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델타항공 조인트벤처 ‘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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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노선 정식 협정… 경쟁 항공사, 시장 독점화 우려

대한항공이 미국 3대 항공사 중 하나인 델타항공과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를 설립하면서 양국 항공업계가 떠들썩하다. 미국 중견 항공사가 공개적으로 견제 움직임에 나서는가 하면, 국내 항공업계도 시장 쏠림을 우려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두 번째)과 에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최고경영자(오른쪽 세 번째)가 6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윌셔 그랜드 센터에서 양사간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운영을 통한 협력 강화 내용을 담은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두 번째)과 에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최고경영자(오른쪽 세 번째)가 6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윌셔 그랜드 센터에서 양사간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운영을 통한 협력 강화 내용을 담은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조인트벤처란 서로 다른 두 항공사가 스케줄·운임·마케팅 등을 포함해 하나의 항공사처럼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노선 공동운영으로 수익과 비용을 공유하는 합병 이전의 가장 높은 수준의 제휴 단계다. 좌석 일부와 탑승 카운터, 마일리지 등을 공유하는 공동운항(코드셰어)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협력 단계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7월 18일 양사의 조인트벤처 운영 인가 신청을 한국 국토교통부와 미국 교통부에 제출했다. 앞서 두 회사는 지난 3월 조인트벤처 출범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6월에는 정식 협정에 서명했다.

하와이안 항공·제트블루항공 진정서
양사는 조인트벤처를 통한 태평양 노선 공동운항 확대로 경쟁력 강화와 아시아·미국 시장에서 공동판매 및 마케팅 확대, 핵심 허브 공항에서의 시설 재배치·공유를 통한 수하물 연결 등 일원화된 서비스 제공, 마일리지 서비스 혜택 강화, 여객기 화물 탑재 공간을 이용한 항공화물 협력 강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인트벤처 설립은 인천국제공항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대한항공은 전망했다. 스케줄 조정으로 환승시간이 줄고, 일원화된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한국을 경유하는 환승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한항공은 올해 말 대한항공과 스카이팀 전용 인천공항 제2 터미널 개장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최근 아메리칸항공과 일본항공, 유나이티드항공과 전일본공수 등의 조인트벤처가 생기면서 일본으로 향했던 환승 수요가 인천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주목된다.

소비자들의 경우 미주~아시아 지역 연결편 항공권을 더 싸게 살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노선과 스케줄이 늘어나는 한편, 환승시간과 거리도 짧아져 한 항공사 항공편을 고르는 것처럼 편해질 것이라는 게 대한항공의 설명이다. 두 항공사는 또 델타가 취항하는 미주 내 290여개 도시와 대한항공이 취항하는 아시아 내 80여개 도시도 유기적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조양호 한진 회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벤처 협정식에서 “양사 조인트벤처 협력은 편리한 연결 스케줄 제공을 비롯해 소비자들의 혜택을 크게 증진시킬 것”이라며 “인천공항 제2 터미널 개장과 함께 인천공항 환승 수요 증가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델타의 바스티안 최고경영자도 “양사 네트워크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다양하고 편리한 스케줄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게 됐다”며 “고객, 임직원, 주주를 위한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회사의 조인트벤처를 바라보는 경쟁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당장 미국 하와이 최대 항공사인 하와이안 항공이 6월 5일 미국 국토교통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의 조인트벤처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의 저비용항공사 제트블루항공도 비슷한 내용의 진정서를 미국 항공당국에 제출했다.

이들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조인트벤처를 설립할 경우 태평양 노선의 독점화가 진행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한·미 노선에서 대한항공의 시장점유율은 49.8%, 델타항공은 9.7%였다. 두 항공사의 조인트벤처가 탄생하는 것만으로도 점유율이 50%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상 시장점유율 50%(매출액 기준)를 넘는 업체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 소비자 권익 침해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의 조인트벤처가 6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로 독과점이 심화, 소비자 권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반면, 코드셰어 등 기존 제휴에 비해 조인트벤처로 인한 소비자들의 편익이 현저하게 증대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경쟁업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대한·델타항공 조인트벤처 ‘시끌’

시장점유율 60%에 육박할 듯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인트벤처 효과는 주로 승객 수송에서 나타나고 통상 소비자보다 항공사가 수혜를 본다”면서 “복수 경쟁 노선에서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하나의 회사처럼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경우 해당 노선의 경쟁 활성화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독점적 지위로 노선 운임을 좌우하면서 가격이 인상될 수도 있고,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점유율 하위 항공사가 경쟁에서 퇴출될 경우 조인트벤처가 가격을 온전히 결정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법무부 산하 반독점국 경제분석그룹이 시행한 조인트벤처의 반독점면제(ATI) 연구에서는 조인트벤처로 경쟁사가 1개 줄어들면 평균 운임이 4.7% 상승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조인트벤처나 인수·합병 같은 경쟁 저해행위가 지배적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시켜 소비자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방증이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조인트벤처 운영이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해야 하는 셈인데, 조인트벤처 시행에 당장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두 회사 모두 조인트벤처 시행상 핵심 요소인 ATI 권한을 취득했기 때문인데, ATI 승인을 받은 경우 타 경쟁업체들의 법적 제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2002년 미국 교통부로부터 반독점 면제 권한을 취득한 데 이어, 2007년 대한민국 국토교통부로부터 제휴에 대한 승인도 받았다. 또 미 교통부는 항공사 간 조인트벤처를 통해 소비자 편의가 증대된다는 점을 인정해 조인트벤처에 별다른 이의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 교통부가 불허한 사례는 2016년 11월 콴타스항공과 아메리칸항공의 조인트벤처 1건에 그쳤다.

우리나라 국토부가 항공사 간 조인트벤처를 심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대한항공은 이미 제휴 관련 승인을 취득한 상황이어서 별다른 문제 없이 승인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의 조인트벤처 협력은 타 항공사의 진입이나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다”면서 “이미 태평양 노선에서 유나이티드항공과 전일본공수, 아메리칸항공과 일본항공이 조인트벤처를 실시하고 있는 만큼 한시라도 빨리 국적 항공사가 조인트벤처를 시행해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준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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