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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 막겠다” 묘안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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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김정은의 말폭탄 숨고르기… 문재인 대통령의 레드라인 언급 자충수인가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안심하고 믿으시길 바란다”고도 했다. 8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의 도발에 대해 강도 높은 압박과 제재를 가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합의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은 우리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누구도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대해서 어떤 옵션을 사용하든 그 모든 옵션에 대해서 사전에 한국과 충분히 합의하고 동의를 받겠다고, 그렇게 약속한 바 있다.” 정말 안심해도 되는 걸까.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군사행동, 한국 동의 필요” 맞나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 결정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 8·15 경축사의 메시지를 반복한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말한 ‘누구도’에 북한은 포함되지 않는다. 자동으로 남은 군사행동의 주체는? 미국이다.

의문은 이것이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을 할 때, 한국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참여정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을 역임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그는 참여정부 시절 국정 참여 경험에 기초해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라는 책을 썼다. ‘한·미동맹과 전시작전권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흔히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으로 요약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내 외교·안보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연구할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할 필독서로 거론된다. 책의 서두엔 한·미 군사 역학관계에서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일화들을 인용하고 있다.

2009년 8월 진행된 을지프리덤 가디언(UFG) 한·미 군사연습. UFG는 실제 필드에서 벌어지는 야외기동훈련이 아니라 워 시뮬레이션 연습 위주로 진행되는 훈련이다. “이미 남북 간의 국지적 충돌로 230만명이라는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김태영 당시 합참의장은 전시상태를 의미하는 데프콘1 선포를 주저했다. 며칠 동안 데프콘1 격상을 촉구하던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김 의장이 계속 미루자 주한미군 측에서 청와대가 피격당하는 사건을 가정해 데프콘1 선포-전면전 상황을 만들어냈다. 김 의원은 이 사건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데프콘 격상을 주저하던 김태영 합참의장에게 청와대가 피격당하는 상황을 제시한 월터 샤프의 행동이 바로 ‘전쟁을 피할 수 없도록’ 압박하는 미국의 권능이었다.”

또 다른 사례. 그해 12월 12일. 평양에서 그루지아 소속 수송기가 이륙하자, 오산에 있는 미7공군사령부 기지에서 이제까지 그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던 스텔스 무인정찰기가 활주로를 이륙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이 정찰기는 수송기 내부를 스캔해 실린 화물을 탐지했다. 미국 측은 태국 방콕의 돈므엉 공항에 착륙한 이 수송기를 전격 억류하고 승무원들을 구속했는데, 역시 김 의원에 따르면 “이 작전의 내용은 사전은 물론 사후에도 한국군에게 전혀 통보되지 않았다.” 경기도 오산의 미7공군사령부는 주한미군사령부나 한·미연합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 미태평양사령부로부터 직접 지휘를 받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흔히 ‘전작권’으로 요약되는 전시작전통제권(Wartime Operational Control·OPCON)은 현재 한·미연합사가 갖고 있다. 어느 나라든 군대 통수권은 대통령의 핵심 권한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한 달 만인 1950년 7월 14일에 한국군 지휘권을 맥아더 극동사령관 겸 유엔사령관에게 위임했고, 이틀 뒤 주한 유엔군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갖는 것을 확인하는 형식으로 넘어갔다. 유엔군, 사실상의 주한미군이 전적으로 행사하던 전작권은 1979년 한·미연합사가 창립해 다시 넘겨받았는데, 이때부터 형식적으로나마 한국군이 절반의 전작권을 행사하게 된다.

전략군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8월 14일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연합

전략군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8월 14일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연합

1987년 이후 전작권 환수는 역대 정부 모두 추진하던 과업이었다. YS 정권 시기, 전쟁이 아닌 평시작전권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로 넘어온다. 전작권 환수는 1995년 완전 환수를 목표로 추진되다가 한 차례 연기되었다, 다시 참여정부 때 ‘2012년’이라는 환수목표가 정해진다. 보수정부로 바뀌면서 다시 일정은 연기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2015년 12월로 늦춰진 환수는 박근혜 정부 들어 2020년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하고 협상하다가 실제 서명 때는 기한 없는 ‘무기한 연기’로 돌아갔다.

대세 장악했다는 대화파의 ‘실종’

8·15 경축사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전작권 환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전작권 문제에 대한 기조는 박근혜 정부의 바통을 이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언론에 배포했던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는 86번째 과제로 ‘굳건한 한·미동맹 기반 위에 전작권 임기 내 전환’이라는 목표가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7월 19일 청와대에서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최종안에서 ‘임기 내 반환’은 ‘조속히 반환’이라는 말로 대치되었다.

