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공방’ DR시장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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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업들에 전력감축 지시… 야당은 “탈원전 합리화” 주장

국내 전력거래 시스템에는 ‘수요반응(DR·Demand Response) 거래시장 제도’라는 게 있다. 쉽게 풀자면 정부가 전기 사용량을 줄이라고 요구해 이에 응하면 그만큼 금전적으로 보상해주는 제도다. 현재는 기업들만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가정까지 확대할 방침인데, 이 제도가 최근 탈원전 공방의 한가운데에 서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환경단체 “피크전력 수요관리는 당연”

정부는 지난달 DR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에 두 차례 전력감축을 지시했다.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합리화하려는 행태라고 비난공세를 폈다. 무더위로 전력수요가 많아지니 강제로 전기 사용을 줄이라고 지시했고, 이는 전력예비율을 높게 유지해 탈원전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나 환경단체에서는 전력수요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 미세먼지 주범으로 지목된 석탄화력발전소나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편다.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의 한 직원이 전력수급 현황판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전력공사 경기지역본부의 한 직원이 전력수급 현황판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전력감축 지시에 대해 자유한국당에서는 “원전 폐기를 밀어붙이다가 전력수요가 높아지니 기업을 몰래 옥죄는 전력감축 지시를 내린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도 “만일 급전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전력예비율은 10%에 그쳤을 것”이라며 “정부가 전력예비율을 높게 유지해 탈원전 논리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DR시장에 참여한 기업들의 계약 해지도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DR제도는 시장을 통해 보상을 받는 메커니즘으로, 기업들의 전기 사용을 강제로 막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7월 이후에도 참여 기업의 계약 해지는 없다”고 반박했다. 환경운동연합도 논평을 내고 “정부가 피크전력 수요를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발전소를 더 짓지 말고 수요관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서도 시행 중인 DR제도는 전기 사용자가 전기를 아낀 만큼 금전적으로 보상받는 것이 골자다. 참여 기업은 전력감축을 통해 아낀 전기를 전력시장에 판매하고 금전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11년 9월 대정전(블랙아웃) 이후 정부가 전력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자 2014년 11월 도입했다.

참여 기업들은 급전 지시에 맞춰 전력소비를 줄여 실적 정산금을 받는다. 정부 지시가 없어 전력소비를 줄이지 않더라도 기본 정산금을 받는다. 급전 지시를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은 없다. 그래서 전력예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셈이다.

정부 “일반 가정까지 DR시장으로 확대”

DR시장 참여 기업은 해마다 늘고 있다. 시행 첫해인 2014년에는 861개에 불과했으나 2015년 1519개, 지난해엔 2223개 기업이 참여했다. 올해에는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은 3195개 기업이 DR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대기업 사업장은 616개로 18.3%를 차지한다. DR시장 참여 기업과 전력거래소를 연결해주는 사업자들의 모임인 수요관리사업자협회에 따르면 별도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도 수익을 낼 수 있어 시장 가입을 문의하는 업체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현재 DR시장에서 확보된 전력은 총 4352MW (4.3GW)로 원전 3~4기 규모에 해당한다. 제도 시행 후 현재까지 714GWh의 전기를 절감했다. 이는 지난해 세종시의 주택용 전기소비량의 2배에 달하는 양이다. 전 세계 DR시장 규모는 2015년 18억 달러(약 2조500억원)에서 2030년엔 180억 달러(약 20조5000억원)로 10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DR제도가 탈원전 정책 공방의 도마에 오르자, 이인호 산업부 차관은 DR시장의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며 8월 10일 현대제철 인천공장을 찾았다. 현대제철은 당진·인천 등 4개 공장에서 연간 229㎿h를 감축할 수 있다고 약정한 상태다. 야권과 일부 언론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히려 DR제도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차관은 현대제철을 방문한 자리에서 “DR시장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가정도 참여할 수 있는 ‘국민 DR시장’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연간 60시간 전력감축에 동의해야 하는 DR시장 진입 요건을 완화하고, DR제도를 아파트나 상가 등 일반가정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할 계획이다.

정부나 탈핵을 주장하는 환경단체는 DR제도가 정착되면 원전 등 발전소 건설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전력수요를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한 에너지 업체가 국민DR 실증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실증시험 대상 가구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특정 시간 동안 전력감축을 요청받으면 조명을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참여한다. 산업부는 실증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DR 운영규칙과 보상방식 등을 정하고 내년부터 시범사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DR시장을 가정까지 확대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놓고서도 탈원전 반대 진영에서는 정부가 원전을 더 지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만들려고 일반가정의 전력 사용까지 줄이려 한다고 비판한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DR제도는 가정의 일상생활과 기업의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며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요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영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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