 돌을 다소간의 거리를 두고 깔아뒀기 때문이다. 박석 사이에 깔린 흙으로 빗물이 스며들고, 울퉁불퉁한 돌 표면과 가장자리가 저항이 되어 빗물이 가파르게 흐르지 않게 막는다. 현대식으로 보면 투수성(透水性) 블록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건물이나 포장된 도로 등은 비가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 면적을 늘린다. 빗물은 땅에 스며들지 못하면 쉽게 불어나 침수피해를 늘릴 수 있다. 9월 11일 부산 일대를 덮친 폭우로 도심 곳곳이 침수피해를 입은 원인 중의 하나도 도시지역의 불투수면이 늘어난 데 있다. 지난달에는 충남 천안과 아산의 도심 일대가, 7월에는 인천과 충북 청주 등지에서 대규모 침수피해를 입은 것도 도시를 뒤덮은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포장이 빗물이 자연스레 스며들 공간을 덮어버린 탓이다.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인 폭우가 쏟아지면 도시를 중심으로 피해가 집중되는 이와 같은 현상은 한반도를 둘러싼 기후변화에 따른 결과다. 서울로만 범위를 한정해도 시간당 3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날이 1970년대에는 연평균 12일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34일로 늘었다. 전국 단위로 보면 2000년 이후 시간당 100㎜를 넘는 폭우만 16번이었다. 지난 11일 시간당 최대 116㎜가 내린 부산이나 시간당 90㎜가 내린 7월의 청주 수준의 물폭탄 피해가 적어도 매년 한 번가량은 발생할 정도로 국지성 집중호우가 늘어난 셈이다.

9월 11일 국지성 호우가 내려 침수 피해가 발생한 부산 연제구와 수영구를 연결하는 저지대 도로에 택시를 비롯한 차량 여러 대가 물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9월 11일 국지성 호우가 내려 침수 피해가 발생한 부산 연제구와 수영구를 연결하는 저지대 도로에 택시를 비롯한 차량 여러 대가 물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서울 불투수면적률 54.4%로 가장 높아

문제는 기후변화의 속도보다 그에 대한 대처 속도가 더 느리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한정된 영역 안에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지는 일이 도시에서 벌어지면 서울과 부산 등 대부분의 대도시는 거대한 물그릇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비를 흡수하지 못하는 불투수 면적은 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넓어졌지만, 뒤늦게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 현재로서는 대책을 알아도 시행하는 데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불투수 면적이 넓은 도시일수록 빗물이 지표면에 고여 침수로 이어지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지표면에 흙바닥이 노출돼 있고 풀과 나무가 자라는 식의 자연피복상태에서는 비가 내리면 약 50%가 땅으로 흡수된다. 25%는 얕은 층으로, 25%는 보다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나머지 50% 중에서도 40%는 자연 증발하고 10% 정도만이 지표면을 따라 흐른다. 반면 불투수면이 75% 이상인 도시에서는 강수량의 10%가 얕은 층으로, 5%가 심층으로 침투하고, 55%는 지표 위에서 흐르게 된다. 이 경우 증발하는 양도 30%로 줄어들게 된다.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도시일수록 순식간에 저지대를 중심으로 물이 불어나 침수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경부가 2013년 전국의 불투수 면적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울의 불투수 면적률은 54.4%로 광역지자체 가운데서 가장 높았고, 부산이 30.3%로 뒤를 이었다. 기초지자체 단위로는 경기 부천시가 61.7%로 서울보다도 높았고, 수도권의 수원·광명·오산·안양·군포시 등도 30%대 후반의 높은 불투수 면적률을 보였다. 가장 도시화가 진행된 수도권 일대가 국지성 집중호우가 닥칠 경우 가장 피해에 취약한 영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도심지역만 놓고 봤을 때 80%가 넘는 불투수 면적률을 보이기도 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나마 서울은 현재의 도시 형태가 완성된 것으로 평가되는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더 이상 도시화가 진행될 공간 자체가 없어 불투수 면적률이 높아지는 속도는 정체된 상태다.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1980년 3.4%였던 불투수 면적률이 2010년 6.9%까지 치솟았고, 이후 2년 동안 1%포인트가 오른 7.9%까지 높아져 아직도 빠른 속도로 불투수 면적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충남 재난안전연구센터의 조성 연구원은 “지구온난화로 다른 영향이 없더라도 폭우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져서 시간당 30㎜ 이상 비가 온 날이 1970년대 한 해 평균 1.2일에서 2000년대는 2일로 늘면서 국지성 집중호우 발생이 1.6배 증가했다”며 “아스팔트나 시멘트처럼 구조물이 많은 도시에서는 빗물이 땅으로 침투하지 못하는 불투수 면적이 급증해 도시지역에서는 많게는 60%가 넘는 불투수 면적률 때문에 침수가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면적이 늘어나는 문제는 집중호우가 잦아지는 것과 맞물려 침수 등의 비 피해가 늘어나는 것 외에도 다양한 환경적인 문제점을 낳는다. 비가 오지 않을 때엔 하천과 지류가 말라붙어 있다가 비가 올 때만 유량이 늘어나면서 지표면의 각종 오염물질들이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하천에 유입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수질이 악화되고 수상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름철 고온이 지속되는 기간에는 하천과 지류가 말라버리면 도심 내 열섬현상도 악화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옥상정원 만들어 빗물 머금게 해야

도시의 불투수 면적률을 낮추기 위한 방안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태다. 옥상정원을 만들어 정원의 흙이 빗물을 머금고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도 단시간에 빗물이 지표로 집중되어 흐르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도로와 보도를 투수성 소재로 바꾸고,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거나 공원 등을 만들 때 내린 빗물을 모아 일정 시간 저류시키거나 재활용할 수 있게 하는 설비를 갖추는 등의 방안도 있다. 환경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도 이런 식으로 빗물이 일시에 흘러가는 것을 막는 ‘저영향개발(LID)’ 기법을 보급하는 데 나서고는 있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투수포장 방식만 놓고 봐도 2배가량 차이가 나는 시공비용을 감안하면 민간 차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비 피해가 예상되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유수지와 배수펌프장을 늘리고 배수용량을 확충하는 등의 대책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환경부는 도심지역 상습침수 해소를 위해 2013년부터 전국의 도시 중에서 하수도 중점관리지역을 해마다 10곳 내외로 선정해 하수관을 개량하고 저류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도 상습침수지역 중의 하나였던 양천구와 강서구 일부 지역을 관통하는 대규모 하수터널인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 관악구 일대의 지하 저류시설의 완공을 앞두고 있는 등 일단 불어나 모인 빗물을 내보내는 설비를 확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빗물을 한 곳에 모아 처리하는 설비를 갖추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비용이 들기도 할 뿐더러, 1년에 단 며칠에 불과한 실제의 집중호우 기간 때문에 대규모 시설을 짓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보다는 도시 내 가장 취약한 구역을 중심으로 구역에 맞는 규모의 빗물 저류시설을 갖추고, 건물이나 주택마다 소규모 저장시설을 마련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상호 부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침수를 경험했던 지역에 대한 하수처리 용량 확대부터 시작해 장기적으로 침수 해소를 위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며 “침수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공원 등의 시설에 투수포장을 적용하는 식의 침투율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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