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장 면세점, 이번엔 성사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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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이용 편해져’ VS ‘도입 취지 훼손’ VS ‘기존 사업자 타격’…각기 다른 입장 ‘팽팽’

지난 2001년 인천공항이 문을 연 후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위한 법률안이 무려 6차례나 발의됐다. 하지만 관세청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입국장에 면세점을 설치하는 것은 현행법상 해외반출 용도로 규정하고 있는 면세품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인천공항공사는 7번째 도전에 나섰다.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는 내년 초 개항 예정인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등에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입국장 면세점은 공항이나 항구 등에서 출입국심사대를 넘어 국내에 들어오는 공간에 설치되는 면세점을 말한다. 현재는 해외로 출국할 때만 면세품을 살 수 있지만 입국장 면세점이 생기면 귀국할 때도 면세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여행객들로 붐비는 인천공항 모습. / 강윤중 기자

여행객들로 붐비는 인천공항 모습. / 강윤중 기자

중국과 일본, 잇달아 설치안 허용

인천공항공사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간사인 윤영일 의원에게 제출한 ‘인천공항 입국장 면세점 도입 검토자료’에 따르면 공사 측은 인천공항 제1터미널 1층 수하물 수취지역 2곳(각 190m²)과 제2터미널 1층 수하물 수취지역 공간에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판매품목은 향수, 화장품, 주류, 담배 등 소형 필수품이며 운영은 중소·중견기업에 맡긴다는 방침을 내놨다.

인천공항공사는 여행객들의 해외여행 불편 해소와 공항 경쟁력 강화를 입국장 면세점 설치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 경쟁 공항들이 잇달아 입국장 면세점을 설치하는 등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도 도입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공항과 항만의 입국장 면세점 19개소 신설을 승인했고, 일본은 올해 4월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허용하는 세제개편안을 적용했다.

‘새로운 임대료’라는 추가수익도 인천공항공사가 끊임없이 입국장 면세점 설치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다. 입국장 면세점이 생길 경우 인천공항 측은 연 300억원의 새로운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인천공항의 영업이익은 1조3013억원으로 이 중 66.5%가 면세점 임대료 수입에서 나왔다. 인천공항은 최근 면세점 업계가 경영난을 이유로 임대료 절감 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너무 높은 임대료를 받는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 공사 측은 입국장 면세점으로부터 발생하는 임대수익은 지역사회 공헌 및 면세사업 육성 등 공익적 사업에 활용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입국장 면세점을 둘러싼 정부와 공항공사, 업계의 셈법은 복잡하다. 인천공항공사와 여행객, 정부와 면세사업자 간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여론은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2년까지 9차례에 걸쳐 공항 이용객 1만7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4%가 입국장 면세점 설립에 찬성했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시간에 쫓기는 출국길에 면세품을 사고 여행하는 동안 구입한 물품을 지니고 다니는 것보다 국내로 들어올 때 공항 입국장에서 면세품을 사는 게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붐비는 인도장에서 오랜 시간 기다렸다 면세품을 찾아야 하는 불편함도 일정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단 입국 소요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기내 면세점 운영하는 항공사도 타격

반면 관세청은 안전 및 보안, 면세점 도입 취지가 훼손된다는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항 세관과 항공사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면세점이 들어서면서 입국장이 혼잡해지면 세관 감시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 있고, 마약 밀수입 등을 꾀하는 사람들이 입국면세점에 섞여 들어오면 이들에 대한 추적·감시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면세점 업계 반응 역시 냉담하다. 공항 내 면세사업자를 늘려 임대료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항공사와는 달리 면세점 업계는 시내면세점 사업자가 늘며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중국 사드 보복으로 실적이 극도로 나빠진 상황에서 사업자를 확대하는 것은 업계에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것이다. 최근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 당시 특혜시비로 업계가 각종 구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굳이 사업자를 추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특히 기내 면세점을 운영하는 항공사들은 매출 타격이 예상되는 만큼 입국장 면세점 도입이 달갑지 않다. 입국장 면세점이 도입될 경우 귀국편 비행기에서 면세품을 사는 여행객들을 입국장 면세점에 뺏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기내 면세점 사업을 통해 연간 33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가 추산한 입국장 면세점의 1000억원 매출은 기내 면세점 매출액과 상당수 중첩된다.

정부와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결과가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관세청이 지난 시내면세점 선정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드러나며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인 데다가, 과거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호의적이었던 인사들이 새 정부 요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3년 국무조정실장 시절 입국장 면세점을 부처 간 협업과제로 선정한 바 있으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6대와 17대 국회의원 시절 두 차례나 입국장 면세점 도입을 골자로 한 관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한병도 청와대 정무비서관도 국회의원 시절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냈다. ‘상황’이 달라진 만큼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위한 관세법 개정에 대해 보다 적극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이해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업계의 시선은 이제 9월 정기국회로 향하고 있다.

<노정연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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