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유통업계, 중국발 사드 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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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의존도 높을수록 직격탄… 사업 다각화한 업체는 여유

올 상반기 유통업계는 중국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조치라는 초강력 악재에 휘청였다. 중국 정부가 한국 여행을 금지시키는 ‘한한령’을 발동시키며 중국인 관광객(유커) 매출 의존도가 높았던 면세점과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았고, 화장품과 제과 등 한류 바람을 타고 대중국 사업 비중을 키워온 기업들 역시 내상을 입었다. 운명을 가른 건 ‘중국 의존도’였다.

‘한류 화장품’ 대표 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희비가 엇갈렸다. 아모레퍼시픽이 2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며 휘청거린 반면, LG생활건강은 반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올 3월 15일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빠져 텅빈 제주 롯데면세점 모습. / 연합뉴스

중국의 '사드 보복’이 전면적으로 확대된 올 3월 15일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빠져 텅빈 제주 롯데면세점 모습. / 연합뉴스

아모레퍼시픽·오리온 등 매출 급감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지난 2분기(4~6월) 매출액은 1조20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5%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7.8%나 급감한 1016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까지도 1조5690억원의 매출에 3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한 3월 중순 이후부터 실적이 급격히 쪼그라든 것이다. 그 결과 아모레퍼시픽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5.3% 줄어든 2조7740억원, 영업이익은 27.7% 감소한 4184만원을 기록했다.

유커들의 면세점 매출 비중이 큰 아모레퍼시픽은 면세점 매출 급감에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중국인 관광객 감소가 명동 등 주요 상권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고 백화점 등 대형 유통채널의 판매가 부진했던 것도 실적을 끌어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니스프리 등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내 중저가 브랜드가 강세를 보였지만 고가 화장품의 매출 부진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매출 3조1308억원, 영업이익 4924억원을 달성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 7.3% 증가했다. 2분기 매출은 1조530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역신장했지만 영업이익은 2325억원을 달성하며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LG생활건강 역시 국내 중국인 관광객 매출비중이 컸던 만큼 3월 중국의 금한령 이후 유커의 발길이 끊긴 국내 면세점에서의 매출 타격이 컸다. LG생활건강의 올 상반기 면세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후’와 ‘숨’ 등 럭셔리 화장품 매출이 상승하며 국내 매출 부진을 상쇄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폭이지만 국내 백화점과 방문판매 매출이 지속 성장한 것도 도움을 줬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도 LG생건의 실적 방어에 힘을 실어줬다. LG생건은 화장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과 음료 등을 주요사업으로 운영 중이다. 5월부터 시작된 이른 더위로 ‘씨그램’, ‘토레타’, ‘갈아만든 배’ 등의 음료 매출이 늘며 상반기 매출을 끌어올린 것이다. LG생건 음료사업은 2분기 매출 3757억원, 영업이익 4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3%, 28.1% 증가했다.

LG생활건강·롯데제과는 성장세

국내 제과업계 ‘빅2’인 롯데제과와 오리온도 중국 의존도가 희비를 갈랐다. 두 기업 모두 일찌감치 중국 진출에 성공한 한국 기업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내오며 매출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가져오던 상황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매출의 절반을 중국법인에 의존하고 있는 오리온은 올해 2분기 중국사업의 적자가 불가피한 반면, ‘포스트 차이나’에 공을 들이며 중국 의존도를 낮춰온 롯데제과의 실적은 개선됐다.

롯데제과에 따르면 올 상반기 8개국 해외법인으로부터의 매출액 합계는 284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약 5.8%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60억원으로 전년보다 38.9% 늘었다. 반면 오리온의 중국법인은 2분기 1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인도와 러시아, 베트남,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벨기에, 싱가포르 등 8개국에 해외법인을 두고 있는 롯데제과는 특히 카자흐스탄과 파키스탄에서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상반기 946억원의 판매액을 달성하며 전년 동기 대비 30.7% 신장을 기록했고, 파키스탄 또한 54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10%의 매출 증대를 기록했다. 2010년 이후 현지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본격 진출한 카자흐스탄과 파키스탄 시장이 2배 가까운 성장(현지 통화 매출액 기준)을 이뤄내며 롯데제과의 해외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잡았다는 평이다. 이와 같은 성장에 힘입어 롯데제과는 올 상반기 사드 여파로 인해 중국에서 매출이 기존 379억원에서 194억원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반면 최근까지 중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 매출 기록을 갈아치우며 ‘황금알을 낳던’ 오리온은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1993년 중국에 진출한 오리온은 철저한 시장분석과 현지화 전략을 앞세워 현지 2위 제과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중국 시장을 발판 삼아 2015년까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왔다. 지난해 기준으로 오리온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중국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6.4%, 60.9%에 이른다.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가 오히려 독이 된 상황이다.

오리온은 이참에 사업 다각화를 통한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건강기능식품 등 신사업을 통해 내수부진과 중국 판매 위축으로 악화된 시장 환경을 돌파한다는 전략에서다. 건기식 외에도 기능성 음료, 간편 대용식 등 신규사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으로 유통업계가 울상을 짓고 있는 가운데 중국 의존도를 낮춰온 업체들은 이번 ‘사드발 리스크’에 한층 여유로운 모습이다”라며 “향후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중국 외 해외영업이나 신사업 모색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정연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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