“너무 북을 모른다.” 김진향 여시재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참여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반도평화체계담당관을 지냈고, 2008년 2월부터 4년간 개성공단에서 북과 협상실무를 담당했던 김 연구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이나 8·15 경축사를 출력해 밑줄 치며 세 번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며 말을 꺼냈다. “금과옥조, 주옥 같은 말들이 가득 들어 있다. 국민주권, 촛불, 평화, 분단은 불행한 유산….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런데 ‘북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고, 북측이 추가적으로 핵개발을 중단해야 대화의 여건이 생긴다’고 했다. 북측의 입장에서는 난센스로 받아들인다. 주옥 같은 말들이지만 그 안에는 자기 부정의 논거가 가득하다. 연설문을 국가안보실에서 기안해 연설비서관실로 넘겨 다듬었을 텐데, 이런 ‘서로 충돌하는 말들’을 누가 만들었을까.”

“너무 북을 모른다”

김 교수는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일로매진하는 목표는 처음 시작한 30년 전부터 달라진 적이 없다고 했다. 북의 최종 목표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다. “휴전협정을 대신하여 평화협정이 맺어지지 않는 한 북핵문제는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시각이다. “데프콘3 상황만 되더라도 미국이 전작권을 가져간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들이 비핵화를 한다면 우리(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져 주겠다? 북은 리비아와 이라크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대북정책이나 제안, 좋은 것 많다. 그런데 그 전제조건으로 걸려 있는 ‘미사일·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 문제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면서 북측과 협상을 많이 해봤다. 이런 표현이 딱이다. ‘먹지 못할 음식을 차려놓고 잔칫상에 오라’는 격이다.”

[특집]“한반도 전쟁 막겠다” 묘안은 있나

의문은 이것이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이런 비판이 나온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필두로, 안보실 1·2차장, 외교부·통일부·국방부 장·차관, 국정원 등 외교·안보라인을 구성하는 핵심 10인이 모두 ‘대화파’ 내지는 자주파이며, 그나마 ‘동맹’과 관계를 다룰 대미·대중 외교협상 경력을 가진 인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유임된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유일하다는 비판이다. 동맹보다 자주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핵심인사 10인의 경력을 살펴보면 과거 남북회담이나 교류사업의 실무를 맡은 경력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나 조현 외교부 2차관처럼 ‘유엔 경력’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과의 관계에서 이해조정·협상 경력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표 참조) 월간지 <신동아> 2017년 8월호는 이상철 국가안보1차장을 ‘남북 군사회담에 수차례 참석한 경력을 가진 대북 대화론자’로 규정한다. 외교관 출신인 남관표 2차장과 권희석 안보전략비서관, 신재현 외교정책비서관에 더불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전 정권들과 비교해봤을 때 “좁게는 ‘청와대 친정체제 강화와 외교부 약화’ 현상이, 넓게는 ‘대북 대화파의 대세 장악’ 현상이 일정 정도 나타난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거꾸로 지난 100일의 외교·안보정책을 보면 “자주파가 대세”라는 비판이 무색하게 거의 ‘동맹파’에 가까운 목소리만 나오고 있다.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명합니다.” 지난 7월 4일 정오 청와대 지하벙커. NSC 상임위 회의가 열렸다.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북한이 오늘 또다시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정부는 무책임한 도발을 거듭 강력히 규탄합니다. 이런 도발은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며, 우리와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이번 도발로 핵·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정권의 무모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이 주재한 NSC 상임위원회 회의는 이날 오전 9시40분, 북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열렸다. 문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북한이 지금이라도 핵과 미사일 개발이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 비핵화를 위한 결단을 내릴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와 같은 강경발언을 내놨다. 7월 29일 새벽 1시. 다시 대통령이 주재하는 NSC 전체회의가 열렸다. 문 대통령은 이날 NSC 회의에서 ▲북한의 전략적 도발에 대한 대응조치로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발사 등 보다 강력한 무력시위 전개 ▲사드 잔여발사대 추가배치를 포함, 한·미 간 전략적 억제력 강화방안 즉시 협의 ▲유엔 안보리 소집 긴급요청, 강력한 대북제재안 마련 추진 ▲북한 추가도발에 대한 대북 경계태세 강화 등을 의결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조치만 놓고 보면, 앞서 두 보수정부의 대응수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북이 실제 ‘괌’ 포위타격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그런데 현실화할 가능성이 없다고 하지만 북한이 괌 포위사격을 실제로 실행한다면? 북이 한반도를 벗어나 그런 행동을 했을 때도 한국은 전쟁을 막기 위해서 미국에 무조건 참으라고 말할 것인가.”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의 말이다. 차 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 시기,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을 역임했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자신은 동맹론자이지만 동맹만능론도, 지상론자도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논리를 폈다. “모든 수단을 다해서 전쟁을 막겠다고 하지만 한국은 협상자원이 많은 나라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평화를 대전제로 하면서도 제재와 대화를 같이 거론하고 있지만, 제재를 대화로 가는 통과의례로 보이는 것은 미국이나 북한 모두에게 좋지 않은 메시지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이쪽 편(‘동맹’) 사이의 신뢰를 얻는 것인데 ‘전쟁만은 막겠다’와 같은 전제조건을 다는 것은 대북 협상력을 약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동맹 사이의 신뢰관계를 반드시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는 없다. 정부의 원칙적 입장을 천명하더라도 물밑에서 서로 조율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열리던 시각, 프레스센터에서는 ‘세상을 걱정하는 재야 사람들’의 한반도 전쟁 도발 음모 분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정용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열리던 시각, 프레스센터에서는 ‘세상을 걱정하는 재야 사람들’의 한반도 전쟁 도발 음모 분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정용인 기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전쟁만은 막겠다”는 것에 대해 당장 우리가 손에 쥔 ‘카드’는 거의 없다는 데 대부분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시각은 비슷하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북이 스스로 핵을 생존과 동일한 지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생존과 맞바꿀 교환의 대상이 없다는 것”이라며 “거래를 전제로 한 어떤 종류의 제안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북은 스스로 설정한 핵개발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시점까지 우리 정부가 제안하는 대화 자리에 나오지 않을 것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 시점이 향후 1~2년, 늦어도 문재인 정부 임기 내라는 점”이라며 “그때까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평화체제 구상과 비핵화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우고 한·미동맹을 활용해 국민의 안보불안을 불식하고 대화의 모멘텀 확보 시점에 대비하며 주변국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악조건’ 물려받은 문재인 정부

