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사토(고향) 납세’ 답례품은 참아주세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일본의 후루사토 납세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지자체들 간에 더 많은 기부를 받기 위해 답례품 과열 경쟁이 심했다. 그러자 정부가 ‘브레이크’를 걸면서 후루사토 납세의 버블’이 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야자키규가 실제 부담은 2000엔(약 2만원)?" 일본 미야자키(宮崎)현 미야코노조(都城)시는 인터넷에서 이런 문구가 담긴 광고를 통해 ‘후루사토(고향) 납세’를 권유하고 있다. 미야자키규(牛)는 육질이 좋기로 유명한 이 지역 특산품이다. 미야코노조시는 이 미야자키규를 일정액의 후루사토 납세를 하는 기부자에게 답례품으로 보내주고 있다.

후루사토 납세를 홍보하는 총무성 홈페이지 화면.

후루사토 납세를 홍보하는 총무성 홈페이지 화면.

지역진흥, 소득공제, 답례품 ‘1석3조’

후루사토 납세는 자신의 고향이나 돕고 싶은 지역에 기부하면 기부금액 중에서 2000엔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 주민세·소득세를 공제해주는 제도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감사의 표시로 기부자에게 답례품을 보내주는 게 일반적이다. 주로 소고기, 게, 장어, 쌀, 과일, 맥주 등 지역특산품을 보내준다. 기부자로선 2000엔을 부담하고 그 이상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지역을 살리자는 취지에, 소득공제와 답례품 혜택까지 있다 보니 일본에서는 후루사토 납세를 통해 기부하는 이들이 최근 3~4년간 급증했다. 저출산·고령화 속에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자체들도 후루사토 납세를 재정난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6년 후루사토 납세 기부액은 2844억 엔으로 4년 연속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08년 81억 엔에서 무려 35배 이상 늘어났다. 미야코노조시의 경우 2011년 기부액이 3842만 엔이었다. 미야자키규 등 답례품이 인기를 끌면서 후루사토 납세 기부를 통해서만 2015년에 42억 엔, 2016년에 73억 엔을 모으면서 2년 연속 기부액 전국 1위에 올랐다.

후루사토 납세는 수도권에 몰릴 수밖에 없는 세금을 지방으로 이전시킴으로써 중앙·지방 간 격차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자체가 지역특산물을 답례품으로 주느라 산지의 상품이 꾸준히 소비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효과에 주목해 최근 한국에서도 후루사토 납세와 비슷한 ‘고향세’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향사랑 기부제도’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고향세 추진 의지를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고향세 도입을 위한 법률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과열 억제책에 ‘버블’ 빠져

현재 일본의 후루사토 납세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지자체들 간 과열 경쟁에 ‘브레이크’를 걸면서 후루사토 납세의 ‘버블’이 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들 사이에서는 한푼이라도 더 많은 기부를 받기 위해 답례품 과열 경쟁이 격해졌다. 납세자에게 주는 답례품이 기부받은 후루사토 납세액의 80~90%에 이르는 지자체도 있었다. 일부 지자체는 지역특산물과 관련 없는 전자제품을 답례품으로 내놓거나 돈이나 다름없는 상품권을 답례품 목록에 올렸다.

후루사토 납세에 대한 답례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야자키규 홍보 화면.

후루사토 납세에 대한 답례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야자키규 홍보 화면.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 4월부터 답례품 한도가 기부금액의 30%를 넘지 못하도록 각 지자체에 통지했다. 선불카드, 상품권, 전자제품 등도 취지에 맞지 않는 답례품으로 지정했다. 지자체들도 정부 방침에 따르는 분위기다.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지자체의 76%가 답례품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답례품 과열 양상은 한 거품 꺼지는 양상이다. 우선 고액 답례품으로 화제를 부른 자지체의 수익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야코노조시의 경우 지난 6월 답례품을 기부금액의 최대 60%에서 30%로 낮추면서 기부액이 순식간에 감소했다. 시 관계자는 “득을 본다는 감각이 떨어지면서 7월에는 전년 같은 달의 3분의 1로 기부액이 급락했다”고 말했다. 2016년도 후루사토 납세 기부액 2위였던 나가노(長野)현 이나(伊那)시도 지난 6월 다이슨이나 파나소닉 등의 가전제품을 답례품으로 주던 것을 중지하자 기부금액이 4분의 1로 줄었다. 가전제품을 답례품으로 받기 위한 고액 기부가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부액 3위인 시조오카(靜岡)현 야이즈(燒津)시도 고액의 답례품을 줄이면서 7월 들어 기부금액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후루사토 납세를 통해 평년의 세수(稅收)를 뛰어넘는 기부금을 모은 지자체는 2016년도에 20곳으로 전년도의 2배였다. 2017년도에는 이러한 이상 과열 현상이 수그러들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예상했다.

다만 ‘붐’은 사라지더라도 후루사토 납세의 장점을 어떻게 살려나가느냐에 따라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자체들은 과열 양상을 피하면서도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기후(岐阜)현 가카미가하라(各務原)시는 시내 게임회사와 힘을 합쳐 신작 게임 출연권 등을 답례품에 추가했다. 이 답례품을 받기 위한 목표액인 10만~20만 엔의 기부가 2일 만에 모였다. 도쿄 오메(靑梅)시는 내년 마라톤대회의 출전권을 답례품으로 내놓았다. 시 담당자는 “여름의 후루사토 납세 신청이 하루 2~3건이었지만, 첫날에 40건의 신청이 있었다”고 놀라워했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선 지난해 9월부터 1만 엔 이상 기부자들에게 답례품으로 도내 온천시설이나 동물원 이용권 등을 보내주고 있다. 후루사토 납세를 관광객 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키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후루사토 납세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진흥’이라는 목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특별한 보답이 없어도 ‘지역을 위해서라면 돈을 내겠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포인트라는 것이다.

도쿄 분쿄(文京)구는 후루사토 납세를 재원으로 해서 구내의 빈곤아동에게 기업이 제공하는 식품을 나눠준다. 올 연말까지 2000만 엔을 모으는 게 목표인데 이미 1700만 엔이 모아졌다. 분쿄구와 연계해 후루사토 납세 사이트를 운영하는 트러스트뱅크 스나가 다마요(須永珠代) 사장은 “앞으로는 재원을 어디에 사용하는가를 보고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후루사토 납세 사이트에 올라온 인기 답례품목.

후루사토 납세 사이트에 올라온 인기 답례품목.

다양한 아이디어 통해 정착화 노력

실제 후루사토 납세는 지자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온정의 손길을 보내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구마모토(熊本) 지진이나 지난해 12월 니가타현(新潟)현 이토이가와(絲魚川) 화재가 발생했을 때 피해지역에는 통상 세수의 6배 이상의 기부금액이 몰렸다.

결국 ‘기부’ 본래의 모습인 사회공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후루사토 납세의 사용처를 게시하고 있는 지자체는 전체의 40%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토 모토히로(佐藤主光) 히토쓰바시대학 교수는 “답례품의 조달이나 용도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새로운 지방세나 미니공모채 등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재원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노하우 부족 등으로 좀처럼 정착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후루사토 납세는 극히 드문 ‘히트 상품’으로 불리고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가 지방 재원의 필요성과 사용처를 충분히 설명해 납세자의 이해를 얻는 과정이 장기적인 제도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우 경향신문 도쿄특파원 jwkim@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