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대신 승부수’ 안철수, 국민의당 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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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 출마 선언… 국민의당, 격렬한 권력다툼 예고

안철수가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8월 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27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며 지난 7월 12일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취업특혜의혹 제보’ 조작사건에 대해 사과한 지 22일, 검찰이 제보 조작사건에 안 전 대표를 포함한 국민의당 윗선은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사흘 만이다.

대선 패배 후보가 선거과정 벌어진 문제의 ‘법적 책임’을 면제받자마자 당권에 도전한 모양새다. 당내 여론은 엇갈렸다. 주승용 의원(4선) 등 당내 의원 12명이 공동으로 안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반면, 평당원이나 온라인 당원·지역위원회 등 원외그룹에서는 “‘불출마’를 바랐지만, 출마한다면 밀어주겠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적극적으로 출마를 요구한 목소리도 있었다. 당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안 전 대표의 조기 귀환으로 국민의당에는 격렬한 권력다툼이 예고됐다. 반면 국민의당이 창당 이후 늘 갖고 있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기회라는 전망도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3일 여의도 당사에서 8·27 당대표 선거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3일 여의도 당사에서 8·27 당대표 선거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출마 왜?

“제가 살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선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출마의 변(辯) 곳곳에 ‘창업주’로서의 애착과 위기감이 묻어났다. 안 전 대표는 “당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당 자체가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이 엄습하고 절망과 체념이 당을 휩싸고 있습니다…(중략)…조국을 구하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 안중근 의사의 심정으로 당을 살리고 대한민국 정치를 살리는 길로 전진하겠습니다.” 1998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사례처럼 대선에 패해도 곧바로 당권을 장악하며 ‘차기’를 노리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상황이 다르다. 제보 조작사건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에 발이 묶여 정계은퇴 요구까지 받고 있다. 같은 날 발표된 의원단의 성명도 이 점을 지적했다. 김경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시기가 좋지 않다”며 불출마가 낫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선언했다. CEO 출신 정치인 특유의 기질일까.

2012년부터 안 전 대표와 함께 활동하는 한 핵심 관계자는 이 질문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 전 대표가 ‘최근 2주’ 동안 당내 상황을 보며 마음을 굳혔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2주 전 개인적으로 만나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묻기에 ‘나오지 마라’고 조언했다. 안 전 대표 개인을 위해서도 그게 좋았고, 당 차원에서 ‘안철수 사당(私黨)’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었다. 이것이 측근들 열에 아홉의 의견일 것이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혁신위원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고 고민을 거듭했다. 정말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당이 위험하겠다고 판단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본다. 국민의당 청년 기준 상한선 변경은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다.”

당 중앙위원회는 7월 27일 기존의 청년 기준을 만 39세 이하에서 만 45세 이하로 변경하고, 청년·여성위원장을 전 당원 투표로 선출하는 당헌 개정안을 처리했다. 농촌지역에서는 40대 이하의 젊은 청년 당원을 찾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을 청년·여성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혁신위의 생각과 배치되는 방향이었다. 청년위원회도 7월 30일 성명을 내고 당 지도부의 의견을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청년·여성위원장을 각각 전 당원 투표로 선출하도록 돼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전했다. 청년과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당 분위기를 바꿔야 하는데 바뀐 규정대로라면, 위원장이 청년·여성 당원들의 대표자이기보다는 자율성을 잃고 중진의원들의 ‘러닝메이트’로 전락할 위험이 생긴다. 그러나 지도부는 전 당원 투표로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이 청년·여성 당원 위상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제보 조작사건이 폭로한 당의 실체

