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 못한, 클리블랜드 ‘연승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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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전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하는 감독이 능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런 점에서 클리블랜드는 참 많은 복을 가진 팀이다. 현역 최고 감독 중 한 명이 그들의 사령탑이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질주가 무섭다. 클리블랜드는 15일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에서 3-2으로 이겼다.

8월 25일 보스턴 레드삭스전부터 시작된 연승 숫자는 어느덧 ‘22’까지 늘어 1935년 시카고 컵스가 작성한 ‘순수’ 최다 연승 기록을 넘어섰다. 메이저리그 최다 연승 기록은 1916년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달성한 26연승. 그러나 이 기록에는 무승부 한 번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컵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7차전 끝에 분패한 클리블랜드는 올해도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의 유력한 우승후보이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압도적인 연승 행진을 펼칠 정도의 전력이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클리블랜드는 어느새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제치고 아메리칸리그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클리블랜드의 질주는 2002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연상시킨다. 당시 빌리 빈 단장이 주도하는 ‘머니볼’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오클랜드는 그 해 8월 14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부터 9월 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까지 20연승을 달리며 메이저리그에 돌풍을 일으켰다. 혹자는 올해 클리블랜드를 가리켜 ‘제2의 머니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의 머니볼과 오클랜드의 머니볼은 분명 그 차이가 있다. 도대체 클리블랜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프란시스코 린도어(왼쪽)와 오스틴 잭슨이 9월 1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프란시스코 린도어(왼쪽)와 오스틴 잭슨이 9월 1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리그 최강의 선발진과 불펜진

2007년 클리블랜드가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팀에는 CC 사바시아와 로베르토 에르난데스(구 파우스토 카모나)라는 걸출한 원투 펀치가 있었다. 이들 두 명이 각자 19승씩을 올린 클리블랜드는 그 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보스턴을 만나 3승4패로 패하기는 했지만 3승1패로 앞서며 보스턴을 벼랑 끝까지 몰고가는 등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듬해 클리블랜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클리프 리라는 또 한 명의 걸출한 에이스를 얻었다. 사바시아가 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밀워키 브루어스로 떠나고 에르난데스가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는 사이 리는 22승(3패)을 올리며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그런 리마저 떠난 빈 자리는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2014년 코리 클루버의 등장으로 마침내 해결됐다. 클루버는 그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더 놀랍다. 클루버는 클리블랜드가 20연승을 달성한 13일 보스턴전에서 9이닝을 5안타 8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완봉승을 거뒀다. 시즌 16승째로, 후반기 들어 9승1패 평균자책 2.07의 폭주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크리스 세일(보스턴) 대세론이 일었던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판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클리블랜드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클루버 외에도 뛰어난 활약을 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카를로스 카라스코(15승6패 3.41)는 확실한 2선발로 올라섰으며, ‘만년 유망주’였던 트레버 바우어(16승8패 4.33)도 눈을 떴다. 마이크 클레빈저(9승5패 3.30) 역시 4~5선발로 깊은 인상을 심고 있다.

지난해 클리블랜드가 월드시리즈까지 오르는 데는 앤드류 밀러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시즌 도중 트레이드를 통해 뉴욕 양키스에서 클리블랜드로 넘어온 밀러는 포스트시즌에서 총 10경기에 나서 19.1이닝 2실점이라는 대활약을 펼치며 부상으로 선발진이 흔들린 클리블랜드 마운드에 큰 힘이 됐다.

밀러는 올해도 클리블랜드의 허리를 잘 챙겼다. 그러다 무릎 부상으로 지난 8월 22일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럼에도 클리블랜드 불펜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난 3년간 클리블랜드의 뒷문을 지켜왔던 마무리 코디 앨런(26세이브)은 올 시즌에도 변함없이 뒷문을 잘 지키고 있다. 여기에 브라이언 쇼(21홀드)가 밀러의 몫까지 열심히 하고 있고 닉 구디, 댄 오테로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며 허리를 잘 지켜내고 있다.

클리블랜드에 더 희소식은 밀러의 복귀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주로 투수력이 강한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밀러가 복귀할 경우 선발과 불펜을 모두 합한 클리블랜드 마운드는 메이저리그 최강일 수 있다.

전체 득점 4위의 타격 3총사

제이슨 킵니스와 마이클 브랜틀리. 클리블랜드의 간판타자 두 명은 현재 부상으로 빠져 있다. 그럼에도 클리블랜드는 팀득점에서 아메리칸리그에서 4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리며 생각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는 3명의 활약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자유계약선수(FA)가 돼 클리블랜드로 넘어온 에드윈 엔카나시온은 홈런과 타점에서 모두 팀내 1위를 지키며 공격을 이끌고 있다.

엔카나시온이 외롭지 않게 그 뒤를 받치고 있는 선수가 바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1993년생 유격수 프란시스코 린도어다. 이미 2014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2위에 오르며 싹을 보였던 린도어는 13일 홈런을 통해 팀 최초의 30홈런 유격수가 되는 등 메이저리그 데뷔 3년 만에 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올라섰다.

3루수 호세 라미레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라미레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할 이상의 타율에 홈런을 26개나 때려내며 기대치를 상회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화살 3개를 합쳐 놓으면 꺾을 수 없다’고 했던가. 이 클리블랜드 타선의 ‘3개의 화살’이 딱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전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하는 감독이 능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런 점에서 클리블랜드는 참 많은 복을 가진 팀이다. 현역 최고 감독 중 한 명이 그들의 사령탑이기 때문이다.

테리 프랑코나는 1997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감독을 시작한 뒤 2004년 보스턴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해 ‘밤비노의 저주’를 깨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프랑코나는 2007년 다시 한 번 보스턴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2013년 클리블랜드 감독으로 부임한 뒤, 프랑코나는 매년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클리블랜드를 다시 강팀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 경험이 많은 감독답게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가 그 좋은 예로, 당시 보스턴을 만난 클리블랜드는 여러 악재가 겹쳐 보스턴에 밀린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프랑코나는 현란한 용병술로 보스턴을 3경기 만에 제압했다. 올해도 포스트시즌에서 클리블랜드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다.

<윤은용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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