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숙 국립국악원장 “어릴 때부터 국악 접할 기회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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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이후 ‘국악의 대중화’ 기치로 내걸어

서울 서초동 우면산 자락에 터를 잡은 국립국악원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어린이를 위한 ‘국악동화’ 공연이 열린다. 어린이 연극과 뮤지컬, 인형극 등의 작품을 우리 전통음악과 결합한 공연으로, 영·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어린이 동반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해 3월 첫선을 보인 이후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큰 호응을 얻은 이 공연에는 김해숙 국립국악원장(63)의 ‘갈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우철훈 선임기자

“국어와 국사는 필수인데, 왜 국악은 아닐까요? 유·초등 교육현장에서도 서양음악과 국악을 가르치는 비중은 9대 1 수준입니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우리 전통음악을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접할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어린아이들에게 우리 악기의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려준다면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국악동화 공연을 시작하게 됐죠.”

7월 19일 오후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김해숙 원장은 인터뷰 내내 국악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4년 취임한 이후 ‘국악의 대중화’를 목표로 쉼없이 달려 왔지만, “여전히 우리 땅에서도 우리 음악이 낯선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국악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그를 이끌었다고 했다. 국립국악원이 2015년 성탄절을 맞아 캐럴과 국악이라는 다소 생소한 조합의 앨범을 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올해로 임기 4년째를 맞은 김 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가야금 산조 명인이자 여성 최초의 국립국악원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부임 첫해부터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현대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우리 전통음악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과 만나지 않는 음악은 박물관 속에 갇혀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신념이다.

“국악인으로서 우리 국악계가 더 넓어지는 것을 소원합니다. 우리나라 영토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문화의 크기가 작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간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오면서 전통문화 진흥을 소홀히해 왔지만, 이제 앞으로는 우리 문화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전통문화 기반을 굳게 다지지 않고서는 세계화·국제화를 외친다 해도 모래 위의 성처럼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국악도 움직여야 생동…대중과 함께해야”
국립국악원에서는 요일별로 각각 다른 색깔의 공연이 매주 열리고 있다. 전통춤을 만날 수 있는 ‘수요춤전’과 다채로운 우리 소리를 만날 수 있는 ‘목요풍류’, 우리 전통예술과 다른 장르가 만난 창작무대 ‘금요공감’, 그리고 토요일에 열리는 ‘토요국악동화’와 ‘토요명품공연’까지. 김 원장 취임 이후 1년 만에 공연 횟수도 전년 대비 160% 가까이 늘어났다. 김 원장은 “언제든 관객이 국악원을 찾았을 때 각각 다른 장르의 공연이 열린다는 것은 국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국악원으로서도, 수요자 입장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단원들이나 직원들은 공연이 늘어나 힘들겠지만…”이라며 웃었다.

국악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클래식, 현대무용,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와의 융합 무대도 펼쳐진다. 오는 10월 중에는 영화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외국인 대상 음악극 <꼭두>의 막이 오른다. 대중음악에 국악의 선율을 접목할 수 있도록 대중음악 작곡가들을 대상으로 한 국악 수업 역시 2년째 진행 중이다.

50년 가야금 외길을 걸어왔지만, 김 원장은 “우리 전통음악도 기운생동(氣韻生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와 만나 접점을 넓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고 하는데 문화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문화도 고여 있으면 정체될 뿐입니다. 가야금도 25현 개량 악기가 나왔을 때 ‘그건 가야금이 아니다’라는 일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다수 악단이 쓰고 있죠. 악기는 사실 도구일 뿐이고, 그것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퓨전과 전통을 양날개에 펼칠 수 있다고 봐요. 국악 역시 다른 문화예술과 만나되, 중심을 분명이 갖고 있어야 합니다. 중심 없이 만난다면 흡수돼 버리기 쉽죠.”

지난 2월 국립국악원 우면당은 1988년 개관 이후 29년 만에 자연음향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없는 자연음향 공연장은 국악계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김 원장은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전통음악은 우리 전통공간에 맞게 성장해 왔어요. 궁중음악은 궁중의 회랑에서, 가야금과 같은 악기는 창호지와 구들이 있는 방에 맞게 소리가 발전해 온 것인데, 서구식 극장에서 하는 공연문화가 도입되면서 전통음악도 전파음향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마이크라고 해도 마이크를 들이대면 본래의 소리가 바뀝니다. 앞으로 자연음향 공연이 자리를 잡으면, 작곡가도 연주자도 소리에 좀 더 세밀하게 귀 기울이며 내실을 다지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런 노력이 쌓이며 장기적으로 우리 실내악의 질적인 향상을 가져올 거라고 봅니다.”

리모델링은 공연장의 ‘규모’보다 ‘소리’에 중점을 뒀다. 공연장 천장과 객석 주변에는 소리를 왜곡 없이 전달하는 음향 반사판을 각각 12개씩 설치했고, 국악기의 울림을 키우기 위해 무대 아래엔 10개의 공명통을 설치했다. 공명통은 연주자 출신인 김 원장의 아이디어다. “예전에 일본 요코하마의 노악당에서 공연을 했는데, 마이크를 쓰지 않았는데도 소리가 왕방울만하게 들려 깜짝 놀라서 물었더니 독 모양의 울림통을 쓰고 있었어요. 쉽게 생각하면 우리 에밀레종의 울림과 같은 원리죠.”

“국악의 대중화, 교육부터 시작해야”
국립국악원은 2015년 10월 박근형 연출가의 <소월산천> 공연 취소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김해숙 원장 역시 올해 초 문화계의 ‘블랙리스트’ 압력을 시인하며 이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공연 취소사건 당시 해외출장 중이었다는 김 원장은 “직접적인 외압이 있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국악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이다 보니 그런(블랙리스트) 분위기가 있었고,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고 나서야 이상했던 점들의 퍼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건이 터지고 나서 국악원장이기 이전에 예술가, 연주자로서의 제 정체성에 대해서도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국악원이 공연 초청을 해놓고 취소했다는 것은 정말 죄송한 일이고, 다시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 김 원장에게 남은 임기 중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를 물었다. 답은 역시 ‘교육’이었다. “국악의 대중화와 진흥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아무리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려고 해도 벽에 부딪혔어요. 사람들이 국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접할 기회가 적어 낯선 게 문제입니다. 그럴수록 어린아이 시절부터 조금이라도 국악을 친숙하게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악원이 교육기관은 아니고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도 아니지만, 국악인으로서 그 숙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ay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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