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애플망고 드셔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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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아열대로 기후변화… 망고·파파야·패션프루트·구아바 등 생산 급증

지난 8월 가족 여름휴가로 제주를 갔던 송병철씨(44)는 선물로 천혜향이나 한라봉을 한 박스 살 생각이었다. 서귀포 도로변의 한 과일가게를 들른 송씨는 깜짝 놀랐다. 가게마다 내세운 것은 애플망고였기 때문이다. 그는 여행 중에 자그마한 커피농장을 지나기도 했다. 송씨는 “아무리 제주라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대과일을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지 몰랐다”며 “기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환갑을 갓 넘길 즈음이면 국내산 망고와 파파야, 구아바, 올리브를 즐길 것으로 보인다. 배, 사과, 복숭아 등은 수입과일코너로 밀려난다. 국내 아열대 작물 재배면적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 따르면 아열대 작물 재배면적은 2015년 362ha에서 올해는 428ha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3년 뒤인 2020년에는 1000ha 이상으로 재배면적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5년 만에 재배면적이 3배 이상 증가하는 셈이다.

애플망고가 제주 서귀포시 한 농가에서 재배되고 있다. /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제공

애플망고가 제주 서귀포시 한 농가에서 재배되고 있다. /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제공

재배면적, 5년 만에 3배 이상 증가

올해 기준으로 보면 아열대 과일 중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것은 패션프루트로 44.4㏊에서 111톤이 생산될 예정이다. 재배량은 망고가 제일 많다. 망고는 32.5ha에서 398톤이 생산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재배면적 기준으로 보면 구아바, 용과, 파파야, 아보카도, 바나나, 파인애플, 아떼모야 순이다. 아열대 채소도 있다. 강황(울금)의 재배면적이 189ha로 가장 넓고, 여주(쓴오이)는 4162톤을 생산해 생산량이 가장 많다. 삼채, 얌빈, 공심채, 오크라, 사탕무 등도 국내 재배 중이다. 아열대 작물들은 대부분 제주에서 재배되지만 일부는 여수, 남해, 창원 등 남해안에서도 자란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충남 보령에서도 애플망고가 시험수확됐다.

제주에서 30년째 농사를 짓던 김순일씨는 2015년 재배작목을 파파야와 바나나로 바꿨다. 친환경으로 재배하기 쉽고, 노동력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김순일씨는 지난해 파파야 1320m²와 바나나 3960m²를 재배해 2억원(경영비를 계산하지 않은 조수입 기준)의 소득을 올렸다. 올해 수입은 4억원이 예상된다. 김씨는 “재배경험도 쌓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 재배면적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이 지금까지 보급한 품종은 13종이다. 2008년부터 도입한 50종의 아열대 작물 중에서 우리 토질에 맞는 20종을 추렸고, 이 중 13개 작목에 대한 기술개발이 이뤄졌다.

아열대 작물 보급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은 에너지 비용 탓이 크다. 제아무리 제주라고 해도 24시간 아열대기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열대기후란 연중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영하 3도에서 영상 18도 사이면서 월평균 기온이 10도가 넘는 달이 8개월 이상인 지역을 말한다.

기후적 한계는 최근 각종 에너지 절감기술이 개발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망고의 경우 열풍기, 히트펌프, 다겹보온커튼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46% 절감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생산량이 대폭 늘어났다. 예컨대 제주 서귀포시 화순에는 인근 남제주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한 뒤 버려지는 온수를 끌어와 망고 재배용 비닐하우스 시설을 데우고 있다. 제주에만 있는 천연자원층인 송이층에 있는 지열을 이용하기도 한다. 지하공을 지하 깊이 묻어 송이층 내에 있는 따뜻한 공기를 끌어와 비닐하우스를 난방하는 방법이다. 송이층에 있는 공기는 18~20도 내외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상대적으로 저온에서 잘 자라는 품종을 집중 육성하는 것도 재배가 확산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애플망고는 대만과 같은 아열대에서 잘 자란다. 필리핀과 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대성 품종인 망고와는 다르다.

수입산과의 가격 격차를 줄인 국내산은 품질 경쟁면에서 앞서기도 한다. 망고가 대표적이다. 망고는 품종적인 특성상 장거리 이동이 어렵다. 쉽게 짓물러진다. 때문에 해외에서 수입해 오면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수입되는 과정에서 식물검역상 75도에서 30분간 증열처리를 한 뒤 2도~영하 4도에서 냉동저장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향기가 없고 과육이 빈번이 붕괴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망고는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한 바바나와 달리 저장성이 떨어진다”며 “국내산 망고 가격이 약간 비싸도 일단 먹어보면 소비자의 손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기후변화는 생각보다 빠르다. 지금은 제주와 남해 일부만 아열대 기후지만 63년 뒤인 2080년이 되면 중부내륙까지 아열대가 확대된다. 경지면적으로 보면 지금은 10.1%가 아열대지만 2080년에는 62.3%까지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제주는 아열대 작물이 주로 재배되고, 천리향·한라봉 등은 남해안에서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특용작물인 커피도 한국산이 크게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제주의 가정에서 화분용으로 커피나무를 키우지만, 이때쯤 되면 대량생산이 될 수도 있다. 한라산 고산커피가 나올 날이 머지않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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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능성과 고소득, 농민들에게 매력

아열대 작물은 소비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소득증가와 세계화로 아열대 작물에 한국인의 입맛이 서서히 적응되는 데다, 다문화가정의 급격한 증가도 소비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시아에서 아열대 작물은 에스닉 푸드(ethnic food)다. 에스닉 푸드란 각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말하는데, 특히 동남아시아·중남미·서아시아·중동 등 제3세계의 음식을 지칭한다. 다문화인구는 2020년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23만명)과 비교해 보면 10년 사이 5배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실제 열대·아열대 과일 수입은 매년 폭증하고 있다.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아보카도, 냉동과일 등 열대·아열대 과일 수입량은 49만톤으로 2002년(23만톤)의 2배에 달한다. 신선 열대 과일과 함께 람부탄, 리치, 패션프루트 등 냉동과일 수입량도 급증하고 있다. 수입금액 증가폭은 더 크다. 열대·아열대 과일 수입금액은 지난해 5억4533만 달러로 2002년(1억452만 달러)의 5배쯤 늘어났다. 바나나가 절대적으로 많지만 망고, 파인애플, 아보카도 등의 수입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 아열대 작물이 가진 고기능성과 고소득도 농민들에게는 매력이다. 제주 망고의 조수입은 10a당 3150만원에 달하고, 여주는 개당 470엔(한화 4800원)에 팔리고 있다. 또 아보카도는 타임이 선정한 10대 식품이고, 오크라와 아티초크는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데 좋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김성철 연구원은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환갑을 맞을 즈음이면 한국의 대표 과일이 망고, 바나나, 그린파파야가 될지도 모른다”며 “아열대 과일을 재료로 한 음식들이 개발되면서 한식도 크게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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