의원단 중심의 당 지도부와 혁신위원회 간 균열이 드러나면서 안 전 대표가 복귀할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안 전 대표의 조기 귀환을 부채질한 가장 큰 원인은 호남계 의원들이 당의 간판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안 전 대표의 가장 큰 약점이 ‘제보 조작사건’이다. 정치적 책임과 윤리의식이 부족한 벤처기업인 출신 당원이 조작한 증거를 기술에 무지한 정치인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활용했다가 망신을 당한 사건이다. 국민의당의 정체성과 약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당 차원의 안이한 대응으로 인해 천정배·정동영 의원 등 ‘호남계’의 정치적 약점도 됐다. 김태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의 발언에서도 이 점이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7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혁신위원회 간담회에서 “원자폭탄 같은 (문준용씨 취업특혜 의혹) 제보 조작사건이 터졌는데 (당이) 반응을 하지 않는다”며 “솔직히 힘이 많이 든다. 대선 패배와 함께 제보 조작사건이 터진 일 자체가 힘든 게 아니고, 두 사건이 터졌음에도 당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7월 4일에도 기자간담회를 통해 “(제보 조작사건과 관련) 각자 자신의 무고 증명에 급급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한 당직자는 “‘윗선 개입이 없었다’고 결론이 난 것에 안도할 처지가 아니다. 정말 창피한 일이다. 당에 시스템이 없다는 의미다. 더구나 아직까지 당 차원의 책임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거 후 당의 중심이 된 호남계 의원들이 민주당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국민의당은 원내 제3당이지만 정당 지지율은 제보 조작사건 이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8월 1~3일 갤럽조사 결과 국민의당 지지율은 5%였다. 민주당(46%), 자유한국당(11%), 바른정당(10%), 정의당(6%) 순이었다. (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의원단 등 당 지도부의 태도가 안이하게 비쳐졌다는 점이다. 총선 직후부터 ‘안철수 사당’으로 평가받던 국민의당은 ‘당’이 아님이 드러났으며, ‘사당’이라도 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탁영환 한국정책연구원장은 “호남계 의원들이 호남의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탁 원장은 광주교대 외래교수 등을 역임하며 광주에서 정치학자·정당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호남인들이 다당제를 원하는 이유는 적대적 양당구조 하에서 더 이상 민주당의 노예가 되기 싫다는 의미”라며 “안철수 전 대표의 대선보다 다당제에 훨씬 더 애정이 있다”고 말했다.

‘철수 대신 승부수’ 안철수, 국민의당 구하나?

안철수 전 대표가 정치권에 들어와서 이뤄낸 가장 큰 성취로 평가받는 것이 ‘국민의당’ 창당으로 한국 정치에 ‘다당제’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2012년부터 줄곧 부르짖던 ‘새 정치’의 구호 중에 성과로 유일하게 가시화된 것이기도 하다. 출마선언문에서도 강조했다. “원내 제3정당이 무너지는 것은 당원만의 아픔이 아닙니다.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입니다. 국민은 그저 포퓰리즘의 대상이 되고 정쟁에 동원될 것입니다.” 안 전 대표는 당 대표에 당선된다면 우선 당내 시스템을 정비한 뒤 오는 9월 이전 바른정당과의 합당 내지 정책·선거 연대를 통해 당의 외연을 넓혀 ‘제3당’ 체제를 구축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당의 이름을 지우더라도 다당제 체제만은 지켜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집단탈당까지 감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당제’ 구도의 강화에 가까운 민주당과의 합당을 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안 전 대표가 부르짖는 ‘다당제’ 구도가 당 전체의 비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례대표인 이상돈 의원은 3일 안 전 대표의 출마선언 후 YTN 인터뷰에서 “합당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고, 당 대표가 됐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얘기하는 게 아니다”라며 “호남 정서를 보면 바른정당과의 합당 같은 것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의석 40석이 있는 만큼 추경 및 법안 처리와 인사 문제만으로도 ‘다당제’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당의 진로에 대한 전망이 제각각이다. 정책을 통한 차별화는 엄두도 못낼 단계다. 이는 대선 패배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 국민의당의 주축세력이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민주당(친문계)’에 대한 반감으로 뭉쳤지만 공통된 목표나 정견 없이 ‘안철수’의 당선 가능성이 매개였다는 점이 대선 패배 후 위기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권력투쟁, 나쁘지만은 않다

안 전 대표의 출마선언은 가뜩이나 제보 조작사건으로 흠집이 난 당에 격렬한 권력투쟁을 몰고올 것이라는 전망으로 귀결된다. 당내에서는 의원단을 중심으로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반응이 당의 ‘내홍’처럼 비쳐지자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특정인 출마에 대한 시시비비나 과열된 논쟁을 모든 당직자들이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의 상황을 나쁘지 않게 보는 여론도 있다. ‘권력 나눠먹기’가 될 뻔했던 전당대회가 본격적으로 당이 창당 이후 진작 논의했어야 할 근본 노선에 대해 논쟁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만들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안 전 대표의 보좌관이었던 이수봉 인천시당위원장은 “안 전 대표의 경우 항상 동교동계 등 다른 정치세력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걸고 독자세력으로 승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치의 본질이 ‘싸움’이라면 ‘새 정치’를 이유로 ‘본질’을 비켜 가려 했던 ‘정치인 안철수’는 진짜 정치의 무대에 올라서는 셈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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