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영중씨-세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날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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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전통과 문화가 다르고 경제적 환경마저 다르지만 청소년들은 날개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주제를 함께 생각한다. 그는 그 자체가 예술이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작가 김영중씨는 카메라가 없다. 뿐만 아니라 직접 사진을 찍는 일도 드물다. 대신 그는 수백 명의 청소년들에게 카메라를 나눠주고 사진을 찍게 한다. 2013년부터 날개라는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날개 프로젝트는 미얀마, 라오스, 태국, 필리핀, 한국, 미국의 청소년들이 같은 주제로 사진을 찍고 그들의 손으로 골라 함께 보고 나누는 작업이다. 수백 개의 셔터가 그를 대신해서 세상의 모습을 담는다. 한 해 동안 수천 통의 필름을 쓰고 수만 장의 사진을 찍는다. 처음 함께 찍은 주제는 ‘좋은 것(The good)’이었고, ‘시간’ ‘바람’ ‘모래’를 거쳐 ‘가족’으로 주제가 이어진다. 김씨는 “각 나라의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한국과 미국의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표현이 많다. 반면 가난한 지역에서는 현재 자기 앞에 놓인 것들을 찍는다. 한국과 미국 청소년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이미지를 담고, 미얀마·필리핀 등지의 아이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제를 풀어간다. 세상을 보는 시선과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때 잘 나가던 상업 사진작가였다. 그의 충무로 스튜디오는 백화점과 의류 관련 사진들을 찍느라 분주했다. 그는 사진으로 꽤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경제적인 성취는 이루었지만 그의 부모는 사진 찍는 아들이 탐탁지 않았다. 난치병을 앓던 그의 어머니가 어느 날 그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달라고 했다. 병원에 모시고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여성잡지를 펼쳤다. 그가 찍은 옷 광고 사진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한마디 말씀도 없으셨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고 아무말 없이 입을 다무셨다.” 그때 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를 고심했다고 한다.

한 번의 작업에 수백 통의 필름과 일회용 카메라가 필요하다.

한 번의 작업에 수백 통의 필름과 일회용 카메라가 필요하다.

잘 나가던 상업사진작가로서의 회의

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김씨는 스튜디오를 접고 짐을 쌌다. 정말 사진이 무엇인지, 어떻게 보고 찍어야 할지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미국 브루클린 프랏(PRATT) 조형예술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전공했다. 사진으로 성공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하고 현장에서 몸으로 배워 익히며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사진에 대한 철학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에 대해서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됐다.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사진은 권력이라는 사실이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지만, 현실을 지극히 왜곡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진이다”라고 말한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상황은 끔찍하게 변해 있었다.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다. 더 이상 사진을 업으로 편하게 돈을 벌기가 힘들어졌다. 경제적인 위기 속에서 그는 예술을 하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프랏에서 공부한 것이 순수예술로서의 사진이었다.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나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길을 찾아 나섰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고 말한다. 그는 사진을 찍지 않고 마음에 담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다리로 찍고, 한자리에 앉아 머물면서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를 다시 바라보는 사진작업을 해나갔다. 김씨가 고심했던 사진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한 발 다가섰지만 돈과는 점점 멀어져갔다.

“사진작가들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는데 아프리카를 담는 것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맨발의 인간이 살아가는 대지를 여행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많은 이들의 희망이었다.” 그도 꿈이 부르는 대로 짐을 싸서 아프리카로 떠났다. 자연에 감탄하고 몰두할 때 김영중씨는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말라위의 카페에서 차를 마실 때였다. 옆에 검은 짐승 같은 것이 기어 지나갔다. 다시 보자 사람이었다. 결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세상은 평온해 보이지만 어디에선가 가난과 굶주림이 일상이 되고, 전쟁과 폭력이 환경이 되어버린 곳도 있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병을 얻어도 고칠 수 없어 망가진 몸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과도 마주쳤다. 김씨는 사진으로 결코 찍을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아프리카에서 깨달았다.