쉽게 말해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묘하게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바로 대북송금 특검과 북한 핵개발 추진으로 악화된 참여정부 초기 상황이다. DJ정부 시기의 6·15를 잇는 10·4선언이 나온 것은 참여정부 임기 후반이었다. 보수정부가 들어서자 10·4선언을 통해 합의된 많은 조치들은 자동폐기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 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 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0·4선언 합의를 깬 것은 우리 쪽 보수정부였다. 대화국면이 문재인 정부 3년, 4년차에야 온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재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재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 입장에서 변명해보면 워낙 악조건을 물려받은 것이다. 남북관계가 나빠지는 것도 과정이고 좋아지는 것도 과정이다.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천명한 것에 대해 “여러 우려를 충분히 고려해 이야기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트럼프 정권에 대해 “우리 입장을 분명히 할 때는 분명히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그의 말.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이 미국이나 우리가 다르지 않다고 말했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부분을 풀어갈 때는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차이가 나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전략이 분명해야 한다. 미국에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고,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차이가 난다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지, 어떻게든 피해가려 해서는 안된다.” 참여정부 초기 북핵국면에서 NSC 사무차장을 맡았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한겨레>에 ‘동맹에게 자제를 요구하는 용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김 교수 말과 비슷한 맥락의 주장이다. “정부는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 대해 준엄하게 경고하는 한편 미국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자제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미국 정부에 평화적 해결을 약속해놓고 왜 군사적 수단을 입에 올리는지 따져야 한다. 아무리 약소국 동맹이지만 우리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 그렇게 식언을 해도 되는 것인지 엄중히 묻고, 또 필요한 행동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

“대통령 ‘레드라인’ 성격 규정은 패착”

“이 말은 꼭 써줘야 해. 앞으로는 기자회견만 하지 않겠다. 촛불 들고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끌어냈듯, 트럼프를 규탄하기 위해 촛불, 아니 횃불을 들고 길거리에 나서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열리던 시간, 프레스센터에서는 ‘한반도 전쟁 도발 음모를 분쇄하자!’는 주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주간경향>의 ‘기자회견 이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날 기자회견을 사실상 주도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말이다(기자회견의 정식 주최자는 ‘세상을 걱정하는 재야 사람들’로 되어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규탄 대상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었다. 백 소장이 직접 작성한 기자회견문에는 “이 땅을 불더미로 만들겠다는 막말, 막된 생각을 걷어치우고 사과하라”고 적혀 있었다. 백기완 소장의 제안으로 긴급하게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은 시인도 참석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고은 시인은 “트럼프가 한반도의 운명을 넘보고 있다”며 “살고 싶어서, 우리 자손들에게 핵 낙진이 떨어지는 일이 없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요구나 주문이 따로 나오지는 않았다.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정책 전환의 기준선, 이른바 레드라인(red line)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 ICBM 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것은 실수 내지는 패착이라는 데 대부분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시각은 수렴된다. DJ·참여정부 시기 햇볕정책 실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사는 이렇게 우려를 덧붙였다. “북이 핵탄두를 실어 실전 배치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걸 완성하면 선을 넘었다고 이야기하면 거꾸로 ‘우리가 선을 넘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식으로 답할 여지를 주게 된다. 미국도 과거 여러 차례 ‘레드라인을 넘지말라’고 경고했지만, 그 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밝힌 적이 없다. 즉홍적인 답이라면 대통령의 생각이 짧은 것이고, 준비된 답변이라면 보좌하는 사람들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인사는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숨고르기를 하면서 지켜보는 것은 당장 8월 21일부터 열리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다. 그때 괌에서 전략자산이라고 하는 핵폭격기를 띄우지 않도록 미국 측에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다. 미국 측에 꼭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대외적 체면이나 우리가 평화체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할 때가 아니지 않는가.” 과연 대한민국은, 그리고 북한이나 미국은 실기(失機)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판명날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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