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확정지은 이란, 월드컵 못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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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축구대표팀 선수 2명이 이스라엘과의 경기에 뛴 이유로 퇴출 위기에 놓였다. 이란 정부의 뜻대로 두 선수를 퇴출한다면 본선행을 확정지은 월드컵 티켓이 날아가게 생겼다.

중동 강호 이란이 요즈음 축구계 이슈의 중심에 섰다.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짓고도 스스로 퇴출위기를 자초한 까닭이다.

포르투갈 출신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대표팀 감독은 8월 2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8월 31일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9차전 한국과의 원정경기에 나설 출전명단을 발표했다.

이란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6월 13일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EPA연합뉴스

이란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6월 13일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EPA연합뉴스

그리스 팀 소속으로 이스라엘 팀과 경기

이날 발표는 최근 이란 정부에서 정치·종교적인 문제로 영구제명된 마수드 쇼자에이(33)와 에산 하지사피(27·이상 파니오니스)가 포함되느냐로 눈길을 끌었다. 케이로스 감독은 국내파 11명만 발표하고 해외파 12명은 28일로 미루면서 시간을 벌었다. 이란 내 이슬람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거센 상황이라 두 선수가 실제 퇴출될 경우 월드컵 티켓도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다.

쇼자에이와 하지사피가 퇴출된 것은 이스라엘 프로팀과의 경기에 나섰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이다. 이란은 올림픽을 비롯해 각종 스포츠 무대에서 1급 적성국가로 분류된 미국과 이스라엘 등과는 어떠한 형태의 교류도 일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엄중하게 처벌하며, 스포츠에도 같은 규정을 예외 없이 적용하고 있다.

그리스 파니오니오스에 소속된 두 선수는 지난 3일 아테네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3차예선 2차전에서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와 맞붙었다. 쇼자에이와 하지사피는 1차 원정(0-1패)에는 이란 정부의 방침을 이유로 출전을 거절했다. 그러자 소속팀이 벌금을 두 선수에게 매겼고, 결국 홈에서 열린 2차전(0-1패)에 뛰면서 퇴출이라는 황당한 징계를 받게 됐다.

쇼자에이는 이번 사건 직후 SNS를 통해 “이란은 나에게 늘 최우선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이란에 모욕감을 줄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했지만 퇴출이란 결과를 바꾸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란 현지 언론에서는 쇼자에이가 국가대표 자격 박탈을 넘어 축구선수로 활동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모하마드 레자 다바르자니 이란 체육부 차관은 8월 11일 방송에서 “쇼자에이와 사피 두 사람은 레드라인을 넘었다. 앞으로 대표팀에 초청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축구팬들은 이번 사태에 분노하고 있다. 수많은 팬들이 ‘우리 선수들을 징계하지 말라’는 뜻을 담은 #NoBan4ourplayer 해시태그를 달아 지지 성명을 보냈다.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6승2무 8골 무실점으로 당당히 본선행 티켓을 따낸 선수들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이번 사태를 확인한 뒤 조사에 착수하면서 사태는 다소 진정되는 듯했다.

퇴출 땐 FIFA의 ‘정치적 중립’ 위반

그러나 이란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여론에 상관없이 두 선수의 퇴출을 확정하겠다는 태도다. 이란 정부의 친위대로 유명한 혁명수비대와 그 견제세력이어야 하는 의회까지 쇼자에이 퇴출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란 내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실세들이 모두 두 선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혁명수비대는 “시온주의자들이 강토를 빼앗은 상태에서는 운동경기에서도 마주하지 말라는 오랜 규칙을 부정했다. 두 선수는 이제 어린이들을 죽이면서 지속적으로 부당한 주장을 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부끄러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비판했고, 이란 의회는 “점령과 암살, 침공과 배신의 정권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한다는 것은 수천의 순교자와 시오니스트 정부에 의해 집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불경”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란은 과거에도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이스라엘을 만날 때마다 논란을 일으킨 적이 많다. 이스라엘과 경기를 치를 때면 선수들을 철수시키거나 선수가 이를 거부하면 퇴출해 왔다. 이란 정부가 올해 2월 지브롤터에서 열린 체스대회에서 여성 체스 기사인 보르나 데라카샤니가 이스라엘 선수와 맞붙었을 때 철수 권고를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보르나의 자매도 이 대회에 참가했는데,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히잡을 벗고 대국에 임했다는 이유로 아예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문제는 이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 월드컵 퇴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FIFA는 2015년 10월 쿠웨이트 정부가 축구협회 등 체육단체에 행정 개입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자 자격정지 징계를 내려 쿠웨이트 축구대표팀이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 없도록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FIFA처럼 쿠웨이트의 자격을 박탈했다.

이란축구협회는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정부의 뜻대로 두 선수를 퇴출한다면 월드컵 본선행 티켓이 날아가게 생겼고, 그 티켓을 지키려고 두 선수를 보호하려면 엄혹한 세월이 뻔히 보이는 까닭이다.

한국 축구는 맞대결의 상대인 이란이 쇼자에이 논란에 빠지자 표정 관리에 바쁘다. 당장 이란이 월드컵에서 퇴출되지 않더라도 ‘이란의 박지성’이라 불린 자바드 네쿠남의 은퇴 이후 구심점 노릇을 했던 쇼자에이가 빠진다는 것만으로 긍정적이다. 한국은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승점 13점으로 본선 직행이 보장되는 조 2위에 올랐지만,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2)과의 승점차가 1점에 불과해 이란전에서 반드시 승리가 필요하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47)은 “이란이 스스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잃어버릴 만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징계는 없다는 판단 하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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