그와 함께 사진작업을 하는 필리핀 아이들. / 김영중 제공

그와 함께 사진작업을 하는 필리핀 아이들. / 김영중 제공

아프리카에서 느낀 사진에 대한 고민

나미비아의 원시부족들도 코카콜라를 마시는 세상이고, 황무지에서도 인스턴트 식품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 속에서 그는 ‘순수와 순정의 아름다움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립된 채 고유의 풍습과 문화를 지켜가는 나미비아 힘바족과 한 달여를 함께 지내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는 다시 고민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는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이 그의 사진작업을 변화시켰다고 고백했다. “현장에서 내 안에 있는 예술을 표현하는 사진을 찍고 있는가를 묻게 됐다. 또 한 가지 절실한 것은 내가 찍는 모습이 그들이 과연 원하는 모습일까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김영중씨는 떠났던 땅으로 다시 돌아오고 여비를 마련해서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날개 프로젝트에 대한 대강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오지 사람들의 모습도 결국 권력에 의해 왜곡되고 의도된 모습일 수 있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면서 준비한 일회용 카메라를 그곳 청소년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이 찍은 사진 속에서 김씨는 “그 속에는 내게 결코 보여주지 않던 얼굴들이 있었다. 그들을 구경하면서 사진기를 들이대는 외부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표정을 감추었던 것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린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는 사진 찍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준비하던 전시회는 개관일이 되자 곧바로 문을 닫았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전시회를 준비하고 엎기를 반복했다. 김씨는 그 이유에 대해 “아이들의 사진은 그야말로 최고의 사진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이다. 구도나 빛 모두가 완벽했지만 아이들의 사진에 미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속에는 사진을 찍는 나의 감정은 있었지만, 사진 속의 그들의 감동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김영중씨는 결국 사진이 재미있는 놀이가 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술을 넘어 서로 모여서 함께 모습을 담고 고르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그가 세계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날개 프로젝트이다. 뜻을 함께하고 같이 놀기 좋아하는 이들이 힘을 모아 일회용 카메라를 사고 사진을 현상하며 전시회를 했다. 5년 동안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클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으는 요령도 생겼다. 김씨는 “처음 6000원이던 카메라 값이 지금은 두 배 이상 올랐다. 자금은 늘 부족하고 해야 할 일은 늘지만 세상에 감동을 나누는 힘은 커졌다. 사진이 한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잇는 교량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날개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3000여명. 나미비아, 태국, 미얀마, 라오스와 필리핀, 한국, 미국의 아이들이 그가 나눠준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다른 나라 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자신들의 눈으로 골라 전시회를 가졌다. 한 번에 서너 개 나라의 청소년들이 사진으로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와 태국, 나미비아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예술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는 일임을 공유해가고 있다. 그런 작업을 통해 김씨는 “예술가는 사회와 현실에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세상과 교감하고 교류하는 관계이다. 예술은 상호반응의 작업이다. 그리고 하나의 과정이므로 완성을 예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이야기를 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 작품 '돌의 눈물'

그의 사진 작품 '돌의 눈물'

아이들의 사진에서 그가 보지 못한 얼굴들을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의 사진에서 그가 보지 못한 얼굴들을 찾을 수 있다.

사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

사진은 권력이기도 하지만 감동으로 사람을 치유하는 힘도 가졌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5년 동안 여성 노숙자들과 함께 심상치료 프로그램인 포토테라피 작업을 했다. 많은 이들이 상처받은 채 살아가고 그 중에서도 여성 노숙자들은 폭력을 피해 세상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다. 사진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며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그의 포토테라피였다.

김영중씨의 작업들은 부산물도 만들어냈다. 전시공간으로 컨테이너를 쓰고 도서관으로 개조해서 선물하는 것이다. 나미비아로 간 날개의 컨테이너는 오전에는 보육시설로, 오후에는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씨는 “얼마 전 한국 전시가 끝났다. 전시회 동안 아이들이 필리핀의 친구들을 위해 책을 가져왔다. 그 책들로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필리핀에서 전시가 끝나면 그곳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종교와 전통과 문화가 다르고 경제적 환경마저 다르지만 청소년들은 날개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주제를 함께 생각한다. 그는 그 자체가 예술이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작업은 사진에서 한 발 더 나갈 것이라고 했다. 다섯 가지 주제 중에서 지금 진행 중인 작업은 바람이다. 김씨는 “바람은 소리에 대한 작업이다. 음악전문가와 협력해서 완성되지 않은 네 마디의 음악을 만들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어떤 아이는 노래를 완성하고, 가사를 붙일 것이며, 모두가 노래할 것이다. 또 다른 아이들은 그것을 연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야말로 공동으로 진행하며 상호반응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터액티브 문화작업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더 많은 노력이 더해지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날개 프로젝트의 최종 주제가 가족인 것도 의미가 깊다. 그는 “인류의 꿈은 건강한 가족의 완성일 것이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인류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완성되지 않겠나. 이 작은 프로젝트에서나마 한 가족으로 감동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에게 무엇이 가장 어렵냐고 묻자 명쾌히 “돈”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하는 작업은 아무리 봐도 돈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돈을 쏟아부어야 유지되는 일이다. 김영중씨의 희망에 동조하는 이들이 뜻을 모으지만 예술은 결국 돈이 필요하다.

한 장의 사진은 백 마디의 글과 말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다. 설명이 필요 없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디지털의 시대가 되면서 사진은 더 찍기 쉬워졌고 일상의 수단이 됐다. 누구나 주머니 속 휴대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는다. 사진작가가 설 자리는 그만큼 좁아지기도 했고, 역설적으로 넓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김영중씨의 말대로 “사진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왜곡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런 현실 속에서 순수와 순정을 담고 싶은 사진작가 김씨는 진작에 카메라를 버렸다. 세계의 청소년들이 그가 찍고 싶은 것을 대신 찍어주니 그야말로 사진의 진정한 고수인 셈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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