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호 ‘히딩크 복귀설’ 암초 만나 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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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는 러시아월드컵 준비과정에서 신 감독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의 이름이 거론되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 축구가 때 아닌 ‘히딩크 논란’으로 시끄럽다.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거스 히딩크 전 감독(71)이 지난 9월 6일 히딩크 재단을 통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한국의 지휘봉을 다시 잡고 싶다는 뜻을 밝히면서 촉발됐다. 히딩크 재단 노제호 사무총장은 “히딩크 감독이 지난 6월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해설을 위해 러시아에 갔을 때 동행한 자리에서 한국 축구에 봉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이 ‘봉사’라는 표현을 쓴 것은 연봉 등 대우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 축구의 발전을 돕겠다는 의지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설레는 축구팬들 “히딩크를 선임하라”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쓴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설레게 만드는 이름임엔 분명하다. 아시아 무대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한국 축구에 분노한 팬들은 “히딩크 감독을 다시 선임하라”는 요청을 줄기차게 쏟아내고 있다. 청와대에 히딩크 감독의 복귀를 요구하는 청원글이 올라갈 정도다. 축구계는 이번 사태가 한국 축구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에 생긴 일이라고 진단한다. 러시아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냈지만 최종예선 10경기에서 이긴 것은 단 4경기에 불과했다. 그 4경기조차 한국 축구만의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일부 선수는 국민적 감정과 동떨어진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반발로 히딩크 감독의 이름이 나오기에는 시점과 절차에 문제가 많다. 대한축구협회가 신태용 감독(47)에게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지휘봉을 맡긴 지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을 경질한 시점이 아닌 이상 신 감독과의 계약은 존중돼야 한다. 신 감독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루고 돌아오자마자 이런 이야기가 나와 답답하다”며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를 다시 맡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히딩크 감독이 직접 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만약 히딩크 전 감독이 한국 축구에 봉사하려는 의지가 사실이라면 감독직이 공석이던 지난 6월 지원 의사를 대한축구협회에 통보했어야 했다. 그러나 히딩크 재단 측의 설명에 따르면 히딩크 전 감독은 당시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못 나갈 가능성이 있었기에 침묵했다. 본선 진출이 확정됐으니 감독직을 맡겠다는 것을 봉사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있다.

히딩크 감독이 다시 한국 축구를 맡아도 성공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감독도 선수처럼 전성기가 있다. 히딩크 감독이 명장인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를 이끌고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4강에 오른 이후에는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는 이후 러시아의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해 체면을 구겼고, 터키를 맡아 출전한 2012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도 역시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축구계는 당혹, 히딩크 환상은 버려라

특히 모국인 네덜란드로 복귀해 본선 티켓이 16장에서 24장으로 늘어난 2016년 유럽축구선수권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이 지도자 인생에 큰 타격을 줬다. 결국 히딩크 감독은 1년 만에 쫓겨났다. 지난해 첼시 감독대행으로 5개월간 지휘봉을 잡은 이후에는 감독직을 맡기려는 팀도 없다. 중국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에이전트는 “히딩크 감독이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중국축구협회에 감독직을 맡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이탈리아 출신 마르첼로 리피에게 밀린 것”이라며 “중국 슈퍼리그로 시선을 돌려 상하이 상강에 지원했지만 70살을 넘은 나이와 부족한 현장감 때문에 첼시 출신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이 대신 선임됐다”고 귀띔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러시아월드컵 준비과정에서 신 감독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의 이름이 거론되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초 신 감독은 10월 A매치 주간을 활용해 유럽에서 강팀들과 맞붙는 일정을 짰지만, 본선 경쟁력이 아닌 당장의 성적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강팀들에게 큰 패배를 당할 경우 히딩크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히딩크 감독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단호하게 ‘No’를 외친 이유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신 감독과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과했는데, 왜 이런 이야기(감독 교체)가 나오는지 궁금하다. 히딩크 감독 입에서 직접 나온 건지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회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어처구니없다. 우리는 신 감독을 변함 없이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 축구가 히딩크 감독의 ‘봉사’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축구전문가들은 신 감독이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전술적 난맥을 드러낸 이상 그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히딩크 감독이 ‘기술고문’ 역할을 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안톤 두 샤트니에 전력분석 코치를 합류시켰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히딩크 감독이 갖고 있는 세계 축구에 대한 정보와 전술적 조언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연봉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인 황선홍 서울 감독도 “기술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채널은 열어야 한다”며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면 기술고문으로 히딩크 감독님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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