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의 마법사 ‘도움 100개’ 첫 고지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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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은 “후배들이 (이)동국이 형의 득점 기록(196골)을 보면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며 “도움 기록에선 내가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도움 100개는 어떤 기분일까요?”

프로축구 수원 삼성 미드필더 염기훈(34)은 요즈음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도움이 어느덧 95개. 후반기로 접어든 K리그에서 그가 도움 5개만 추가한다면 ‘100도움’의 금자탑을 세운다.

7월 29일 베트남 하노이 미딩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 동남아시안(SEA)게임 대표팀과 K리그 올스타팀의 경기에서 올스타팀 염기훈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연합뉴스

7월 29일 베트남 하노이 미딩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 동남아시안(SEA)게임 대표팀과 K리그 올스타팀의 경기에서 올스타팀 염기훈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연합뉴스

100개까지 5개, 60-60 클럽도 1골 남아

염기훈은 지난 8월 2일 울산의 한 호텔에서 <주간경향>과 만나 “은퇴를 앞둔 베테랑이라 기록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며 “100도움은 K리그에서 내가 첫 도전이라 더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염기훈의 100도움 도전은 꾸준한 활약의 결실이다. 2006년 전북에서 데뷔한 염기훈은 12년간 K리그를 대표하는 도우미로 군림했다. 특히 2015년 17도움으로 생애 첫 도움왕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에는 도움 15개를 기록해 2년 연속 도움왕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올해도 7도움을 기록하며 이 부문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통산 도움에서는 라이벌을 찾기 힘든 압도적인 1위. 한국을 떠난 몰리나(전 서울·69개·2위)와 은퇴한 신태용 감독(68개), 이동국(전북·68개·이상 공동 3위)을 훌쩍 넘어섰다. 현역선수로 따진다면 이동국이 그의 뒤를 좇고 있지만 꽤 차이가 난다.

염기훈은 “후배들이 (이)동국이 형의 득점 기록(196골)을 보면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며 “도움 기록에선 내가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100개가 아니라 120개까지 도움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왼발의 마법사 ‘도움 100개’ 첫 고지 눈앞

염기훈이 원래 도움 기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는 “축구의 꽃은 사실 골이 아니냐”며 “솔직하게 말하면 얼마 전까지 내 첫 도움 기록이 어떤 경기인지도 몰랐다. 알고보니 그 상대가 지금 유니폼을 입고 있는 수원이더라. 그 수원에서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며 웃었다.

염기훈은 가족들의 응원에 부쩍 힘을 내고 있다. 아내 김정민씨와 아들(선우)과 딸(효주) 등 온 가족이 홈경기만 찾던 예전과 달리 원정까지 따라다닌다. 염기훈은 “아이들이 부쩍 아빠가 축구선수라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 (은퇴한) (곽)희주 형이 ‘아빠가 축구선수였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고 하더라. 당당한 아빠가 되려면 축구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기훈이 부지런히 도움 기록을 쌓으면서 또 다른 기록도 임박했다. 염기훈은 ‘60-60 클럽’(60골·60도움) 가입에도 1골만 남겨놨다. 60-60 클럽은 1983년 K리그 출범 이래 34년간 그라운드를 누빈 수많은 선수들 중에 신태용 감독(99골·68도움)과 에닝요(전 전북·81골·66도움), 몰리나(68골·69도움), 이동국(196골·68도움) 등 4명의 선수만 달성한 대기록이다. 염기훈은 올해 팀 사정에 따라 전진배치돼 4골을 터뜨리며 가입시기를 앞당기게 됐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염)기훈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힌 것 같아 미안했다”며 “그래도 60-60 클럽을 빨리 달성했으니 다행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프리킥과 코너킥 세트피스에서 35개나

염기훈은 서 감독의 전언을 듣고 “선수로 11년간 왼쪽 날개로 뛰다가 올해 앞선에서 뛰니 골 넣는 선수들의 어려움을 잘 알게 됐다”고 은근한 불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60-60 클럽에 필요한 1골을 위해 필요한 로비도 잊지 않았다. 염기훈은 “1골만 넣으면 60-60 클럽을 달성하니 페널티킥 1개만 먼저 달라고 감독님과 선수들에게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다”며 “그런데 요즘에는 심판 분들이 페널티킥을 좀처럼 불지 않는다”고 말했다.

염기훈은 왼발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도움 기록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염기훈은 왼발(82개)과 오른발(4개), 머리(8개), 손(1개·스로인) 등을 활용해 도움을 만들어냈다.

수원 삼성 미드필더 염기훈(가운데)이 8월 2일 울산의 한 호텔에서 자신을 응원하러 방문한 팬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황민국 기자

수원 삼성 미드필더 염기훈(가운데)이 8월 2일 울산의 한 호텔에서 자신을 응원하러 방문한 팬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황민국 기자

골잡이 앞에 택배처럼 떨어지는 왼발 크로스와 세트피스가 일품이다. 특히 승리의 보증수표라는 세트피스에선 프리킥(18개)과 코너킥(17개)을 합쳐 35개의 득점을 배달했다. 염기훈이 공을 찰 때면 상대 수비수들과 골키퍼가 긴장할 법도 했다. 염기훈은 “도우미는 상황에 따라 최적의 궤도와 각도로 패스를 전달해야 한다”며 “골키퍼와 수비수 앞에 공을 떨어뜨리는 게 가장 이상적인 킥이다. 그럴 때 나도 기분이 좋다. 그 순간을 위해 수많은 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동료와의 믿음이다. 동료들은 그가 공을 찰 때 최선을 향해 달리면 골 찬스가 온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서 감독은 “어떤 선수도 염기훈과 같이 뛰다보면 찰떡궁합이 된다”고 말했다. 올 시즌 K리그 최고의 골잡이 조나탄은 올해 염기훈이 배달한 세 번의 패스를 득점으로 바꿨다. 100도움 도전 가도에 가장 든든한 동료다. 지난해엔 K리그 클래식과 FA컵을 합쳐 14골을 넣고도 도움 하나 없던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염기훈은 “예전에는 산토스가 나와 찰떡궁합을 자랑했다면, 이젠 조나탄이 그런 선수”라며 “100번째 도움도 그 선수의 발에서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염기훈은 100도움을 달성하는 상대가 기왕이면 친정팀이자 선두를 달리는 전북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드러냈다. 염기훈은 “스플릿이 나뉘기 직전의 마지막 상대가 전북이고, 상위 스플릿으로 올라가면 한 차례 더 기회가 있다. 두 경기 중 한 경기에서 100도움을 쌓았으면 한다. 조나탄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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